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바에서 생각하게 되는 여행의 힘
종종 LP바에 가서 술 한 잔을 한다. 퇴근 후 친구를 만나 반주로 1차를 하고, 더 놀고 싶지만 다음날의 출근을 생각해서 적당히 선을 지키고 아쉬움을 달래야 할 때, 그럴 때 LP 바를 찾곤 한다. LP바의 매력은 무궁무진한데, 그중 하나를 고르자면 옛날 LP만의 깊이 있고 고유한 울림을 그대로 전달하는 대형 스피커를 꼽고 싶다. 어둑하면서도 밝은 분위기를 더해주는 노란 조명들과, 기껏해야 10평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지하공간에서 칵테일 한 잔을 들이켜면 술에 한번 취하고 분위기에 두 번 취하고 만다.
제주도를 혼자 여행하는 도중 그날따라 유난히 LP 바를 가고 싶었다. 혼자 가는 것은 처음이었고 즉흥이었지만, 그게 또 여행의 묘미이기 때문에 근처에 있는 곳을 택시로 찍고 갔다. 그곳은 동네 길가에 위치했는데 외관이 눈에 잘 띄지 않아서인지 가게에 손님은 나뿐이었다. 사장님이 홀로 있는 내게 말을 걸어야 하는 부담감을 느끼실까 봐, LP 뒤편에 꽂혀있는 <재즈 속으로>라는 책을 빌렸다.
잔잔한 재즈 음악을 배경으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고 있으니 지금 이 공간이 온전히 느껴졌다. 평소 재즈음악을 듣지도 않고, 재즈의 ‘재’자도 모르지만 그날 그 공간에서 보는 재즈 책은 왠지 모르게 흥미로웠다. 이럴 때면 여행만이 가진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낯선 여행지, 낯선 풍경,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서 에너지와 위로를 얻고,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온전히 느끼고 즐기며, 가장 나답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게 만드는 것이 여행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 맛에 계속 혼자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재즈 속으로>라는 책에선 이런 말이 나왔다. “근본적으로 재즈는 게으름의 미학이다. 온몸의 긴장을 풀고 가볍게 술이라도 걸친 후에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접하지 않는 이상 재즈는 쉽사리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고 정신적으로 편안할 때 비로소 들리는 재즈, 제주도를 혼자 여행하는 동안 처음으로 재즈를 들을 수 있었다. 여행을 하지 않는 일상에서도 재즈가 들리길 바란다면 그건 너무 욕심이겠지.
LP바에서 보내는 시간이 한 시간, 두 시간이 넘어갈수록 취기와 함께 올라오는 여러 감정들은 더욱 깊어져 갔다.
마침 스피커에선 나를 저격한듯한 제주도의 푸른 밤 노래가 흘러나왔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