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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미에 Dec 06. 2020

17. 미국 동부 1/2

필라델피아 단기 유학생

  2012년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가 담을 수 있는 그릇을 크게 넓힌 다양한 경험을 한 한해였다. 이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달리 타협을 넘어선 도전이었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외국이란 사촌동생이 있었던 중국과 말을 할 수 있는 일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비행기로 10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 서구권은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해서 배낭여행을 다녀오거나, 영어에 소질이 있는 학부생들이나 미대륙의 협정을 맺은 학교로 교환학생을 떠나는 곳이었다. 나에게 미국 땅을 밟을 기회가 그렇게 빨리 주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GC (2011)

  2학년 여름방학에 영어 전공학점을 채우기 위해 학교 전체가 공들여 개최하는 외국 대학 학생들 간의 Global Collaborative Program(GC)에 참여를 했는데, 학교 재학생이라면 자랑 스러이 참여할 수 있는, 우리 학교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세계 유명대학 석학들의 여름방학 특강이었다.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혈안이 되어있던 우리 세대는 여름방학 조차 허투루 보낼 수 없었기에 모자라는 영어실력에도 불구하고 특강을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다.



  여름방학에는 세계의 여러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들을 우리 학교로 불러들이고, 겨울방학에는 우리 학과만이 특별하게 교류 협정을 맺은 펜실베니아 대학으로 한 달간 전공 연수를 갔다. 지금은 연례행사가 된 모양이지만 학교에 입학했을 때 처음 시행되던 프로그램이라 “세계 최고의 대학인 미국 아이비리그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에다 전공을 살리려면 영어를 기본으로 해야 하는 학문 특성상 본 고장에서 전공을 배울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라며 꼭 가겠다”는 의지가 뚜렷한 이들은 없어 보였다. 나조차도 막연하게 '학교에서 항공권과 숙박비를 전액 지원해준다는데 갔다 오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YBM의 힘을 얻은 토익 성적으로 얼떨결에 면접을 보았다. 입 밖으로 영어보다는 일본어가 먼저 나오는 나에게 붙여줄 이가 도저히 없어 턱걸이로 데려가기로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영어가 유창한 학과 동기, 선후배들과 함께 필라델피아 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다들 이 프로그램에 진심이었던 것 같다.

처음 가보는 인천공항, 처음 건너는 태평양 (2012)



필라델피아

건강식(?) (2012)

  샌프란시스코에서 비행기를 경유하여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하나인 펜실베니아 대학(U-Penn)이 있다는 필라델피아 공항에 내렸다. 우리가 한 달간 묶게 된 숙소는 무려 학교 앞에 있는 셰라톤 호텔이었다. 호텔이라 취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최대 단점이어서, 룸메이트의 컵라면과 햇반이 큰 도움이 되었다. 미국에 가서 가장 두려웠던 고칼로리 음식에 대한 위험을 피하고자 매일같이 마트를 드나들며 식단에 신경 써야 했는데, 미국은 고칼로리 음식도 많았지만 그만큼 채식주의자를 위한 채소 음식도 발달되어 있어서 식단 선택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최근 몇 년 사이 관심이 높아진 건강빵은 미국 마트에서는 종류도 다양하고 싸게 살 수 있었다. 신대륙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U-Penn (2012)


  처음 학교에 가서 한 달 간의 학생 생활을 위해 출입증 역할만 했던 임시 학생증을 발급받고 학교 투어를 했다. 학교의 규모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모를 정도로 넓어서 학교와 관련된 모든 건물들이 하나의 캠퍼스 타운이자 도시를 형성하고 있었다. 전공 연수의 주제는 미국 내 비영리 단체인 NPO 활동에 대해 조사하고 이들이 지역 사회와 정치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학습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워싱턴에 있는 NPO 단체를 섭외하여 인터뷰도 다녀오고 매주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느라 밤늦게까지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마치 진짜 아이비리그 대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실 기분만 내고 미국에 같이 온 학우들끼리만 보다 보니 묻어간 거나 다름없다. 같이 온 동기나 선후배들은 어느 하나 뒤쳐지는 사람 없이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고, 최선을 다해 미국을 경험했다. 오히려 그들로부터 배워가는 것이 많았다.


FCNL, Washington, D.C. (2012)

  필라델피아는 미국 독립사에서 빠질 수 없는 역사적인 도시이다. 미국 최초의 수도이자 독립선언문이 낭독된 곳인지라 시내 곳곳에서 독립에 관한 상징들을 볼 수 있다. 학교를 벗어나 시내를 돌아보러 갔을 때 가장 먼저 갔던 곳도 인디펜던스 홀과 자유의 종이었다.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 있는 것 자체도 신기했지만 미국에 왔음을 가장 실감 나게 했던 곳은 필라델피아 미술관이었다. 한국에 있을 땐 교복에서 벗어난 이후로 거들떠도 안 보던 미술관이었는데, 파리에 가서 루브르 박물관에 가듯이 필라델피아에 가면 미술관에 가봐야 한다니, 그 상징성을 모르고 비싼 관람료에 학생 할인이라도 받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참이었다. 그리고 영화 록키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의 배경이 된 계단 위를 지나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 중 한 점을 눈 앞에서 만났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인 고흐의 실제 작품이라니, 고흐는 그가 활동했던 유럽만 떠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깨졌다. 그 정도로 미술에 무지했다. 그 외에도 모네, 르누아르, 고갱, 피카소 등 이름만 들어보았던 화가들의 진짜 작품들을 눈 앞에서 볼 수 있다니 세계 미술사의 중심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미국 생활 중 미술관 투어의 시작이었다. 

자유의 종, Philadelphia (2012)
Philadelphia Museum of Art (2012)


  필라델피아 중심부는 화려한 고층빌딩과 독립의 역사가 서려진 멋진 도시이지만 체험활동을 겸해서 외곽으로 나갔을 때, 그 모습은 빈부격차가 뚜렷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다양한 인종과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황인종과 하나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자라난 내가 다양한 민족과 유색인종이 살고 있는 미국이라는 문화권을 경험하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우려하는 마음이 더 컸고, 신변의 위협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비율이 백인 비율보다 높은 필라델피아는 특히 미국의 축소판 같아 보였다.* 우려하던 차별이나 위협은 없었지만 시내에서 판매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이 유색인종이었다는 필라델피아의 첫인상에서 인종 간의 계층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몸소 실감했다.  


Philadelphia Main Street (2012)
Urban Area tour, West Kenshington, Philadelphia (2012)
필리치즈스테이크, @Jim's Steaks, Philadelphia (2012)

*worldpopulationreview.com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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