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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짜라 Apr 12. 2022

내가 열을 주어야 하나를 내어주던 너였는데.

10년째 너를 소화 중.

소화가 되지 않아 방을 서성였다. 스무 살 언저리, 대학교 다닐 때 항상 소화제를 들고 다녔던 내가 생각나서 장롱 깊숙이 넣어둔 스무 살 적 들고 다니던 가방을 뒤적였다. 나오라는 소화제는 나오지 않고 기억 너머 저편 멀리멀리 보내버린 너의 흔적들이 내 손에 딸려 나왔다.  손 떼 묻은 가방 속 네가 나에게 그리고 내가 너에게 주었던 편지들, 선물, 그리고 너에 대한 나의 기억.


너는 내 생을 통틀어 가장 눈부신 나의 '첫' 사랑이었다. 분명 얼굴도, 키도 전혀 내 이상형과 부합하지 않는 맥도 없는 게 정말 이상하게 눈이 부시도록 네가 좋았다. 너를 만나 사랑을 알았고  정말 이기적인 내가 너로 인해 박애주의자가 되었다. 우울증에 시달려 병원을 다니었던 나는 네가 웃고 행복했다.


"사랑이었다."

4년을 그리 애달팠다. "1460"  네가 나의 삶에 잠시 곁에 살았던 시간.

 많이도 설레었고 오해도 쌓이고, 풀지 못한 차 헤어지다가 다시금 서로에게 돌아가는 날들이 1,460일이었다.


4년을 서로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했고 누구보다 뜨뜻미지근하게 싸웠다. 그렇게 매번 너는 이유도, 목적도 없는 잠수를 반복했고 너는 떠났다. 매번 반복되는 잠수에도 나는 그리도 애달프게 네가 좋았다. 비가 오는 밤 천둥 번개가 치면 네가 잠 못 드는 걸 알기에 잠은 잘 잤는지, 끼니를 습관처럼 거르는 네가 밥은 먹었는지 네가 항상 궁금했다. 언제나 그랬듯 너는 내게 다시 돌아왔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너를 맞이했다. 너의 습관성 잠수에 무뎌진  어느 날  전화로 너와의 마지막 밤을 붙잡고 있던 중 네가 말했다. "내가 왜 갑자기 연락을 안 하고 그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 네가 없는 매일 나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참 많이도 울었어."라며 전화 스피커 사이로 토이의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을 네가 불러주었다. 그때는 그 밤이 너와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그것이 너의 작별 인사였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그 후 시간이 흘러 어쩌다 당신의 동네를 지나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당신이 생각이 난다. 너를 만난 이후로 나는 지갑 징크스가 생겼다. 지갑에서 지폐를 꺼낼 때마다 네가 주었던 행운의 2달러가 보이지 않으면 가슴 한쪽에서 묵직한 돌이 쾅하고 떨어진 듯 심장이 아프다. 하지만 여전히 내 지갑 사이에 당연한 듯 자리해 있는 너의 2달러는 장시간 당신과의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음악을 하는 네 덕분인지 나는 아직도 오래전 노래들을 즐겨 듣는다. 어쩌다 길거리에서, 혹은 술자리에서 너의 기억으로 도배된 노래들이 들리면 나는 네 생각에 잠식되기 싫어서 더 크게 떠들고 웃었다. 


우리의 이별은 항상 같은 이유였고 당신이 나를 사랑했던 것보다 내가 당신을 더 사랑해서 항상 내가 더 아프고 동동댔다. 그렇게 정말 너와. 나 사이에 점을 찍기로 한  날, 이미 너는 내 곁에 없었다. 각지고 가시가 돋은 세상에 사는 나를 둥글게 만들어주겠다던 너는 그 가시를 덩굴로 키워놓은 채 나를 떠났다.


"미안해." 1년이었다. 저장되지 않은 모르는 번호, 하지만 익숙한 번호로  너는 돌아왔다.  내가 열을 주어야 하나를 내어주던 너였는데, 다시 돌아온 너는 내게 열을 주겠다며 나에게 하나를 내어달랬다. 1년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고 그 시간 동안의 내 곁에 없던 너의 흔적은 상흔으로 남아 너에게 모진 말을 내뱉었다.  그때보다 조금은 어른이 된 내가 너에게 다시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시 돌아온 너에게 내뱉었던 나의 모진 가시들은 너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라는 것뿐이다. 그때의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네가 소화되지 않는다. 너를 알고 사랑했고 앓다가 소화가 안 돼 턱턱 가슴 한쪽이 문득 메어온 지 10년째다.


여전히 나는 너를 다시 보아도 그때의 내가 생각나서 다시 너를 사랑할 것만 같다. 너는 참 소화가 길다.

나는 10년째 너를 소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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