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감성, <좀비딸>
좀비물은 대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그린다. 멸망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좀비와 분투하다가 종국에는 다시 인간과 경쟁해야 하는 사회를 보여준다. <좀비딸>은 기존 좀비물의 문법으로 독해하면 안 된다. 이 영화는 좀비바이러스가 퍼진 세상에서 인간소외와 혐오를 부추기는 절망의 세계관이 아닌 공동체성과 유대를 이야기하는 희망의 세계관으로 나아간다.
<좀비딸>은 좀비들이 세상을 점령한 상황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현대의 과학기술과 국가권력은 그들을 제압할 수 있다. 공포심을 조장하거나 포상하는 방식으로 좀비와 좀비를 숨겨준 이들을 색출한다. 강압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 좀비가 된 딸 수아와 그를 둘러싼 이들이 수아의 삶을 만들어 나간다. 이들은 가능성을 현실로 길러내기 위해 분투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좀비가 된다면? 좀비물에는 좀비에게 물린 가족이나 애인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며 슬퍼하거나 묶어두고 함께 지내며 아파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사랑을 주제로 한 좀비 영화도 꽤 있다. 살아있지만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닌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 인간이 고민한다. 그러나 좀비물에서 좀비들은 대개, 치료약이 개발 혹은 유통되기 전까지 그저 ‘좀비 상태’다. 기억과 인간성이 사라지고 인간에게 달려들어 좀비바이러스를 퍼트리려는 욕구만 갖는다. 살아남은 인간은 인간이었던 존재를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한다.
<좀비딸> 수아는 좀비를 피해 할머니가 있는 은봉리로 달아나는 차 안에서 좀비가 된다. 정환은 딸 수아를 곧장 죽이지 않고 엄마 밤순의 집으로 데려간다. 밤순은 변한 손녀딸을 보자마자 효자손을 휘두르며 예의를 가르친다. 좀비의 존재를 모르는 밤순이 손녀딸에게 할 법한 행동이다. 그는 수아를 여전히 인간으로 보고 대했다. 이후 수아는 효자손을 들고 있는 밤순을 보면 무서워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좀비들을 색출하라는 속보가 뜨고 좀비를 은닉한 자 또한 범죄자가 된다. 좀비의 존재를 고발하는 이에겐 포상이 있다. 좀비는 순식간에 불법적 존재가 된다. 정환과 밤순은 수아를 나무에 묶어놓고 무덤을 판다. 삽을 휘두르지 못하고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수아가 사라진다. 정환은 수아가 있음 직한 공간을 떠올리고 그곳으로 향한다. 예상한 곳에서 어망을 가지고 노는 수아가 발견된다. 정환은 수아가 기억력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한다. 수아가 춤연습을 했던 곡, 보아의 <넘버원>을 재생하자 수아가 반응한다. 관객의 눈에도 춤동작이 보이는 것 같다. 밤순이나 동배, 연화의 눈에는 허우적거리는 좀비의 모습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정환의 시선을 따라가며 관객을 납득시킨다.
동배는 은봉리의 약사이자 정환의 동창으로, 정환이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얘기를 듣고 밤순의 집으로 찾아온다. 좀비가 된 수아를 보고 신고하려 하나 정환이 그를 막는다. 동배는 수아를 외면하는 인물이다가 수아를 조력하는 든든한 인물이 된다. 정환처럼 수아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아니다. GAR바이러스치료제 개발 소식을 듣고 주식을 사라며 수아의 회복에 도움을 준다. 외부적 요인으로 시작한 것이지만 어쩐지 수아가 학습에 진전을 보이는 것 같아 정환과 수아를 돕는다. 그는 밤순 이외에 정환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이다.
연화는 은봉중학교로 부임한 교사이자 마찬가지로 정환의 동창이다. 연화는 시스템 안으로 수아를 끌어들이려 한다. 그에게 기억력과 학습능력이 있다면 학교에 보내라고 말한다. 이들은 수아를 둘러싸고 좀비의 생존가능성을 고민한다. 이들은 죽이지 않기로 택한 자들이다. 가능성을 고려한 자들이며 나아가 불법적 존재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자들이다. 수아에게 가족은 정환과 밤순에서 동배와 연화까지 확장된다.
정환은 법적으로 수아의 아빠가 아니다. 정환에겐 누나 정혜가 있었다. 수아를 함께 돌보지 않는 정혜의 남편 문기 대신 정환은 정혜를 도와 수아를 돌봐주었다. 사고로 죽은 정혜의 보험금을 챙기고 수아는 뒷전이던 친아빠가 친부를 주장하며 밤순의 집으로 찾아온다. 좀비를 생포하면 포상금이 크다는 정부지침으로 수아의 몸을 묶어 납치한다. 정환이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와 문기를 막아선다. 수아는 이미 단어를 구사하기도 하고 정환의 허락이 없으면 사람을 물지 않을 정도로 좀비보다는 인간에 가까워진 상태였다. 수아의 주변 인물들이 노력한 결실이었다.
정환이 문기를 제압할 때 문기가 정환의 손목을 문다. 누가 좀비인가 시사하는 대목이다. 돈과 권력에 딸을 팔아버리는 자는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정환이 맞는 동안 수아가 이빨을 드러낸다. 정환을 보호하기 위해 수아는 문기의 목덜미를 문다. 문기는 결국 좀비가 된다. 그는 좀비만도 못한 인간이었다. 정환은 좀비가 된 문기를 처리한다.
법은 강자에게 더 효용성 있다. 국가를 통제하기 쉽도록 짜임새를 갖춘다. 법적으로 엮인 가족에게 책임의 소지가 있다. 가족을 보호할 책임, 부양할 책임, 나아가 가족 내 누군가가 사회에 혼란을 일으킬 시 나머지 가족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기에 용이하다. 책임을 명목으로 학대가 벌어지기도 한다. 또한 법은 내 가족, 내 공동체에 위협이 되는 타인을 사라져도 될 존재로 낙인찍기 쉽다. 인간 존엄을 내걸지만 언제든 인간을 버릴 태세가 되어 있는 형국이다. <좀비딸>은 법적 한계를 비판하며 수아와 정환의 분투를 응원하게 만든다.
체제에 내몰린 수아의 가족은 은봉리를 떠나기로 한다. 애용이는 오래전 수아가 길에서 데려온 고양이로 함께 떠나려는 듯 짐을 챙긴 상자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자신이 선택한 이와 가족이 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 정환은 다른 이들에게까지 위험을 감수하게 하고 싶지 않아 수아와 단둘이 떠나기로 한다. ‘발견 즉시 사살’이라는 군부대 명령과 ‘범죄자와 협상하지 않’겠다는 말은 법과 공권력이 지배자들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안정과 안전을 명목으로 가능성을 확인하지 않는 자들이다. 우리 삶을 차별과 소외, 배제로 물들이는 이들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가족과 유대, 연대를 확장하지 않으면 언제든 삶이 빼앗길 수 있다. 듣기 좋은 명목으로 말이다. 혐오의 세상에서 더더욱 사랑을 발견하고 외쳐야 하는 이유다.
연화는 좀비 혐오자다. 수아를 학교에 보내라고 말한 것은 수아의 인간성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연화는 좀비가 된 약혼자를 그 자리에서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그에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좀비는 괴물이라는 공포심이 공존한다. 그는 좀비고발자 우수표창을 받았고 수아도 고발하려 했다. 체제는 교묘하게 개인을 움직여 국가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려 한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체제 밖으로 내몰린 이들은 법적 보호에서 배제된다. 하루아침에 사라져도 상관없는 존재가 된다. 법은 인간 위에 혹은 인간성 위에 있을지도 모른다.
연화는 수아의 주변인물 중 수아와 공존을 택하면서도 의심을 버리지 않은 인물이다. 연화가 수많은 좀비를 고발한 것은 자신이 사랑했던 이를 죽인 것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는 체제가 주장하는 공포와 혐오에 몸담아야지만 자신의 행동을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연화가 정환의 모습을 보며 깨닫는 것이 있다.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것, 수아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간다.
은봉리 또한 ‘좀비미발견지역’으로 표창을 받는다. 상과 벌을 부여하며 국가는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이들을 없애려 한다. 종교적 이유건 경제적 이유건 정치적 이유건 공포와 혐오를 조장하는 뿌리에는 있는 자들의 이익이 존재한다. 사회의 불법적 존재를 누가, 왜 만드는 것인가 잘 따져봐야 한다. 오히려 누군가의 삶에 실질적 위해를 가하는 자들이 법망 안에서 인간의 권리를 운운하며 삶을 영위한다.
반면 은봉중학교 학생들은 수아를 편견 없이 대한다. 그들은 수아가 아프다고 믿는다. 서울에서 온 수아를 괴롭히려고 하기도 하고 수아에게 경쟁심을 느끼기도 한다. 농구공에 맞은 수아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하기도 한다. 어딘가 이상하지만 그들은 수아의 방식을 수긍하고 수용한다.
군인이 들이닥치기 일보직전, 정환은 수아에게 자신을 물어달라고 부탁한다. 수아는 정환이 자신의 아빠라는 것을 인지한다. 정환은 수아와 함께 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고 말하며 수아를 타이른다. 정환이 수아를 포옹하며 목덜미를 내어주자 수아는 마지못해 정환을 문다. 수아를 향해 쏜 총알을 막아낸 정환이 쓰러지자 수아가 아빠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린다. 군대는 그제야 수아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수아의 눈동자색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은 약물 덕이 아니었다. 코마상태의 정환의 피를 수아에게 주입한 덕이다. 정환은 수아와 공존하며 입은 상처들로 인해 좀비바이러스 면역항체를 보유하고 있었다. 수아는 다시 인간이 된다. 정환에게 수아는 언제나 인간이었지만 체제가 용인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정환이 되돌린 것이다. 정당성을 부여받은 이 개인은 체제의 오류를 입증한다. 정환이 가진 건 사랑과 끈기였다. 그는 가능성을 증명한 동시에 확장한 인물이다.
가능성은 물질적 기반과 신뢰를 뭉친 것이다. <좀비딸>에서 그것은 변화하는 수아의 존재와 정환의 사랑으로 표방된다. 체제 안에서 비현실적이라 말하는 이들은 체제를 옹호하고 용인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하며 가능성을 폐기해 버린다. 스스로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도 닫아버리는 일이다. 우리가 스스로의 인간성을 회복하려면 사랑과 끈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