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보스턴 여행자
뉴욕
3주 간의 전공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약 일주일 정도 남았을 때, 뉴욕 여행을 계획했다. 미 동부의 대표적인 도시라 미국에 오기 전부터 뉴욕 여행에 대한 로망을 품어왔다. 오랫동안 머무는 필라델피아에 대해 알아보기는커녕 뉴욕 여행책만 가지고 왔다. 필라델피아에서 지내는 동안 몇몇 선배들은 주말을 이용해서 뉴욕에 다녀오기도 했으나 나는 뉴욕을 마지막 여행지로 묻어두었다. 그리고 뉴욕과 보스턴을 같이 묶어 여행하기로 했다.
함께 방을 쓰던 룸메이트 동기 언니와 메가버스를 타고 2시간 여를 달려 뉴욕에 도착해 때로는 같이, 때로는 따로 여행했다. 국내 여행은 어렵지 않게 혼자 다닐 수 있었지만, 외국까지 나가서 자유롭게 혼자 다닐 수 있는 것은 이때의 경험 덕분이었다. 물론 이때까지도 사람들과 어울려서 무조건 함께 좋은 장소에 가고 함께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더 맞는 일이며, 모든 일을 함께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와 꼭 맞는 방식이 아니라는 괴리감이 들어 혼자 돌아다니는 일이 종종 있었다. 서로 다른 여행 방식을 맞추려고 하지 않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그런 게 마음 편할 때가 있다.
너무나도 넓은 메트로폴리탄에서 일행과 떨어지게 되면서 은연중에 원하던 뉴욕 땅에서의 자유를 얻었는데, 덕분에 타임스퀘어 맥도날드에서 혼자 햄버거를 먹는 한국인에게 말을 걸어주는 마크라는 미국인을 만났다. 그는 뮤지컬을 보러 가기 전까지 말동무가 되어주면서 나에게 I♥︎NY 배지와 티셔츠, 알람시계 등 뉴욕 굿즈를 선물로 사주었다. 처음에는 이 낯선 미국인이 나에게 접근하는 것이 무슨 의도인지 몰라 경계부터 했는데, 다행히도 좋은 만남으로 남아 새해에 미국으로 연하장도 보내주고 여전히 그는 나의 페이스북 친구이다. 결국은 의무감에서 벗어나 혼자서 타임스퀘어를 배회하고 혼자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본 나만의 경험이 더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합리화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경쟁심 어린 마음이었던 것이고 지금은 서로에게 가치 있는 경험이 되었다면 그걸로 족할 뿐이라고 되돌아보게 된다.
학교 다닐 때는 당장 눈앞에 놓여있는 목표인 도쿄 말고는 다른 나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고,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반미정서의 영향을 받아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매력적인 여행지라 생각해본 적도 없었을뿐더러 갈 일도 없을 거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일찍이 뉴욕을 경험한 덕분에 머나먼 다른 나라도 충분히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목표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서울과 도쿄가 메트로폴리탄으로 발돋움하기 이전에 뉴욕이 있었고 여전히 세계 경제 질서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 뉴욕은 그야말로 자본이 지배하는 도시였고 화려했으며, 소위 업계에서 말하는 째냄새*가 가득 찬 건물들 사이로 역동성이 흘러가는 도시였다. 나는 뉴욕에서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명품 브랜드들과 SPA 패션, 우리나라에 없는 디즈니 스토어에 눈을 떴다.
몇 년 후 집에서 그때 홀린 듯이 샀던 가방과 옷들을 발견하니 거의 다 쓸 수 없는 것들이어서 처분해버렸다. 지금도 여전히 패션고자이지만, 그때는 없는 돈으로 쓰지도 않는 것들을 왜 그렇게 사고 싶어 했는지 아이러니한 일이다. 여행자들의 지갑을 털어가기 바쁜 도시. 그것을 깨달은 순간 뉴욕은 단 3일의 여행으로 미련을 버리게 되었다.
*외국풍, 특히 서구문화권 형식의 건물, 도시 분위기를 말하는 방송 업계 용어, 한국에서는 찾기 어려움.
보스턴
뉴욕에서 일행들과 헤어져 보스턴행 심야버스에 올랐다. 심야버스로 숙박비를 아끼려는 심산에다 아침에 도착해서 이틀을 알차게 보내려는 계획이었다. 그때는 버스에서 자고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아무렇지도 않은 20대 초반이었다. 예약해 둔 호스텔에 짐을 맡기고 보스턴에서 할 수 있는 필수 여행 코스인 Freedom Trail을 나섰다. 보스턴에 처음 내렸을 때부터 열심히 찾은 합리적인 호스텔의 분위기는 뉴욕과는 사뭇 다르게 차분하고 깔끔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여행 내내 지속되었다. (뉴욕은 값싼 숙소를 찾아 100번 직전의 번지까지 올라갔더니 잠만 겨우 잘 수 있는 곳이었다..)
프리덤 트레일은 필라델피아와 함께 미국 역사의 시작이 된 보스턴에서 주요한 역사적 장소를 따라가 보는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보스턴 커먼이라는 광장을 시작으로 매사추세츠 주 의사당을 지나 교회, 묘지, 성당, 밴자민 프랭클린의 동상을 보고 작은 서점도 지난다. 벙커힐 기념탑이 있는 언덕을 오르니 지금까지 계속 지냈던 필라델피아의 학교 거리나 거대한 빌딩 숲 속 번잡한 뉴욕과는 달리 깔끔한 주택가가 펼쳐졌다. 트레일을 온전히 도보로만 다녀야 하고 청명한 겨울 날씨에 각 장소마다 사람들도 많지 않아서 그런지 발걸음에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바다가 보였는데, 뉴욕보다 북쪽으로 올라와서 그런지 겨울바다는 푸르고 눈부셨다. 보스턴은 여태껏 보아왔던 미국 도시 중에서 부자 동네 같은 고급스러움이 있었고, 깨끗하고 여유로웠다. 뉴욕 여행을 하면서 복잡한 이동에 지쳤는데, 보스턴은 그 부담을 덜고 각 장소가 주는 상징성에 집중할 수 있었다. 따라가지도 못할 패션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보스턴에 와서 USS 컨스티튜션 박물관 기념품샵의 레트로 티셔츠나 살 걸 그랬다.
트레일을 끝내고 호스텔로 돌아와 간단히 저녁을 먹고 야간개장까지 하는 보스턴 미술관에 산책 겸 걸어갔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이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MoMA 등 미국에 와서 여러 미술관을 다니면서 모네의 그림이 주는 매력에 눈을 떴는데, 보스턴 미술관에 있다고 하는 ‘기모노를 입은 카미유’ 그림을 직접 보고 싶었다. 저녁 늦은 시간이라 사람 없는 한적함을 틈 타 그 그림을 눈 앞에 두고 앉아 꽤 오래 쳐다보고 있었다. 교과서에 나와 있던 그림을 실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동안 다녔던 국내의 유적지 답사만큼 흥미로운 일이었다. 동네 산책쯤으로 여겼던 보스턴 미술관이 세계 4대 미술관이라는 것은 그때는 전혀 몰랐다.
사실 하버드 대학에 직접 가보고 싶어서 계획한 보스턴 여행이었는데, 막상 하버드에서 존 하버드 동상의 닳은 신발을 만져보니 별 감흥이 없었다. 당시 우리의 히어로였던 반기문 전 UN총장이 수학했던 케네디 스쿨 앞에서 나도 이곳에서 꼭 공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그 꿈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영어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랄까. 그래도 언젠가 미국에 다시 갈 일이 생긴다면 보스턴은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혼자 여행 온 가난한 대학생이라 먹어보지 못했던 랍스터 요리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사지 못한 USS 기념품, 큰 사이즈의 가재 인형 등이 계속 생각나서, 다른 도시와는 다르게 유독 미련이 많이 남은 도시이다.
22살에 처음으로 문화권이 완전히 다른 나라에 가서 넓은 땅덩이만큼 다양한 도시를 경험하고 왔다. 나의 전공에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였기 때문에 배움을 위해서는 꼭 가야 할 나라였고 그 시간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다. 미국에 가서 나의 존재가치를 100% 발휘는 커녕 보잘것없는 영어 실력에 대해 좌절만 하고 내가 원하던 꿈에 나의 그릇이 더 큰 세상을 품을 만큼 크지 않다는 것을 확인만 하고 왔지만 내가 시간을 보낸 도시의 기억만큼은 남아있기에 미국을 경험했던 것의 의미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날아가게 된 일본 생활을 비롯하여 처음으로 경험한 유럽인 아일랜드까지, 외국살이를 하는 데 큰 발판이 되어 준 경험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소중하다. 그래서 별 볼일 없게 다가온 기회라도 꼭 붙잡아야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