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생활자
한 때는 내가 가진 능력으로 이 세계에 작게나마 평화를 가져다주고 싶다는 원대한 포부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 꿈에 한 발자국이라도 다가가기 위해 내디뎠던 도쿄행. 그러나 나는 이방인으로서의 삶에 용기를 내지 못하고 정해진 시간만을 채운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고 그 도시에서 살아보았던 기억만으로 먹고살고 있다.
도쿄 입성
고2 때 고교생 교류행사 이후로, 자의로는 처음으로 비행기 티켓을 직접 끊어 현해탄을 건넜다. 일본에 오기 직전에 미국 땅에서 홀로 며칠이나마 방황해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동경하던 나라에 대한 설렘만 가득할 뿐 무섭거나 걱정이 전혀 되지 않았다. 캐리어를 끌고 나리타공항에서 기숙사가 있는 코마에 시까지 따지고 보면 어마어마한 이동이었는데, 일개 대학생에서 외국인 유학생으로 신분이 바뀐 나는 내리자마자 어마어마한 교통비와 식비로 털려가는 지갑에 앞으로의 생활비에 대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며칠 뒤 학교로부터 장학금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한시름 놓았는데, 그 덕에 열심히 학업에 정진하여 유학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갈 수 있었다.
교환학생으로 수업을 듣게 된 메이지 대학의 기숙사가 있는 코마에 시(狛江市)는 도쿄도 내에 있지만 23구에는 속하지 않는 26 개시 중에 하나이다. 내가 다녀야 하는 학교는 도쿄의 중심 츄오구(中央区)의 오차노미즈(御茶ノ水)에 위치해있는데, 학교는 서울 중구에 있고 기숙사는 시흥쯤에 있는 꼴이다. 기숙사 한 달 비용도 거의 우리나라 원룸의 한 달 치 월세에 버금갔다. 하지만 1인실에 일본식 방답게 현관과 침실이 미닫이로 분리되어있고 샤워실에는 욕조가 구비되어 있었다. 주방이 따로 있지는 않았지만 서울살이를 시작한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거주 형태 중에서 지금의 집과 한 학기만 전전했던 친척집을 제외하고는 제일 사람다운 집이었다.
학교 기숙사라고는 하지만 도쿄 중심까지 1시간 반이나 되는 거리를 통학하게 되었는데, 출근시간대의 전철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문이 닫히기 직전까지 치열하게 들어가 꽉꽉 눌러 담는 그야말로 지옥철이었다. 일본에는 통학 혹은 통근용으로 자신이 정한 구간 내에 일정 기간 동안 일정 금액을 내는 정기권이 있는데, 정기권을 매달 끊어서 다니니 나중에는 그 구간 내에서는 어느 역이든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용해 구간이 긴 만큼 도쿄를 여유롭게 돌아다녔다.
狛江 (코마에)
오차노미즈에 있는 학교에서 기숙사까지는 전철로 1시간 반이나 걸렸다. 급행을 잘 이용해서 타도 1시간은 잡아야 했다. 낯선 도쿄 땅에 내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곳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 기숙사를 만들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기숙사 내 나와 같은 유학생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일본 학생들은 1, 2학년생들이라 그들이 다니는 이즈미(和泉) 캠퍼스나 공대가 있는 이쿠타(生田) 캠퍼스의 위치를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할만한 곳에 있었다.
나와 같이 수학했던 3학년들은 모두 본가에서 다니거나 자취를 했는데, 자취하는 학생들조차 도심의 비싼 집세 탓에 도쿄 외곽으로 나가서 살고 있었다. 동기들의 거주지가 도쿄도를 비롯하여 도쿄와 붙어있는 치바현(千葉県)이나 사이타마현(埼玉), 가나가와현(神奈川県)에도 있었는데, 도쿄도 자체만 해도 서울 면적의 세 배가 넘고 수도권과 서울의 거리감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도쿄의 전철은 촘촘하게 모든 곳을 이어주고 있었다. 다만 JR과 사철 환승 시 각각 내야 하는 전철비가 큰 부담이었다. 그래도 학교까지 가는 구간 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정기권은 한 달에 8만 원 정도라 교통비는 아주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다행히 코마에를 지나는 오다큐선(小田急線)의 종점이자 JR 중앙선으로의 환승지점이 신주쿠라 큰 시내까지는 부담 없이 나갈 수 있었다.
코마에는 위쪽으로 도쿄의 세타가야 구(世田谷区)와 인접해있고 아래쪽으로는 가나가와 현의 가와사키시(川崎市) 타마 구(多摩区)와 붙어있다. 거의 도쿄의 끝이었던 셈이다. 1인실 기숙사라고 해도 완전 자취를 요구하는 시스템이 아니었고, 어느 정도는 공동체 생활을 했기 때문에 도쿄의 일상에 완벽히 녹아들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낮은 주택가들이 모여있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동네라 도쿄 도민들의 일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도쿄 쪽으로는 노가와(野川)라는 가느다란 하천이 흐르고 아래쪽으로는 줄기가 제법 큰 타마 강(多摩川)이 있다. 기숙사에 있는 시간만큼은 할 일이 딱히 없어서인지 맨몸 운동을 정말 열심히 했는데, 노가와까지 15분 여를 걸어가서 강변을 따라 뛰고 오거나 숫자가 카운트되는 줄넘기가 끊어질 정도로 열심히 했다. 약 1년 뒤에 일본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성장이 끝난 뒤로는 볼 수 없었던 최저 몸무게를 찍었을 정도였다.
일본 생활 이후 몸을 관리하는 패턴으로 바뀌어서, 군것질에 함부로 돈을 쓰지 않는 한편 최소한의 식비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식습관을 실천해 나갔다. 이를 위해 동네 슈퍼란 슈퍼는 다 돌아다니면서 물가가 더 저렴한 슈퍼를 찾아다녔다. 일본은 물가가 비싼 편이지만 드럭스토어도 그렇고 슈퍼도 그렇고 가격 차이가 심해 저렴한 곳에서는 같은 물건이라도 훨씬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그렇게 찾아다니다 유학생활이 끝날 무렵에는 오다큐선에 있는 시모키타자와(下北沢) 역 근처의 대형 슈퍼까지 가본 적도 있다.
오롯이 혼자 방을 쓰며 생활하면서 나만의 자유도 누릴 수 있었지만 유학생 친구들도 사귈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있는 베트남 친구들과 캐나다 친구와는 같이 도쿄타워 근처의 시내를 하염없이 걷고 오기도 하고, 사이타마현 카와고에(川越) 같은 외곽의 관광지들을 놀러 다녔다. 그 친구들이 없었다면 유학 생활은 무미건조했을 것이다. 기숙사의 한국인 유학생들과는 잘 섞이지 못했던 내게 그 친구들의 존재는 빛과도 같았다. 각자의 나라가 달라서 그런지 서로를 대함에 있어서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기에 더 친해질 수 있지 않았나 한다.
신주쿠와 시부야
도쿄에 발을 딛기 훨씬 전, 일본어를 배우던 청소년 시절부터 시부야(渋谷) 스크램블 교차로 한복판에 서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지금이야 일개 크로스 횡단보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 세상 힙(Hip)함을 다 담고 있는 메인 거리가 시부야라고 생각했다. 당시 가장 잘 나가는 가수의 새로운 앨범 표지가 건물 위 대형 광고판에 큼지막하게 걸려있고, 높은 쇼핑센터 건물들이 배경으로 서 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시부야 역으로, 혹은 빌딩 숲 사이로 서로를 지나쳐 간다. 그 사이에 서있으면 세상의 중심에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교환학생을 갈 학교를 선택한 기준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도쿄에 있는 학교였고, 그 이유는 나의 로망을 실현시켜줄 시부야에 자유롭게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도쿄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부야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던 고등학교 친구와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 섰다. 벚꽃시즌이라 그런지 날씨도 화창하고 맑았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그 시간만큼은 인생에 몇 안 되는 큰 성취 중에 하나였다. 시부야역 광장의 하치코 동상도 보고 갸루의 성지라는 마루큐(109) 빌딩도 들어가 보고, 요요기 공원까지 걸어가 일본인들이 봄에 꼭 한다는 벚꽃놀이도 즐겨보았다. 그때만큼은 나의 일본 유학생활이 마치 꽃길만 펼쳐질 것 같았다.
유학생활 동안 정기권 내의 학교로 가는 동선이 아니어서 그런지 시부야는 갈 기회가 별로 없었다. 겨우 한국으로 돌아갈 시기가 다 와갈 즈음에 나에게 이런 로망이 있었다고 상기시켜줄 겸 스크램블 교차로 끝에 있는 스타벅스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몇 시간 동안 횡단보도를 내려다보았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교차하는 장면은 여느 대도시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다. 나는 도쿄라는 거대도시의 스케일과 그곳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직접 보고 싶었다.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는 그런 면에서 도쿄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시부야는 그저 로망이었을 뿐, 내가 정말 좋아했던 곳은 신주쿠(新宿)였다. 신주쿠 역은 JR과 사철이 지나가는 플랫폼만 수십 개인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거대한 역이다. 대형 건물 안에 유니클로와 빅카메라가 있고, 기노쿠니야(紀伊国屋) 서점이 몇 개나 있으며, 어느 백화점의 반 층을 도큐핸즈가 쓰고 있다. 그리고 가게별로 가격이 천차만별인 드러그스토어도 수십 개나 있다. 항상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가던 영화관도 있고, 동쪽 출구, 서쪽 출구, 남쪽 출구 별로 다른 쇼핑몰과 백화점이 입점해있어 볼 것도 많고 갈 곳도 많다. 정기권으로 신주쿠에 자유롭게 갈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야말로 신주쿠는 나의 놀이터였다.
도쿄에서 신주쿠역을 여행자가 아닌 신분으로 지도 없이 다닐 수 있다는 것이 도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 나게 해 주었다. 항상 가던 곳이 있다 보니 이따금씩 도쿄가 생각나면 신주쿠에 가서 필요한 것들을 사 와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기고는 한다. 도쿄에서도 안 가본 곳들이 많지만 이제 새로운 곳보다도 익숙한 공간에서 헤매지 않고 마치 현지인처럼 자신 있게 활보하고 싶어 진다.
시부야와 신주쿠는 도쿄에서 꼭 가봐야 할 중심 중의 중심지이다. 롯폰기나 긴자, 스카이트리 등 볼거리 즐길거리는 많지만 내 기억 속에는 시부야와 신주쿠가 로망이자 익숙한 공간으로 살아있으면서 비로소 도쿄라는 도시가 기억 속에 온전하게 자리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