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마친 새로운 집 근처, 걸어서 3분 거리에 동네시장이 있다. 퇴근 후 지하철을 내려 집으로 가는 길 시장을 관통해서 가는데 여기는 정말 지갑 털리기 좋은 곳이다. 붕어빵 3마리에 천원인 흔치 않은 가게부터 집에서 만든 식혜 1통 삼천 원, 혼자서도 부담 없는 사과 6알에 오천 원.
그날따라 시장횟집 가판대 만 원짜리 모둠회가 눈에 띄어 마트에서 어묵탕재료도 샀다. 노트북엔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회 세팅을 마치고 어묵탕을 조리해 좋아하는 그릇에 담아다 자리로 돌아왔다. 기분 좋게 반주할 잔도 챙겼다.
실하게 살이 오른 대방어 한 점에 기분 좋은 한잔방에 넷플릭스를 보다 노트북 넘어 보일러실문에 붙여둔 그림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아 저거. 마저 색칠할까? 생각이 들자마자 밥 먹다 말고 오일 파스텔을 찾아 서랍을 뒤졌다. 알딸딸한 술기운에 들떴는지 색칠하는 영상까지 삼각대를 꺼내서 촬영했다.
바다인 부분을 색칠하고 나서야 밥 먹던 중인 게 떠올랐다. 어묵탕은 이제 식어서 뜨뜻미지근해지고 술기운은 빠져 식사도 멈췄다. 삼각대를 정리하고 그릇을 치우는데 얼굴에 웃음기가 사그라들질 않았다. 혼자서 키득키득. 나 지금 뭐 했나 싶다가도 뭐 문제 될 게 있나 싶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좋고 아무거나 해도 되는 우리 집인데.
블라인드가 있지만 블라인드를 한 번도 내려본 적 없다. 14층 창 밖 풍경이 시원하고 일출부터 일몰 해가 잘 보여 언제나 걷어둔다. 그래서 우리 집은 늦잠을 잘 수 없는 집이다. 순식간에 밝아진 조명에 익숙하게 일어나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나와 같이 밤을 보낸 친구도 덩달아 일어나 커피 한잔 내려 마시려고 하는데 아직 잠이 덜 깬 게 눈을 못 뜨더라.
기가 막히게 내려진 드립커피에, 죽은 빵도 살아 돌아온 식빵에 버터와 쨈을 발라 모닝티타임을 가졌다. 이 둘의 조합은 불금, 얼큰하게 한잔 걸치고 다음날 시원하게 해장하는 아저씨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의 환상의 짝꿍이었다. 필터에 뜸 들여진 원두에서는 카페 냄새가 났고, 고소하게 데워진 식빵에서는 녹은 버터 냄새가 났다. 거금을 들여 구매한 1인소파는 너무나 폭신했고 식탁으로 들이치는 햇볕은 따뜻하고 창밖의 풍경은 시원하게 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