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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 Apr 22. 2021

나의 눈물 포인트

난 ㄱㅏ끔 눈물을 흘린ㄷㅏ




마음 놓고 마음껏 슬픔에 잠기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일찍이 잠자리에 들어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마음 시리던 그 날들을 회상한다.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두 눈에 눈물이 차 오르는데 또르르 하고 흘러 귓바퀴로 들어간다. 콧물이 가득 차 숨쉬기가 버거워질 때쯤 자리에 앉아서 눈물 콧물, 귓바퀴에 들어간 눈물까지 모두 쏟고 나면 지쳐서 잠이 든다.


어이없는 상황에 말은 안 나오고 목구멍 밑에서 턱 막힌 말문에 답답할 때도, 가만히 있는 나한테 왜 시빈가 억울할 때도, 화가 날 땐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부터 나는 사람이 나다.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흐르는 눈물이 있는가 하면 마음이 찢어지는 심정으로 흘린 눈물도 있다.


내게 눈물은 슬픔이었는데. 영화 [인사이드 아웃]처럼 온전한 슬픔의 파란색 구슬에서 기쁨과 슬픔이 뒤섞이기도 하고 버럭과 슬픔, 소심과 기쁨이 만들어낸 여러 빛깔의 구슬이 생겼다. 여러 감정이 뒤섞인 눈물이 흘렀다. 작년 한 해 동안 감정 롤러코스터를 무한 반복했는데 감정의 폭이 요동친다고 나빴다고만 할 수 없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작년은 특별한 한 해로 기억 남아 꽤 오랜 시간 동안 잊히지 않은 것 같은 예감이든다.








퇴사 날을 받아놓고 혹시 내가 전공을 버리고 따른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 바리스타 전문 학원을 다니게 됐다. 열흘 과정이었는데 주말은 휴일이고 평일을 내도록 퇴근 후 학원을 다니는데 이게 생각보다 여간 힘에 부치는 일이 아니었다. 퇴근하자마자 저녁도 거르고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수업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11시였다. 이 과정을 열흘이나 하려니 이론을 배우는 초반에는 죽을 맛이었다.


열몇 명의 수강생으로 나이대는 대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했는데 취미로 배우는 사람도 있고 창업을 목표로 배우는 수강생으로 다양했다. 그중 유독 질문이 많았던 어르신 한분이 있었는데 나는 그 어르신이 싫었다. 수업시간을 끝내기 전 궁금한 점을 물어볼 수 있는 질문시간이 있다. 10시 땡 하면 당장에라도 튀어나가고 싶은데 그 어르신은 강사님이 방금 설명한 것도 한 번 더 물어보시고 내가 생각하는 당연한 상식을 하나하나 확인하시면서 질문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어르신은 바리스타로 직장생활을 목표로 학원에 나오셨는데 수업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과 엉망진창이던 실습 활동을 보고 나는 마음속으로 단정 지었다. '저 어르신이 자격증을 따더라도 어디 가서 취직은 못하겠구나' 하고. 참 못됐다. 생전 접하는 환경에 누가 단번에 척척 해날 수 있을까? 수업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어르신은 눈에 띄게 실력이 좋아지셨다. 그러다 조별로 실습을 하다 옆자리에 앉게 됐을 때 질문 하나를 했다.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어르신은 젊은 시절 배웠던 지식의 유효기간이 다 됐음에도 불구하고 예순다섯의 나이에 새로운 지식을 쌓고 있었다. 내가 65살이 됐을 때 새로운 걸 배우려고 할까?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나 들까? 점점 좁아지는 환경 범위에 순응하며 살진 않을까? 예순다섯의 멋쟁이 어르신을 폄하하고 있던 나를 발견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못된 내 모습이 계속 계속 떠올랐다. 부끄럽다 못해 수치스러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고해성사하는 느낌으로 핸드폰을 들어 친구에게 오늘 수업에 있었던 일을 말하는 그 와중에도 못된 내 속마음은 쏙 빼놓고 둘러대고 있었다. 정말 내 마음 편하자고 털어내고 있었다.


빙빙 돌아가는 대화 속에서 결국엔 내 못돼 처먹은 모습을 들켰다. 친구는 그런 나를 걱정해주었다. 내 경험만을 기반으로 '틀'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 보고 있는 게 아닌지, 지레짐작하거나 판단하는 건 좋지 않은 습관이라며 본인이 읽으면서 인생의 태도에 대해 정말 많이 배웠다는 책 한 권을 추천해주었다. 지금 내게 필요해보나보다.


그날 밤 핸드폰을 붙잡고 침대에 앉아서 엉엉 울었다. 내가 너무 못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내가 너무 못난 사람이라는 게 서글펐다. 친구에게 위로와 조언이 섞인 팩트 폭격을 맞으면서 어르신에게 든 죄책감을 조금 덜었다. 그렇게 한 바탕 쏟아내고서야 후련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다.

 







지금 보다 더 어렸을 땐 사람들이 퇴사를 축하는 이유를 몰랐다. 불경기라는 소리는 학창 시절 귀에 딱지가 지도록 들었다. 취직이 하늘에 별 따기인 이 판국에 매달매달 월급이 들어오는 직장을 때려치우는 퇴사를 왜 축하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퇴사하기 전까지.


지금까지 퇴사는 이직을 위한 수단이었다. 간호조무사를 그만둔 건 대학을 가기 위해서고,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둔 건 부산에서 서울로 이직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그다음이 준비되지 않은 퇴사를 해야겠다고 생각이 든 날 이후로 세상이 행복으로 가득 찼다. 6월 25일이 퇴사 날이었는데 나는 5월 31일부터 행복해졌다.


6월 마지막 날에는 제주도로 떠날 계획을 하면서 남은 근무를 하는데 하루하루가 나에게 주는 서프라이즈 선물 같았다. 동료들은 직장을 탈출하는 나를 부러워했고 퇴사 후 일정이 여행이라는 사실에 더 괴로워했다. 가진 게 자유인 나는 돌아오는 티켓 없이 편도 여행을 떠났다.


묵직한 백팩을 메고 한 손에는 케리어를 끌고 발 닿는 데로 떠돌았다. 혼자서 떠난 여행은 자유로움을 더 두드러지게 해 주고 떠나기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나를 맞닥뜨리게 된다. 여행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무언의 사실을 스스로 깨달았다.


그렇다고 완벽한 여행은 아니었다. 버스 배차시간을 생각 못하고 걸어 다니기 일쑤 었다. 1시간 후에 온다는 다음 버스를 기다리느니 걷자고 생각하서 하루 2만 보 이상씩 걸어 다녔고 그해 이상기후로 여름 내내 비가 내렸는데 지긋지긋한 장마가 끝나니 내 여행도 끝났다.


여행 3주 차쯤엔 내가 왜 돌아갈 비행기 표를 미리 구해놓지 않았을까 하면서 자책했다. 퇴사 후에 변변한 백수생활도 못해보고 여행을 떠나다 보니 익숙한 나만의 공간에서 늘어짐이 그리웠다. 장기 숙박을 예약했던 숙소는 룸 컨디션이 너무나도 최악이라 금액의 절반만 환불받고 급하게 떠나야 했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자꾸만 합석과 동행을 요구받았다.


마지막 무렵엔 여행을 버텨야만 했다.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제주에서의 마지막 하룻밤을 남겨두고 있었다. 내일 아침 비행기로 떠나기 때문에 마지막인 오늘은 그저 멍하니 보내기로 했다. 남쪽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카페에 앉아서 이번 여행을 다시 뒤돌아 보고 여행 내내 사모은 엽서를 친구에게 보내려 간략한 편지를 쓰는데 왈칵하고 눈물이 났다.


이게 무슨 일인지 순간 당황했다. 나 왜 우냐? 엽서를 구매했던 종달리와 위미리에서 만났던 사람들. 엽서를 고를 때 느꼈던 감정들. 남은 여행을 기대하던 내 모습. 하물며 습습한 날씨에 2만보씩 걸으면서 때도 "지금 내 옆으로 내가 타야 했던 버스 지나간다"며 조잘 재잘 통화하면서 힘든 줄 몰랐고 최악의 숙소라고 징징거리던 나를 보러 와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순간순간들이 다 행복했다. 흔들리는 야자수 밑으로 물질 나가는 해녀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바람을 타고 부서지는 파도에 스며든 바다 냄새도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내일이면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면서 부끄러워진 나는 카페 루프탑으로 올라가 소중한 사람들과 이 행복감을 나누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운디". 감동의 눈물을 또르륵 흘리고 있었는데 친구가 내 감동을 박살 냈다. "으~ 찌질이~~~"








꿈같던 백수 생활을 끝으로 다시 취직을 했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시스템. 새로운 환경에 부단히 적응해 나갔다. 2주간 아르바이트로 근무를 하다 정직원으로 전환됐다. 원래 하던 일이다 보니 쭈뼛쭈뼛하던 행동이 자연스러워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첫 월급을 받고 또 한 달이 흘렀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 비해 나쁜 조건 하나 없고 꼴 보기 싫을 만큼 미운 사람도 없다.


가진 게 자유던 시기는 끝이 났고 주 5일 아침 8:30분부터 오후 17:30 분까지 근무한다. 돈이 부족하다 싶으면 토요일 추가 근무를 지원해서 주 6일 근무도 가능하다. 거기에 인센티브 추가 근무로 18:30에 퇴근한 날도 있다. 20:00 넘어서 퇴근하는 직원을 보면 천하제일 체력을 가졌나 생각한다.


출근하자마자 몰아치는 업무속에서 겨우 숨 한번 돌리고 나면 퇴근할 시간이다. 어제 먹다 남긴 메뉴를 저녁으로 때우고 그다지 궁금하진 않지만 유튜브에 아무 동영상이나 클릭해서 그냥 본다. 알고리즘에 의해서 적당한 영상들이 슥슥 지나간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기를 며칠이 지났다.


어느 퇴근길에 한 달 후 유효기간이 만료된다는 기프티콘 안내 메시지를 받았다. 집에 들어가기 전 커피숍을 들러 기프티콘 금액만큼 원하는 디저트로 변경해서 포장해가는 사소한 사건 덕분에 무료하게 반복되던 일상이 틀어지게 되었다.


먹음직스러운 디저트가 생겼으니 오랜만에 커피를 내려 마시고 싶어 졌다. 저번에 사놨던 디카페인 원두를 뜯어서 첫 개시할 생각이 조금 들뜨기도 했다. 소소한 이벤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집에만 도착하면 뭉그적 늘어지던 내가 사부작사부작 움직이게 되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하루 동안 묵었던 피로를 따듯한 물에 씻겨 내고 옷장에서 뽀송하게 마른 편한 잠옷을 꺼냈다. 평소라면 핸드폰을 붙들고 30분 되면 씻어야지. 정각되면 씻어야지. 십 분 뒤에 씻어야지. 하면서 무기력하게 미루기만 했을 텐데 부지런해진 내가 좋았다.


의미 없이 영상을 보던 유튜브에서 감성 넘치는 재즈 팝을 틀어놓고 커피를 내렸다. 원두를 수동 그라인더로 갈다가 투두둑하며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데 아니 이게 무슨 사고람? 싶으면서도 맛있는 음료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즐거웠다. 추출되는 커피 한 방울까지 기다려 내린 커피맛은 너무 써서 물을 더 타마셔야 했지만 내가 마실 커피니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주말에 쇼핑했던 책을 꺼내 펼쳤다. 언제 출간된지도 모르는 이 책은 서점 벽면의 책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보물 같은 책이다. 기프티콘 하나로 내가 좋아하는 저녁이 만들어젔다. 건조한 일상 속엔 알게 모르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도처에 널려있었다. 은은하게 울리는 재즈음악, 향긋한 드립 커피, 달달한 케이크에 독서하기 좋은 노란 조명의 우리 집 독서 스팟. 지금 듣는 노래가 마음을 울리고 글귀가 마음을 울려서 지금이 좋아서.


ㅁㅓ리가 ㅇㅏ닌 맘으로 우는 ㄴㅐㄱㅏ 좋ㄷ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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