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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짜라 Mar 24. 2022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불행해서 난 행복해

2021의 어느 날, 세상이 하얗게 뒤덮인 어느 날이었다. 워낙 좁은 통로로만 이루어진 아파트의 단지 내라 유독 눈이 두둑이 쌓였고 하얗기만 한 우리 동네는 그에게 익숙하고도 낯선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그날은 어김없이 집안 분위기가 싸늘했고 그는 어김없이 얼큰히 취해 집에 들어온 날이었다. 그날은 유독 얼큰한 말이 없었고 그는 한마디 낭비 없이 방에 들었갔다. 이제는 알 수 있다. 말 한마디 하기조차 버거울 정도로 스스로 상처를 돌보기 바빴음을 이제는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온몸에서 말하고 있었다. "나는 힘이 들어" 지금에서야 보이는 것들이지만 당시의 그의 온몸에서 외치는 몸부림을 나는 읽을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는 끊임없이 피력하려 했고 외쳤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견뎌내고 있어. 충분히 힘들어. 내가 더 감당할 수 있을까?" 


그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주사가 있었다. 마냥 그의 주사를 미워할 수 없는 것은 내가 그를 닮았기 때문도 있으리라. 그리고 그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하기 때문일 것을 감히 짐작해본다. 그날, 우리 동네가 하얗게 뒤덮인 날 유독 어두워 보이는 그의 방에서 그는 말했다. "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불행해서 난 행복해. 감당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이 말이 당시는 좀처럼 헤아릴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물음표였으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불행이 어떻게 행복일 수 있는가. 그저 우울증인가 보다 하고 혼자 어물쩍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그는 또다시 우리 집의 평화를 위해 감정 쓰레기통을 도맡았고 나조차 그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그리고 급조된 얼룩덜룩한 아크릴판이 한 겹 씌워진 평화가 우리를 에워쌌다. 


나는 행복하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불행이 만연하기에 나는 행복하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감당할 수 있음이 이리 행복한지 이제 알았다. 그리고 당신의 그 무게를 감히 헤아리기는 어렵지만 어렴풋이 그의 고뇌의 잔재를 느낄 수 있다. 누구처럼 되지 말아야지 하며 당신에게 내 감정을 전가해서 미안하다. 당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당신이 처음 내게 말했던 당신의 유년시절의 상처, 그리고 당신은 알고 싶지 않았던 나의 상처. 피붙이라는 이유로 나의 상처를 감당해내야 하는 나의 일방적 이야기들을 소화해내며 상처를 감내해야 했던 당신을 향한 죄의식이 나를 에워싼다.  우리는 어찌 보면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감당해내는 법이 다르다. 당신은 한 없이 깊은 심해와 같은 마음으로 당신을 묻어버리며 감당해내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언젠간 당신이 감당의 행복보다는 스스로의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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