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출국하기 이틀 전까지 회사를 다니다 허겁지겁 프라하행 비행기를 올라탄 엄마를 둔 죄로 우리 아이들은 정말 총칼 없이 전장에 내던져진 군인과도 같은 적응기를 거쳐야 했다.
아무 준비도, 아무 긴장감도 없이 프라하 국제학교에 입학을 시킨 엄마의 무심함이란!!!
유럽은 한국보다 경쟁이 덜할 거야, 한국보다 자유롭겠지, 애들은 금방 적응한댔어 하는 나의 막연한 믿음 때문에 우리 아이들의 학교생활은 당혹스러움으로 점철되었다.
일단, 우리 아이들이 입학한 학교는 체코 공립학교가 아니라 체코의 영국 국제학교였고 한국의 치열한 점수 경쟁을 피해서 도망 온 내 목적과는 정반대로 그곳은 프라하의 8 학군 같은 곳이었다.또 다른 전쟁터였던 것이다.
기본 5개 국어 이상을 하는 초등학생이 넘쳐나고 과학 도감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이탈리아 5학년생, 주말마다 승마, 요가, 피아노, 바이올린을 하는 체코 재벌집 자제분, 휴가기간에는 크로아티아에 개인 요트로 여행을 떠나는 글로벌 기업 회장 자제분이 다니는 곳이었다. 그야말로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그 틈바구니에 알파벳 파닉스만 겨우 떼고 영국 국제학교에 똑떨어진 우리 아이들은 첫날부터 멀뚱멀뚱 서서 눈만 또르륵 또르륵 굴리는오스트랄로 피 데쿠스같은 몰골로 '엄마 어떡해?'라는 물음표가 새겨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그보다 조금 더 진화했지만 인간의 모습에는 한참 못 미치는 호모 에렉투스 같은 눈으로 '어..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는 말줄임표가 새겨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찌어찌 입학 수속을 하고 아이들을 배정된 반에 내 아이들을밀어 넣었을 때의 기분이란..
걱정되는 마음에 잠시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창 너머 내 아이의 표정을 살폈는데, 그 표정은 '머나먼 우주의 어떤 행성( 예를 들면 명왕성 같은 곳이랄까?)에 불시착해서 방금 우주선에서 내린 지구인의 표정이었다. '뭐, 뭐,... 뭐.. 뭐지? 이 상황은? 설마 날 잡아먹진 않겠지?' 하는 표정의 아이들을 뒤로하고 한숨을 푹푹 내쉬며 '영어라도 제대로 갖춰서 왔었어야 했나? 오페라 관람을 가는 정장,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팬티만 입고 서있는 격이잖아..'라고 생각하며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을 떼어 차에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또 어찌나 예쁘고 햇볕은 찬란하던지..
겨울을 제외한 대부분의 하늘이 이랬더랬지!
유럽에서 생활하며 내가 느낀 감정은 계속 저 두 가지였던 것 같다. 불안함과 행복함.
아무리 적응이 되었다 안정이 되었다 생각해도 안심하면 벌어지는 돌발상황들에 항상 불안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예쁜 풍경과 잦은 여행의 기회에 어쩔 수 없이 행복하기도 했던 그런 경험.
'유럽에서 사는 것 너무 좋아요~ 천국이에요'라고 장점만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백 퍼센트는 믿지 마라.
(뭐, 물론 어떤 가감도 없이 100퍼센트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긍정적인 사람은 티벳 오지에서도 나는 '인생이 너무 즐거워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일 테니 논외로 하자)
유럽은 한국인에게 백 퍼센트 순도의 외국이고(차라리 태국, 베트남, 중국이면 한국인의 어드벤티지라도 있겠지), 당연히 인종차별이 있고(우리 모두는 유러피안에게 중국인임-니하오!), 그 나라말을 못했을 때 그 나라 사람들의 비웃음과 업신여김(우리는 그 나라에서 문맹자, 까막눈이다!)이 있다.
물론, 여행을 하기도 너무 좋고 날씨도 너무 좋고, 가는 곳마다 예쁘고 감탄스럽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자기 나라의 아름다운 성에 원숭이처럼 생긴 동양인이 기웃기웃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표현이 과해서 미안하지만 정말 그런 눈으로 본다)
아닌데, 내가 가 본 유럽에서는 다들 인종차별 없이 한국인 좋아하던데.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도 하던데. 그렇게 반박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당신들은 관광지에서 관광객의 돈으로 사는 현지인 장사치들만 보고 온 것이다.
그들은 동양인들 너무 좋아한다.
너무 좋아해서 자기 나라 사람한테는 절대 강제로 요구하지 않는 팁을 반강제로 받기도 한다. 동양인들은 팁을 요구하면 당연히 줘야 된다 생각하고 거부하지 않고 주니까.
내가 나고 자란 나라에서도 불평불만이 있을 수 있는데, 문화와 언어가 다른 남의 나라에서 어찌 불평불만이 없을 수 있겠는가. 무시를 당할 때마다 나는 '못 사는 너네 나라에 우리나라 대기업이 공장을 세워 고용해준 피고용인의 숫자를 세어봐라. 너네가 우리를 무시할 수 있겠는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그들의 얼굴에 대고 직접 말할 수는 없었다. (와인 병으로 맞으면 나만 손해다..)
다음 글에서는 내가 겪은 인종차별에 대해서 이야기할 예정이다. 하.. 인종차별.. 그 지워지지 않는 상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