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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은 Dec 18. 2020

번역기로 통하는 친구

프라하의 어느 겨울날

체코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하면 좋을까 생각한 나는 체코의 유명한 인형극을 보기로 했다. 인형극의 이름은 ‘돈 지오반니’. 모차르트의 음악과 함께 인형에 줄을 매달아 연극하는 공연이었다.


그 극장은 기다란 나무의자가 4개밖에 못 들어갈 정도로 소규모였다. 혼자 온 나의 앞, 옆, 뒤로 어느새 객석은 많은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


연극이 시작되었고, 체코어로 진행되었다. 다른 나라의 언어로 진행되는 연극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은 두 시간가량 동안 숨을 죽인 채 몰입해서 보았다. 아마 모차르트의 쿵쾅대는 음악소리와 인형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깜빡 졸았을 수도 있었겠다. 그렇게 박수갈채로 마무리를 하고 극장을 나섰다.


갑자기 내 옆에 앉았던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알 유 재패니스?” 쌩얼이 동남아 사람 같다는 말은 듣긴 했어도 일본인이냐는 말은 처음이었다. “노, 아임 코리안”이라고 말했고,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그 친구는 일본인이었다. 나이는 20대 후반으로 나와 똑같이 혼자 여행을 왔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크리스마스 마켓 거리로 나가서 와인을 먹자고 했다.

11월의 프라하 거리는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로 인해 반짝거리고 화려한 모습으로 꾸며져 있었다. 추운 겨울날, 우리는 따뜻한 뱅쇼 한 잔을 손에 들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는 둘 다 영어를 못했기 때문에 구글 번역기와 바디랭귀지로 대화를 나눴다. 그는 나에게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고 물을 땐 밥 먹는 시늉을 하며 “푸드?”라고 말했고, 나는 젓가락질하는 시늉을 하며 “스시”라고 답했다. 내가 몸으로 표현하기에 어려운 고난도 질문들은 “웨잇(잠깐)”이라 말하며, 구글 번역기로 일본어로 번역한 말을 보여주면, 그는 활짝 웃으며 한국어로 번역한 말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우리는 대화에 버퍼링이 자주 걸리긴 했지만, 하하 호호 웃으며 한 시간 가량 동안 여행, 직업, 앞으로의 꿈에 대해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우리의 모습은 조금 웃겼을 것 같다. 옛날 예능에서 많이 나왔던 ‘몸으로 말해요’ 퀴즈 맞히기처럼 우리는 그렇게 소통을 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나눈 대화였지만, 나는 그때 처음으로 언어의 장벽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넷플릭스 예능 <투게더>는 이승기와 대만 배우 류이하오가 여행하는 예능이다. 물론 서로의 언어는 통하지 않는다. 인터뷰에서 이승기는 이렇게 말했다. "말이 안 통하니 오히려 서로를 더 배려하게 되어 금방 친밀해졌어요. 감정이 공유되면 감동이 극대화되더라고요."라는 말에 참 공감이 되었다.


유창한 언어로 대화가 물 흐르듯 이어졌다면 그 또한 좋았겠지만, 더디고 어설프게 번역된 번역기 안의 문장 속에는 우리의 배려심과 진심이 담겨 있어서 따뜻했다. 마음만 통한다면 언어의 장벽 따위는 쉽게 무너질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문득 그분이 생각난다. 꾸밈없고 순수한 대화를 나누었던 그날의 추억은 잊을 수 가없다. 잘 지내시죠? 오겡끼데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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