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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미에 Dec 06. 2020

16. 도쿄 - 번외

도쿄 교환학생

교환학생


  중학교 때부터 일본어를 공부했고, 대학 진학을 아예 일본으로 할지에 대해 고민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모험보다는 안전을 선택했고 결국은 내신 성적과 함께 수능시험을 본 후 국내 대학에 진학했다. 모험이라고 해봤자 몇 배 이상의 비용과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것일 뿐이었는데, 그 노력을 들일 여유가 없었다. 지금과 바뀌게 되는 일상을 포기할 용기도 없었고, 부모님의 지원 의지도 그저 부담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 선택의 과정에는 적당한 타협이 자리하는데, 우선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1년 정도 교환학생으로서 일본 학교 생활을 경험해보면 되겠다는 것이 타협점이었다. 그런 타협의 순간은 그 이후로도 여러 번 찾아왔고 나의 선택을 합리적이라 여기며 적당히 살고 있다.

  

  진학할 국내의 대학을 선택할 때 염두에 뒀던 것은 일본으로의 교류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냐는 것이었다. 학교 홍보 책자에도 나와있었던 것처럼 우리 학교는 나쁘지 않은 성과를 내고 있었고, 1학년을 마치자마자 바로 다음 해에 일본으로 떠날 것이라는 계획을 세워두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학교는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고 2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교환학생 모집에 지원할 수 있었다. 지망 학교를 쓰고 필기시험과 면접도 보았는데, 원하는 학교에 꼭 가고 싶었다. 물론 지원 가능한 학교 중 최상위 학교는 1명만 갈 수 있는 와세다(早稲田)대학이었지만, 나는 무조건 메이지(明治)대학에 가고 싶었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학창 시절 좋아하던 아이돌이 나온 명문 학교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경쟁함으로써 떨어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타협을 했고 대학교 3학년에 도쿄에 있는 메이지대 교환학생이 되었다.


메이지대 유학생 환영회 (2012)


剛ゼミ13期 ( 세미나 13)


  교환학생을 준비하면서 일본 대학 제도에 대해 모르고 있던 것이 있었다. 바로 3학년이 되면 참여해야 하는 세미나 제도인데,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써야 하는 논문에 대한 방향을 찾아가는 일종의 토론 수업이다. 전공 중에서 각자 관심이 있는 분야의 교수님이 주도하는 세미나에 가입하여 전공에 대한 심화교육도 하고 토론도 해나가면서 자신이 쓰고 싶은 논문의 주제를 잡고, 논문 제출 후에는 논문 발표회를 열기도 한다. 일본에 오기 전 정치학과 교수 리스트 중에서 내가 관심 있어하던 국제정치 분야의 교수님 이름을 지도교수로 써냈던 것이 이 진득한 교환 학생 생활의 시작이었다. 등교 첫날 이후로도 이 내용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가, 교수님과 면담을 하면서 “세미나에 나와 볼래?”라는 말에 뭔지는 모르지만 할 수 있는 건 뭐든 경험해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얼떨결에 ‘이토 고 교수 세미나 13기’의 학생이 되어버렸다.


세미나 구기대회 (2012)


  나의 교환학생 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세미나에 첫 출석을 하던 날, 15명의 학생들과의 첫 만남에서 성비가 남학생이 2배 정도 많은 구조에 각자 참 개성이 다양하다고 생각했다. 이 친구들이 나와 1년을 함께 보낼 동기들이 되는 터였다.


  그리고 이 날 메이지대에서 ‘고 세미나’만 참가할 수 있는 ‘도쿄 10개 대학 공동 세미나’에 참여하겠다고 결정함으로써 내 유학 생활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이 세미나는 외부 세미나 참가뿐만 아니라 특이하게 영어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여 대학 3학년에 학원도 아니고 무려 학교에서 영어단어 시험을 봐야 했다. 일본어도 완벽하지 못한 나에게 일본어로 영단어 시험을 보라고 하니 이게 무슨 경우인가 싶었지만 어드벤티지를 받아야 할 유학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뒤쳐지고 싶지 않아 죽어라 외웠다. 

  본래의 커리큘럼은 항상 전공에 관련된 가벼운 책을 읽고 그 챕터의 주제에 대해 한 사람씩 발표하고 토론을 했는데, 일본 서점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문고판 서적은 포켓북처럼 작은 책이지만 내용은 큰 책과 다름없어서, 일본에 오기 전에는 엄두 내지 못했었는데 세미나에서 강제로 몇 번 완독하고 나서는 접근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소규모인 데다 교수님 참석 하에 진행되는 발표와 토론이다 보니 모두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었고 학술동아리와는 다른 전문성이 있었다. 대규모 강의에만 익숙해져 있다가 소수의 인원들과 세미나 할 때는 열심히 떠들고, 다른 전공 수업도 같이 듣는 세미나 동기들도 발견하여 그들와 점심을 같이 먹게 되니 한국과는 달리 동기간의 친밀함이 있었다. 어쩌다 무한제공 술집에서 뒤풀이라도 하는 날에는 죽어라 마시면서 놀아대니 이들의 혈기왕성한 에너지를 어떻게 맞춰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 있었다. 


  가장 놀랐던 것은 이 친구들이 학교 성적에는 크게 목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국은 목표가 취업이라 3학년 2학기에 본격적인 취업활동을 하기 전까지는 다양한 개성을 뽐내며 놀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던 모양이다. 물론 개중에는 열심히 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시험기간에 내 필기를 참고하는 것을 보고 나조차 ‘열심히 하는 게 의미가 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국에서 성적 경쟁에 치여왔던 방식으로 공부를 하니 ‘왜 일본에 와서 이 친구들에게 이러고 있나' 하는 자괴감이 들어 2학기에는 성적 부담을 덜고 같이 신나게 놀았더니 오히려 학교생활이 더 재밌었다. 이 친구들 사이에서는 국적이 다른 이방인이지만 최대한 다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그 사이에 녹아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세미나 활동의 일환으로 여름방학에는 교수님과 다 같이 오키나와도 가고 교환학생을 마치고 도쿄에서 돌아온 후에는 세미나 졸업여행을 무려 내가 살고 있던 부산으로 왔다. 심지어 학교에서 열린 졸업논문 발표회에는 나도 참석해서 친구들이 2년간 세미나를 통해 배우고 느낀 것에 대해 들어보기도 했다. 한국 대학 생활보다 남은 게 많은 것이 메이지대학에서 유학하던 시절이었다. 정말 원 없이 공부했고 원 없이 놀았다. 그리고 계속 연락하고 싶은 친구들도 많이 생겼다. 한국에서는 한없이 불편하다고 느낀 대학 내의 공동체가 똘똘 뭉쳐 끈끈한 관계가 될 수도 있고, 한없이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왠지 대학교에서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든 것 같다고 할까.


세미나 합숙 @ 오키나와 (2012)



十大学公同セミナー 40期 (10 대학 공동 세미나 40)


  나를 하드코어 한 유학생활로 이끈 것은 비단 교내의 세미나뿐이 아니었다. 세미나에 출석한 첫날 12기 세미나 선배가 가입을 권유했던 이 ‘도쿄 10개 대학 공동 세미나’는 일본어를 능력시험 수준으로만 할 줄 아는 정치학 전공의 일개 교환학생에게는 도전정신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었던 경험이었다. 그러나 끝까지 무사히 완주해냈지만 100명이 넘는 인원들 중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나는 세미나 친구들 15명도 상대하기 힘든데 또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감당하나 싶었다. 


  ‘도쿄 10개 대학 공동 세미나’는 한 학기 동안 문화, 경제, 정보미디어, 분쟁, 자원에너지, 인간개발, 등의 섹션 별로 국제정치에 대한 공통 주제에 대해 공동 논문을 완성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40기의 주제는 ‘글로벌리제이션과 안전보장의 조류 ~ 다원화하는 위협으로부터 무엇을 지킬 것인가’였다. 메이지를 비롯하여 와세다, 게이오, 도쿄여대, 토요에이와, 호세이, 츄오, 아오야마가쿠인 등 10개가 넘는 도쿄의 주요 대학이 참여한다. 참가 학생들은 보통 각 대학의 국제정치학 교수들이 이끄는 세미나 학생들로 이루어지거나 관심 있는 개개인이 참여할 수도 있다. 보통은 세미나 단위로 참여한다. 


중간 결과 보고  @ 와세다대학

  당시 SNS에 의해 움직이는 한국 정치가 이슈였고, 지난 학기까지 수업으로 들었던 거라 그런 얘기라도 해보려고 ‘정보’ 섹션에 들어갔는데, 같은 세미나 동기들은 몇 명 빼고 다른 섹션으로 흩어진 터라 다른 학교에서 온 학생들 사이에서도 병풍이 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참여 대학 중에 한 곳에 가서 그전에 정한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해야 했는데, 역시나 기죽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게 가장 큰 고민이자 스트레스였다. 


10개 대학 공동 세미나 40기 논문 발표회 (2012)

  그래도 덕분에 평소에는 갈 생각도 못했던 도내의 다른 학교 탐방도 해보고 교내 세미나와는 또 다른 체험학습의 기회도 있었다. 여담이지만 메이지대 세미나 동기 한 명은 10 대학 세미나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다. (그 결혼식에는 나도 갔다.) 결국 한 학기 동안의 고군분투 끝에 책 한 권으로 나온 40기의 논문에 내가 쓴 한 페이지도 실리게 되었다. 이들과 동고동락하며 쌓았던 게 우정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교외 세미나 덕분에 매일 도서관에 출석 도장을 찍으면서 책도 좀 읽고 다른 논문도 보고 하느라 일본어 실력이 급격히 늘어서 2학기는 수월하게 보냈다. 


바베큐 파티 @ 카사이 린카이 공원 (2012)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한동안 복잡해 보이는 한국의 모습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어딜 가나 보이는 고층 아파트에 부딪혀도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 사람들. 에스컬레이터도 왼쪽으로 서게 되고  일본에서 먹었던 음식을 만들어보려고 애를 써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쿄는 내 인생의 종착지가 아니었다. 도쿄에서 돌아온 직후에는 이렇게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왔는데 내가 한 일 양국의 평화에 일말이라도 기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국제정치 학문이란 넓고도 깊어 지금까지의 시간은 새발의 피에 불과했고 더 많은 과정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았다.

  의사소통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고 그렇게도 따라 하고 싶던 현지인의 발음도 구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일본어는 그냥 친구들과 대화를 하거나 번역본이 나오기 전의 ‘명탐정 코난’을 읽을 수 있으면 된 거라고 결국 타협했다. 그리고 도쿄에 다시 갔을 때 헤매지 않고 지도 없이 신주쿠 역을 나갈 수 있게 되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공부 말고도 일본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다. 공부하는 건 좋았지만 공부만으로는 지금의 인생에 답이 되어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또 다른 관심사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그렇게 동경했던 도쿄에는 없었다. 그리고 이방인으로서 타지에서 살아가는 것이나 가족과 바다 건너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싸고 맛있는 한국음식이 더 좋았고 그 해 도쿄의 여름은 심각하게 더웠다. 나는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해보기 위해 다시 돌아왔다. 또 타협을 하고 말았다.



메이지대학 이즈미(和泉) 캠퍼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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