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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미에 Dec 13. 2020

18. 아일랜드 2/2

리머릭 적응기

리머릭 생활의 시작


  더블린에서 약 3시간 반 정도 버스를 타고 서쪽으로 가면 공업도시 리머릭이다. 내가 아일랜드에 왔다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해서 계속해서 쳐다본 바깥의 풍경은 기대했던 초록의 들판과 낮은 주택들, 지평선 끝으로 보이는 하늘이었다. 리머릭은 공업도시라고 해도 내가 살다 온 부산만큼의 번잡함은 찾아볼 수 없었고, 거대 도시 필라델피아의 공장 지대와는 비교할 수 없이 작았다. 아일랜드 전체 인구가 부산 인구보다 약 100만 정도 많고, 리머릭의 인구는 19만 정도라, 도시 전체가 부산의 한 구()에 버금갈 정도이다. 그만큼 늘 조용하고,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아일랜드에도 방황하는 10대 청소년들이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다는 것조차 모른 채 지냈다.


인천공항 - 더블린공항 (2014)

  공항에서 리머릭으로 가는 버스가 어학원이 정해준 숙소 앞에 정류장이 있었던 지라 편하게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아일랜드에서 지내기 위해 선택한 옵션은 2층 집의 6인 셰어하우스였는데, 집에는 2명의 여자 이탈리아인과 2명의 남자 스페인 사람이 살고 있었다. 내가 들어오고 난 일주일 뒤에는 프랑스인 여자애가 들어왔다. 신발을 신고 집 안을 돌아다니고, 벽은 벽지가 아니라 페인트이고, 방에는 보일러는커녕 라디에이터만 덜렁 놓여있었다. 우리나라의 주거구조와는 너무나도 달라서 숙소 생활 첫날에는 뇌 회로가 살짝 멈췄다. 2년 전 미국에 갔을 때 놀러 갔던, 필라델피아에 사시는 대학 동기 언니의 친적 집과 구조는 상당히 비슷했지만, 좀 많이 더러웠다. 


스파게티 만들기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여태까지 4인실 기숙사에 화장실도 공용으로 써보긴 했으므로 어찌 되었든 나름의 룰을 잘 지켜가며 지냈다. 이탈리아의 알프스가 있다는 돌로미티에서 온, 학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Anna가 매일 아침 내려주는 이탈리아식 커피도 흥미로웠고, 같은 이탈리아인 언니가 만들어 준 이탈리아식 스파게티도 먹어볼 수 있었다. 



  이렇게 완전히 다른 문화권의 룸메이트들이랑 사는 것은 새롭고 독특한 경험이 될 수도 있지만, 그들은 너무나도 달랐고 숙소의 집세가 저렴하다는 것 외에는 나에게 특별히 메리트가 느껴지지 않았다. 우선 숙소 자체가 남녀 공용이어서, 남자들과도 화장실을 같이 써야 했고, 청소도 주기적으로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이 초중급 수준의 영어실력을 가졌다 보니 그들이 쓰는 스페인, 이탈리아식 발음이 섞인 영어를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그럴수록 대화를 피하게 되어 방 안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갔다. 가장 충격적인 일은, 옆방에 사는 스페인 남자가 밤마다 데려오는 남자 친구와의 소리를 벽 넘어 듣게 되었던 것이다. 야밤에 들려오는 침대 삐걱거리는 소리에 나는 셰어하우스 생활을 그만두기로 했다.


피자만들기



 홈스테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주거 선택지 중에서 남은 것은 ‘홈스테이’였다. 괴로웠던 셰어하우스 생활에 고민을 거듭하다 홈스테이 하는 어학원 친구들의 견해를 들어보고 선택한 결과였다. 비용은 처음에 등록한 학원비만큼 더 내야 했지만 집에서 홈맘이 해주는 음식들이 있기 때문에 식비를 절약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학원에서는 영어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내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아주 특별한 집으로 보냈다. 학원에 다녀와서도 영어 선생님 출신의 홈맘과 집에서 영어 공부를 따로 할 수 있다는 그 집이었다. 


Homestay House, Limerick, Ireland (2014)

  부부는 6명이나 되는 자녀 중에서 몇은 시집, 장가보내고 막내딸은 더블린에 살고 있어서 지금은 2명의 자녀와 살고 3명의 하숙생들이 남은 방을 쓰고 있다. 이미 학원의 스페인 친구 Angella와 리머릭 대학에서 석사 공부를 하는 Patrick 아저씨가 살고 있었고, 나는 이 집의 자랑이자 아일랜드 최고의 국립대학인 트리니티 칼리지에 다니는 막내딸 방을 쓰게 되었다. 


 

 방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따로 있어 아침마다 화장실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되었고, 방도 집답게 훨씬 넓고 쾌적했다. 부엌과 거실이 하나로 연결되어있는 1층은 가족과 하숙생들의 대화의 장이 되었는데, 나는 넓은 테이블에서 홈맘과 신문기사를 읽고 느낀 점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문법 책을 따로 사서 공부하면서 이것저것 질문하기도 했다. 특히나 방안에 있던, 살면서 써 본 침대 중 가장 푹신했던 침대에서 잘 때와 나만 쓸 수 있는 1인용 소파에서 영화를 볼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홈스테이 식탁

  홈스테이는 영어에 대해 그동안 가지고 있던 소극적인 태도나 불안감을 해소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해주었다. 평일에는 아침에 스페니쉬 친구들과 어학원에 가고, 돌아와서는 홈스테이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TV로 심슨을 보며 영어를 좀 더 공부하고, 주말에는 아침에 동네를 산책하거나 운동하고, 오후에는 시내에 나갔다 오기도 했다. 때로는 어학원 친구들과 함께 혹은 혼자서 코크나 골웨이 등 아일랜드의 다른 도시들을 여행하고 오기도 했다. 인생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가장 여유롭고 평화로웠던 시간이었다.



꿈의 실현에 대한 소회


아일랜드 음악을 동경해서 갔지만 술을 좋아하지 않아서 노래가 흘러나오는 아이리쉬 펍에 홈맘과 딱 한 번 가서 기네스 맥주를 먹어본 것 빼고는 가지 않았고, 어학원에서 선물로 받은 아일랜드 휘슬은 어릴 때 불던 리코더랑은 달라서 고이 보관만 하고 있다. 하림처럼 잘 불어보고 싶긴 하지만 도통 악기에는 재능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지냈던 리머릭은 더블린보다는 한참 시골이라 거리에서 버스킹을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달’의 ‘서쪽 하늘에’ 보다 더 귀에 꽂히는 좋은 음악을 찾지도 못했다. 


Walton's Music Store, Dublin (20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에 있는 동안에는 내가 동경하던 나라에 와 있는 것 자체가 꿈만 같았고, 한 달 간의 미국 생활과는 또 다른 문화적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홈스테이 식구들의 식생활은 나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서, 블랙커피 믹스에 우유만 부어도 라떼 맛이 난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특히나 스콘은 아무리 매일매일 열심히 동네를 달려도 찌는 살을 막게 할 수는 없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퍽퍽한 스콘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마트에 대량으로 파는 싸고 두꺼운 스콘을 반으로 잘라 꿀을 한 겹만 발라도 완전히 다른 세계의 맛을 선사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그 위에 딸기잼을 한 겹 더 바르면 금상첨화. (누텔라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스콘과 함께 곁들이는 홍차 한 잔이 아일랜드 생활의 제일 큰 낙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스콘은 비만의 주범이니 자제하자는 생각이었지만 홍차 없이는 못 살 줄 알았더니 주변에 흔하지 않아서 그런지 금방 잊혀졌다.


스콘의 세계


  어학연수의 측면에서는 기간이 짧아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영어에 대해 자신감은 많이 얻었다. 일단은 한국어를 아예 쓸 수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한국인이 아예 없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한국인은 어딜 가나 있었다. 문제는 가깝고 통용화폐가 같은 EU의 영어권 국가여서 그런지 스페니쉬들이 굉장히 많았고 그다음으로 브라질리언이 많았다. 스페인은 경제위기 때문에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 영어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스페인어 발음을 엄청나게 섞어서 말하는 그들의 영어는 처음에는 듣기가 상당히 어려웠지만 갈수록 적응이 되어 나중에는 서로 좋은 친구사이가 되기도 했다.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를 쓰는 사람들은 발음은 다르지만 라틴어에서 파생된 모국어의 어휘가 영어랑 비슷해 영어실력은 금방 늘어났다. 특히나 브라질 친구들은 발음까지 상당히 좋았는데, 거의 대부분 상위 클래스로 금방 올라갔다. 한편으로는 짧은 기간만 있어야 하는 나 자신이 분하면서도 오래 머물면서 영어를 잘하게 될 수 있는 그들이 정말로 부러웠다. 


LISC, Limerick, Ireland (2014)

  아일랜드에 온 지 얼마 후에 학원에 새로운 아시아인이 왔는데, 공교롭게도 일본인이어서, 지금 생각하면 영어를 배우러 온 일본인에게 반가움에 자꾸 모국어로 말을 걸어서 미안하지만 차라리 내가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일본어까지 쓰게 되어 영어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래도 학원에서는 나를 좋게 본 모양인지 수업 끝나고 학원 블로그 관리를 돕는 아르바이트를 시켜주어서 돌아가기 직전에는 용돈벌이도 살짝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학생비자나 워킹홀리데이로 와서 더 길게 있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럼 영어 실력이 조금 더 나아졌을까 생각해보면 항상 아쉬운 마음이다.


Limerick , Ireland (2014)

10월 중순에 갔던 아일랜드는 따뜻했지만 겨울 내내 비가 왔다. 비 맞는 것을 정말 싫어했지만 걸핏하면 비가 와서 ‘이 정도는 맞아줄 수 있지 하며’ 어느 정도 내성까지 생겼다. 일단 아일랜드의 비는 깨끗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중충한 하늘 때문에 우울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푸른 하늘을 못 보는 것은 아쉽지만 나는 아일랜드에 있으니까. 비가 오는 거리 풍경도 좋았고 우산을 쓰고 어학원 친구들과 집에 가는 길도 좋았다. 지붕이 맞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2층 방 안에서 영화를 보는 시간도 좋았다. 그래도 언젠가 아일랜드에 다시 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햇빛 쨍쨍한 여름에 가서 이제는 익숙한 운전 실력으로 섬을 한 바퀴 돌아보고 싶다.



Dublin, Ireland (2014)
Galway, Ireland (2014)
Cork, Ireland (2014)
Belfast, Nothern Ireland, UK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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