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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은 Jan 13. 2021

파리 세 얼간이

파리에서 만난 얼간이들

파리에 있을 때였다. 내가 묵었던 한인 민박은 저녁을 제공해 주었는데 밥을 먹으려면 위층인 남자 숙소로 가야 했다. 밥 먹을 때 누군가 있으면 신경이 쓰일 것 같았는데 다행히도 그날은 남자 한 명 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밥을 다 먹었는지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간단하게 그와 목 인사를 나눈 후 자리에 앉아 홀로 전투적인 식사를 했다.


그런데 방으로 들어갔던 그 남자가 다시 나와 나에게 “제 룸메이트랑 라라 랜드 재즈 바 가려고 하는데 혹시 같이 가실래요?”라고 물었다. 마침 파리는 혼자 밤에 관광하기는 무리라고 생각했던 참이라 들뜬 나는 “좋아요 X2. 갈래요 X2.”라고 말했고, 그게 파리 세 얼간이의 첫 시작이었다.


그 두 남자는 군대를 갓 전역하고 여행을 온 20대 초반의 풋풋한 동생들이었다. 한 명은 인스타에 피자 사진만 있을 정도로 피자 덕후였고, 또 한 명은 사투리를 쓰는 구수하고 순수한 청년이었다.


우리 셋은 밤에 숙소를 나와 라라 랜드 바로 향했다. 그 바는 입장할 때 클럽 팔찌 같은 종이 팔찌를 손목에 채워주었는데 공연이 끝난 후 그 바에 다시 재입장하고 싶었던 우리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팔찌가 있으면 재입장을 할 수 있는 걸까?” “혹시 돈을 다시 달라고 하면 어떡하지?” 우리는 입구 앞에서 기나긴 고민을 했다. 우리에겐 입장료가 없었고, 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가드에게 제지를 당하면 쪽팔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긴 회의 끝에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어이없게도, 30분 동안 회의한 보람도 없이 1초 만에 쉽게 입구를 통과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 우리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리는 파리 시내에 분위기가 좋은 술집으로 향했다. 서로 고민도 나누고 수다를 떨다 보니 맥주가 금방 비워졌다. 맥주를 또 시키려고 하는데 우리 중 한 명이 말했다. “유럽에서는 종업원을 부르는 게 매너가 아니래.” “아 진짜? 맥주 시켜야 하는데 그럼 어떻게 하지?” 그는 유럽에서는 주문을 할 때 종업원 눈을 마주쳐야 한다는 걸 어디서 들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우리 셋은 종업원에게 눈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어서 주문을 받아주세요.’를 눈과 얼굴 근육을 이용해 표현해내고 있었다.


어느 날은 셋이 놀다가 밤늦게 숙소로 돌아올 때였는데 흑인 여러 명이 우리 숙소 앞에 모여 있었다. 그들과 가까워질수록 우리 셋은 쫄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몽둥이를 휘두르며 장난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깐, 저거 장난 맞나?’ 무서웠던 우리는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후드티 다 뒤집어썼지? 절대 쳐다보지 말고, 엄청 빨리 뛰어가는 거야. 자, 하나-둘-셋.” 하며 우리는 숙소를 향해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그날 뛸 때 흑인들이 우리를 향해 소리쳤던 것을 보면 그때 그 작전은 꽤 흡족했다.


“프랑스는 블랑이 싸니까 여기 있을 때 많이 마셔야 해.” 숙소에서는 밤늦게 술을 마시는 게 금지였는데, 기어코 우리는 술을 마시겠다며 추운 겨울날에 맥주 블랑을 들고 아파트 뒷마당으로 모였다. 우리는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좋다고 맥주를 마셔댔다. 우리는 별것도 아닌 대화를 하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하늘에 떠있는 달을 구경하며 “지금 진짜 행복해.”라며 오글거리는 멘트도 쉴 새 없이 날려댔다.

파리에서 우리 셋은 함께 있으면 그 어느 누구도 무섭지 않았다. 숙소에서 삼겹살 파티를 하는 날엔 마지막까지 남은 삼겹살을 해치웠고, 한국에선 블랑이 비싸다며 파리에서 열심히 맥주를 먹었던 세 얼간이들이었다.


그 얼간이 두 명은 한국으로 돌아와서 유일하게 연락하는 소중한 동생들이 되었다. 편의점에서 블랑 맥주를 볼 때면 그들과 함께 했던 추억들이 생각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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