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작가 Dec 31. 2022

'나날이 나를 새롭게 하면서 쟁취했던' 2022년

"올해는 정말 아무것도 한 게 없어. 일 년 동안 도대체 뭘 한 걸까?"



집 근처에 사는 고향 친구와 만나서 커피를 마시다가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왔다. 슬슬 연말이 다가오자, 허무함이 몰려왔다. 10월까지만 해도 아직 올해가 두 달이나 남았으니까 만회할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를 만난 11월, 포기 상태가 돼버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히 뭔가 하긴 했을 텐데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한 해를 보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빈 속에 술을 한 모금 삼켰을 때 온몸이 알코올을 빨아들이면서 살짝 몸이 나른해지는 이완 상태를 좋아한다.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실행에 옮겨야 안정을 느끼는 성향을 이때만큼은 '몰라, 될 대로 돼라' 내던져버릴 수 있어서다. 이상하게도 이날 커피를 마시면서 그런 기분을 느꼈다. 다른 점이라면 이완 상태가 여러 날 계속됐다는 것. 아마도 긴장의 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겨야 할 이유를 더는 찾지 못했기 때문일 거다.  



계획대로라면, 올해는 나에게 잊지 못할 한 해가 됐어야 했다. 인생 첫 책이 출간됐어야 했고, 부캐로 낸 책이 인정받아 본캐를 아는 이들이 나를 다시 보게 만들고 싶었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애쓴 나를 가만히 토닥여주고 싶었다. 이 순간을 위해 자투리 시간을 찾아 혼자만의 공간으로 숨어들었고 쓰고 또 썼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몇 년 전 쓰기 시작했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존감의 멱살을 잡아채 컴퓨터 앞에 앉혔다. 지금 돌아보면 나의 글쓰기는 애초에 의도가 순수하지 않았다.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서라거나 '나'를 위로하거나 글쓰기 자체에 의미를 두었던 게 아니었다. 일과 직업을 사랑했던 나를 스스로 부정하게 만든 것들을 향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눈에 보이는 결과를 손에 쥐고 보란 듯이 한방 먹이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려면 더 그럴듯하게, 더 있어 보이게, 더 욕심을 부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늘 그렇듯, 욕심을 부릴수록 불안감은 커졌다. 할 수 있을까? 이 정도로는 안 돼. 주위를 힐끗거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불순한 목적에 끌려가는 나를 알아챘다. 부끄러웠다. 잔뜩 힘주어 쓴 글이, 이 정도면 된다고 확신에 차 있던 자신감이, 과정보다 결과를 향했던 욕심이.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내 인생을 나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던진 돌멩이는 피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걸 다 맞아가며 키운 분노는, 나중에는 돌멩이를 아예 던지지 못하게 만들겠다던 대갚음의 마음은 결국 나를 향다.



부캐로 글을 쓰면서 내면에 충돌이 일었다. 일과 나를 철저하게 분리해 '나'로서 인정받고 싶었는데, 남는 게 별로 없었다. 일과 직업을 지우고 나니 뭘 써야 할지 몰랐다. 어찌어찌 글감을 찾아도 쓰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쓴 글은 많이 읽히지도 않았다. 글은 읽히기 위해 태어난다는데, 내가 쓴 글은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현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나의 일과 직업을 좋아했구나. 만사 귀찮아서 누구든 제발 말을 걸지 말아줬으면 싶다가도 약속 시간에 취재원과 만나 인터뷰하다 보면 어느새 일의 한 장면에 쑥 빨려 들어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를 만큼 진심을 다하는 내가 그곳에 있었다. 매일 지지고 볶고 못 해 먹겠다고 큰소리치면서도 막상 쓰다 보면 온라인 국어사전을 들춰가며 단어와 더 나은 표현을 고르는 내가 거기에 있었다. 지금의 나는 지난 14년이 쌓아 올린 결과였다. 일과 직업을 숨기고 지우는 건 나의 일부를 지워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일하면서 만난 인터뷰이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기자 세계의 오랜 금언(불가원불가근)을 지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경험으로 깨달은 바가 있어서다. 기자와 인터뷰이는 서로 원하는 바가 맞아떨어질 때 마주 앉을 수 있는데, 가끔 일적으로 동의하지 않은 부분을 요구하거나 선을 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관계 유지 차원에서 의식적으로 선을 긋는다. 그런데 얼마 전 만난 인터뷰이에게는 그러질 못했다. 통한다는 느낌. 인터뷰하는 내내 말이 통했고 생각이 통했다. 기사가 나가고 연락이 왔다. 만나서 맥주 한 잔 하자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인터뷰이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지 않는 편인데, 그날 마신 맥주에 뭐가 들어간 건지 속마음을 꺼내놓았다. 왜 아이가 잘 때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왜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지, 일을 사랑하지만, 왜 거리를 두고 싶은지. 나중에는 부캐로 쓴 에세이로 출판 계약까지 했는데 결국 나오지 못한 이야기까지 했다. 선을 넘어버렸다. 가만히 듣고 있던 인터뷰이는 말했다.



"기자님, 기자님이 잘하는 걸 하세요. 가진 게 있는데 왜 돌아가려고 해요. 잘하는 걸 하다 보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기회가 와요."



펑, 눈물이 터져버렸다. 이것도 선을 넘어버렸다. 14년 동안 지켜 온, 일을 대하는 태도가 무너질 만큼 많이 약해져 있었다. 올해 들어 가장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던 그날, 나는 올해 들어 가장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생각했던 2022년. 이렇다 할 성과나 결과물은 없지만, 나는 크고 작은 도전을 했다. '될 대로 돼라' '누구든 하나만 걸려라' 하는 심정으로. 읽히지 않는 글, 듣지 않는 오디오 콘텐츠를 보면서 상심했지만, 내가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를 확인했으니 그걸로 됐다. 나의 일과 직업을 얼마나 애정하는지 이제라도 각성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남은 건, 방향을 고쳐 잡고 다시 나아가는 일뿐.



그러니까 나는 올해도 쉼 없이 분투했고 한계에 부딪쳤고 조금 더 단단해졌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내일의 내가 지금보다 단단하다면, 그건 오늘의 내가 '나날이 나를 새롭게 하면서 쟁취했던 그 시간들' 덕분이리라. 낯선 동네, 낯선 카페에서 만난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평화는 잠시도 마음을 늦추지 않고 끊임없이 싸워서 얻은 평화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그렇게 싸우는 모습은 보지 못한 채 내가 보인 평화의 모습만 부러워한다.
내가 글을 쓸 때 싸우는 모습도, 공부를 할 때 싸우는 모습도 사람들은 보지 못했다.
내가 평화로워 보인다면 모두 나날이 나를 새롭게 하면서 쟁취했던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생긴 평화였다.

<헤르만 헤세>








작가의 이전글 작심삼일 백 번의 결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