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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교 Mar 20. 2022

책 쓰기 금단현상

또 쓸 수밖에

그토록 바라던 순간, 또 한 번 불청객이 찾아왔다. 이 순간이 오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데, 마우스를 클릭하는 동시에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 버렸다. 출간까지 아직 갈 길이 멀었는데 힘이 나지 않았다. 



그동안 쏟아부었던 시간과 노력, 놓치지 않으려고 꽉 쥐고 있었던 긴장과 평정심 같은 것들이 ‘딸깍’ 클릭 소리와 함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꼬박 1년. 출판 계약서에 사인하고 1년 만에 초고를 털어내던 날, 번아웃에 빠졌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얼른 원고를 마무리하고 책을 받아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맥락 없이, 이 난데없는 소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지켜주던 보호막이 벗겨지는 기분. 하루 전까지만 해도 자꾸 글감이 떠올라 메모장에 적기 바빴는데 두뇌 활동 자체가 멈춘 느낌. 자고 있던 불안과 걱정이 깨어나는 신호. 두려웠다. 모르겠다, 책이나 읽자. 

 


강박증 환자처럼 책을 곁에 끼고 다녔다. 종일 문장 한 줄 읽을 여유가 없는 날이라는 걸 알면서도 기어코 책을 가방에 욱여넣었다. 가방 무거운 건 질색인데, 책이라면 기꺼이 들고 다녀주마. 짬이 날 때는 반사적으로 펼쳤다. 저자가 구사한 단어와 문장,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까지 모두 빨아들여서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듯, 활자를 노려봤다. 그래봤자 기억 못 할 거면서. 



답답하고 불안할 때면 도망치듯 책장 사이에 코를 박았다. 전생에 책을 못 읽은 귀신이 내 몸을 빌려 못다 이룬 독서왕의 꿈을 끝내 이루고야 말겠다는 기세로. 쫓기듯 책을 읽고 마음에 박인 문장을 옮겨 적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무언가에 대해 멍하게 생각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낸 지 석 달. 방황의 시간을 끝내야 할 때가 됐음을 직감했다. 이 시간이 길어진다면 결국, 내 안의 욕망이 켜켜이 쌓이다 못해 엉뚱한 곳에서 펑 터질 것임을 알았으니까.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려는 도망자 신세였지만, 배운 것도 있다. 독서왕의 꿈을 이루지 못해 한이 서린 귀신의 마음으로 책을 대했더니 시도 때도 없이 책 읽을 시간이 났다. 시간이 없어서 못 한다는 건 진짜 핑계였다. 

 


마감형 인간이 더는 마감할 원고가 없다는 사실을 마주했을 때 경험하는 상실감은, 일상을 멈추게 할 수도 있을 만큼 강력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마감에 길들었지만, 결국 마감이 나를 생생하게 움직이게 했다는 걸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었다. 회사나 타인이 일방적으로 고지한 날짜가 아닌, 생애 첫 책을 내기 위해 스스로 정한 마감이었다. 이 필연적이고도 기꺼운 마감을 끝내버렸다는 데서 세상만사 의미가 없어졌음을 인정해야 했다. 누가 마감형 인간 아니랄까 봐. ‘돌마(돌아서면 마감)’, ‘돌마’가 징글징글해서 마감 없는 세상에서 딱 일주일만 살고 싶다던 건 내가 아니었단 말인가. 

 


책 쓰는 일은 양가감정과 같았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는데, 또 괴로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 그래도 모든 과정이 묵직하게 즐거웠다. 절대 가볍지 않은 즐거움에 몰입하다가 나중에는 중독돼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지난 석 달은 책 쓰기 금단현상에 시달린 것쯤으로 정리하면 되겠다. 

 


소설가 장강명은 말했다. “인간에게는 ‘지금 내가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감각이 필요하다”라고. 그는 이런 감각을 느끼기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창작’을 꼽는다. 초고를 털어내고 공허, 무의미, 소진을 겪은 건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의 부재가 두려워서라고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본다. 

 


그나저나, 다음은 어떤 의미를 만들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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