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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랜만의 Nov 23. 2021

유럽 국제학교에서 외국인 학부모 사귀기 2

외국인에게 진솔해지기

그렇게 세르비아 엄마와 친해졌다.



그다음 친구가 된 학부모는 영국 엄마였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영어실력이 아주 뛰어나진 않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과 대화할 때는 편안하게 영어를 구사하지만(그쪽이나 나나 영어가 외국 어니까 서로 기다려주고 이해해준다), 영어가 모국어인 외국인을 만날 때는 그야말로 손발이 차가워지며 동공이 확장되고 겨드랑이에 땀이 나는 상태가 된다.


유럽에서 미국인을 만날 때는 정말 한국 동포를 만났을 때처럼 반갑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발음으로 편안하게 말하기 때문에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을 만난 것처럼 친밀감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인은 그렇지 않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액센트의 편안함의 순위가 미국, 호주, 영국 순이다.


그런데, 무려 영국인을 친구로 둬야 한다니!


그러나 이건 좋든 싫든 힘들든 편하든 상관없이 해야만 하는 숙제 같은 것이다.

내 아들내미가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영국인인데  영국 엄마와 친하게 지내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언어란 놈이 참 신기한 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급속도로 익숙해진다는 거다. 아마 그 영국 엄마가 내 영어실력에 맞추느라 천천히 박또박 얘기해 줬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내 손발은 따뜻해지고 내 겨땀은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영국 엄마의 가벼운 인사에도 아,. 영국인이다. 어떻게 반응해야 되나, 잘 지내는지 물으면 우리가 중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말해야 되나? 실생활의 영어는 참 애매했다.


그런데 그 'How are you?'에 대한 답 'I am fine. Thank you. And you?'로 하는 게  참으로 은 변화를 일으켰다.


그냥 바삐 걸어가며 가볍게 던진 인사에 내가 'and you?'라고 답하기만 하면 외국인 학부모들은 걸음을 멈추고 긴 대화를 시작한다.


아니, 이걸 원한 게 아닌데...

하지만, How are you?라는 대답에 한국인은 자동으로 'I a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대답하게 되어있다. 실험해 보라. and you 없이는 기분이 찝찝하다.


생각해보면 How are you?라고 물어보면 미소 지으며 'Hi, how are you?'라고 답했을 때 가장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지나갔던 것 같다.

이게 정답이었던 거지.


그러나 And you를 대답에 추가하도록 자동 입력되어있는 나는 항상 And you?를 붙였고 그 덕에 가볍게 인사하고 지나가려던 학부모들은 걸음을 멈추고 대화를 시작했으며, 그 결과 내 영어실력은 향상되었다.

어쩔 수 없이 근황 토크를 하고 한 3-4분은 대화를 진행해야 그 가벼운 만남이 끝났으므로. 

그들에겐 'And you?' 에는 길게 답하는게 그들 문화의  예의인가 보았다.

I am fine, thank you. And you? 덕에 내 영어실력이 많이 늘고 외국인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어쨌든, 이 영국 엄마와는 And you? 덕분에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됨으로써 친해졌다.


그런데, 참 감정이라는 게 아이러니인 게 아주 친한 친구한테도 말을 잘 못하게 되는 이야기를 외국인에게는 하게 된다. 나에 대해 너무 잘 아는 절친에게는 혹시나 이 말이 친구에게 상처가 될까, 아니면 내 현재 기분이 친구에게 전가될까 하는 우려에 쉽게 입밖에 내지 못하는 말들을 나라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외국인에게는 오히려 진솔하게 얘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 영국 엄마도 마찬가지였는지

아이들을 세명이나 키우는 것에 대한 어려움, 영국이 아닌 체코에서 계속 살아야 하나 하는 문제, 남편과의 불화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을 상담해 왔다.

영.어.로.


처음에는 이런 얘기를 나한테 해도 되나? 하고 생각했지만, 그 영국 엄마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오히려 나는 외국인 학부모 그룹에 잘 끼지 않으니 말이 새어나갈 염려가 없고 특히나 동양인 특유의  조용함과 예의 바름이 이 영국 엄마의 마음을 진정시켜주어 많은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게 만든 것 같다. (사실 나는 조용하지도 나긋하지도 않지만.)


영국 엄마와 사귀면서 느낀 것은 우리의 대화에 한국 학부모들의 대화에서 주로 등장하는 아이들의 수학 실력이라든지 과학 실력에 대한 내용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인생을 어떻게 살지, 직업을 바꾸는 게 좋을지에 대한 고민, 아이들의 성격에 대한 고민, 아이들의 교우관계에 대한 고민, 생일파티를 어디서 할까에 대한 고민, 부활절 방학에 어디를 여행할까에 대한 고민들이 주를 이루었다.


학부모와 얘기하면서 학업 얘기를 하지 않았던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개인차도 있겠지만, 아이들의 미래를 학업과 디렉트로 연결시키지는 않는 느낌이었다.

학업 얘기를 주로 하는  한국 엄마들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지만, 이런 대화를 위주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학부모로서 이 영국 엄마와 대화를 한다기보다는 하나의 인간으로 대화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차 한잔을 마시는 시간 동안 참 값진 경험을 했다 싶었다.


세상은 넓고 앉을 자리는 많고 저자리에 앉아 누구와 대화할지는 내가 정하는거더라.




다음 친해진 엄마는 이스라엘 엄마였다. 우리 아들은 위에서 말한 영국 아이, 그리고 지금 말하는 이스라엘 아이와 참 잘 지냈고 오래 교류했다.

역시나 이스라엘 엄마와의 대화는 유태인의 학습법으로 유명한 나라답게 공부에 대한 내용이 대화의 주를 이루었으며, 한국 엄마와 대화하듯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이스라엘 엄마의 영어실력이 아주 뛰어나 않았던 관계로 너무나 편안했다.)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 엄마들이 주로 묻는 질문은 그거다.


'한국 아이들은 왜 그렇게 수학을 잘해요? 비결이 뭐예요?'


그럼 나는 솔직하게 얘기한다.


'다섯 살 정도부터 갖가지 수학 학습지를 하기 시작해서 엄청난 돈을 사교육에 쏟아부으며 이해가 안 되면 외워라 라는 모토로 대부분의 문제를 그냥 들입다 외우고 있다고.'


그러면 외국 엄마들은 묻기를  포기한다. 어차피 우리나라, 일본, 중국을 제외한 나라에서 그렇게 수학학원, 영어학원에 목을 매고 그렇게 엄청난 돈을 쏟아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생각해보면 극동아시아의 교육열은 거의 미친 수준인 것 같다.


한국 문제집이나 교과서를 구해서 보고 싶다고 하는 엄마들도 있다. 나는 교육하는데 비밀을 가지지 않는 주의라 다 오픈한다. 연산 문제집, 교과서, 심화 문제집 보면서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외국 엄마들은 한국 엄마와 조금도 다르지 않게 아이들 교육에 깊은 관심을 보이지만 실제로 한국처럼 교육을 시키는 것에는 반대했다. 그건 거의 아동학대에 가까운 일이라고.


학교를 다녀온 아이가 왜 또 학원을 가야 되는 거냐고.


동의한다. 깊게 동의한다.


그러나, 한국인 전체가 다 같이 변하지 않으면 어떻게 내 아이한테만 그 학대를 멈출 수 있겠는가.


다 같이 변하는 게 아니라 나 혼자만 그 미친 교육열의 대열에서 빠져나오면 내 아이만 도태될게 불 보듯 뻔한데.



어쨌든 외국인 학부모들과 교류하면서 느낀 점은 이거다. 내 아이들이 외국 아이들과 친밀하게 교류하고 탈없이 학교생활을 하는 것을 원하면 엄마가 발을 뒤로 빼고 아이만 앞세우는 방법으로는 아무것도 얻을것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정말 사회성이 뛰어나고 언어의 감이 좋아서 엄마의 도움이 전혀 필요 없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결국 초등학생 정도의 나이에는 엄마들의 교류도 필요한 것이다.


외국에서뿐만아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 외국인들이 정말 많다.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에 우리와 피부색이나 언어가 다른 아이가 놀고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다가가서 교류를 하는 것을 권한다. 사람들은 다 비슷하고, 외국인은 한국에서 외로우며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렇게 우리 아이세상을 엄청나게 넓혀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 적극적으로 나서보는 건 어떨까 싶다.

(주의: 주변 한국엄마들의 시선은 무시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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