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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이야기

친구와의 약속



  이번에는 골목을 돌아 집으로 들어가는

30대 남자의 뒤를 쭐래쭐래 따라갔다.


남자가 씻으러 간 사이,

대충 훑어보다가-

잠드는 머리맡 구석진 곳에서 기다렸다.


모깨비는 금세 씻고 나와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든 남자의

꿈속으로 아주 손쉽게 들어갔다.


이 남자의 이름은 책가방에,

일기장에 삐뚤빼뚤 쓰여있다.

정명철.

꿈속에서 어린 시절을 즐기고 있다.


땅따먹기를 하고, 벨 누르고 도망가던

그 시절을 다시 되새기면서...



근데 꿈속에서 내내 같이 붙어 다니면 노는,

유독 눈웃음이 눈에 띄는 1명의 친구가

시간이 지나는 순서에 따라

만나는 횟수도, 시간도 점점 줄어든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쯤 되니,

학교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주에 한 번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연락이 거의 닿지 않게 되었고...

'대학에 붙었다'는 것만 듣고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이 남자는 모깨비를 보자마자,

혹시 도깨비라면- 그 친구가

잘 살고 있는지 봐달라고 말한다.


모깨비는 흔쾌히 수락하며 말한다.


"대가는 금조각이야."



남자도 흔쾌히 수락한다. 모깨비는

남자의 친구 '진수'를 찾으러 돌아다닌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찾을 수가 없어 지은의

도움을 빌리기로 한다. 수소문 끝에

남자의 친구가 살고 있는 집을 찾게 된 모깨비.


그런데 남자의 친구는 병원에 있었다.

한 여자와 같이.


두 사람은 모깨비가 지켜보는 며칠 내내-

오가는 대화가 전혀 없었고, 모깨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돌아선다.


다시금 과거의 한 장면씩을 염탐해

알아낸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였다.


여자와 남자는 가까운 과거,

미래를 약속한 사이였는데-


결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자주 언성을 높이며

싸우게 되었고, 심지가 굳지 못했던 남자는

참다못한 여자친구 혜진의 헤어지자는

[이별 통보]에 그만 실어증에 걸리게 된 것.


여자는 헤어지자 통보했었어도 막상 일이

이렇게 되니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을

차마 내버려 둘 수가 없었고, 남자 또한

여자가 떠날까 말을 하고 싶지 않아

시일이 지남에 따라


말이 어느 정도 돌아왔음에도

숨긴 채 여자를 붙들고 있었던 것.


상황을 다 알게 된 모깨비가

진수의 상황을 명철에게 돌아가 알려준다.

명철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듯이 말한다.

 

"그 자식 또 그러고 있네. 나이를 먹어도

애 같이 구는 건 어떻게 변하질 않지..."


모깨비가 통통 튀며 갸웃갸웃,

그게 무슨 말이냐며 이야기를 채근한다.

명철은 지나간 과거의 몇 장면을 떠올리는데...


과거 중학교 시절 MP3가 유행하던 때에

MP3 살 돈이 없던 명철과 진수. 우연찮게

중고나라에서 괜찮은 MP3를 발견한 명철이

냉큼 구매한다.


구매하자마자 신나서 자랑하며 며칠을

신나게 들고 다니던 명철, 힘이 없어 보이는

진수의 표정이 신경 쓰여 묻자,

아무것도 아니라며 지나쳐갔지만...


무리의 다른 친구로부터 들은 말은 명철이

한 발 빨랐을 뿐, 진수도 그 매물을 보고 사려고

연락했었던 것. 괜히 자신이 친구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명철은


며칠 써보라며 진수에게 MP3를 빌려줬고,


진수는 화색이 돌며 연신 고마운듯한

내색을 보이며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며- 명철은

은근슬쩍 자신을 피하는 진수를 발견했고,

설마 MP3 때문은 아니겠지, 하며

진수를 만나는 날에 MP3를 이제 그만

돌려달라고 말하자 집에 놓고 왔다며

내일 가져다준다는 말을 하더니

이내 방학식이 다가오자 연락 두절...


어이없어하는 명철과 그의 친구들 무리는

방학 때 진수를 멀리하고... 뒤늦게 개학 때

진수가 MP3를 가져온다.



하지만 이미 빈정이 상한 명철과 친구들은

소 닭 쳐다보듯이 거리를 두며

멀어지기 시작했다.


한 번 잃은 우정의 신뢰는 쉽사리 회복되지

못했고 그렇게 영영 멀어져 연락이

끊기고 만 것이었다. 단지 그때뿐이 아니었다.


그전에는 유행하던 신발을,

그전에는 친구랑 게임할 수 있는 게임 필통을,

그전에는....


.....




진수는 늘상 문제없이 지내는 듯하다가도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 떳떳하지 못하고,

제 욕심에 눈이 멀어 사람을 잃는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명철은 그럼에도-

그 늘상의 문제없던 진수가 그리웠고,

결정적인 순간에 도망치는 진수가 안타까웠다.

모깨비가 복잡한 얼굴을 한 명철을 보며 묻는다.


 어떻게 도와줄까?


명철이 한참을 말을 아끼다 내뱉는다.




그 친구를 솔직하게 만들거나...

어떤 상황에서건 무조건 먼저 도망치지 않고

용기 낼 수 있게 해 줄 수 있나요?



사람의 기질을 아예 바꿀 순 없어.




그럼 한 번쯤은 도망치지 않고

용기 낼 수 있게 해주는 건요?




모깨비는 지은에게

자문을 구하기로 하고 자리를 뜬다.


통통 튀어가는 모깨비 뒤로

한껏 피곤해 보이는 듯한 명철.

천천히 얼굴을 쓸어내리며 뒤돌아 걷는다.


지은에게 자문을 구하러 온 모깨비.

하지만 지은도 난색을 표하며 같이 어려워하고,


모깨비가 아는 가장 나이가 많은 인간 축에

속하는 지연 엄마와 진우 아빠를 찾아가 본다.


지연의 엄마는-

'회피형 인간은 상담을 받아야 좋아진다.' 하고,


진우의 아빠는-

명철에게 다시 가 친구를 찾아가는 걸

제안할 것을 이야기해 준다.



둘의 말을 듣고 다시 명철에게로 온 모깨비.


친구에게 찾아가 볼 것을 제안한다.


명철은 고심 끝에 친구에게 찾아가기로 하고,

진수의 퇴원 전 날 방문하기로 한다.

퇴원 전 날, 여전히 혜진에게

아무 말도 안 하며 속으로 숨고 있던 진수.


노크 소리와 함께 들어선 명철을 보자마자,

명철아! 하며 말문이 트여버린 진수.


놀란 혜진과 덩달아 놀란 명철을 보며

스스로 말을 내뱉었음을 자각하고

뒤늦게 하얗게 질린 진수.

그들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모깨비는

미련 없이 통통 튀어 지은에게로 향한다.



그 후 명철을 통해 들은 상황은 정말

... 가관이었다고 한다.

하얗게 질린 진수의 표정을 본 눈치 빠른 혜진은

그간의 상황을 빛보다 빠르게 유추했고,

진수는 변명 한 마디 못 해 본 채 뺨을 얻어맞으며

'파혼' 당했다니 뭐라나.


그제야 마치 술에서 깬 듯이 정신이 번쩍

들은 듯한 진수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미안하다는 말만을 연신 내뱉으며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바람을 보였다고.


그 모습에 마음에 남긴 앙금이 싹 가라앉은 명철은

진수에게 "나도 미안했다-" 전하며 그대로

자리를 피하고 그렇게 일단락 지어졌다고 했다.



모깨비는 왜 ?

명철이 사과한 것인지 아직 이해할 수가 없다.

모깨비에겐 아직 '측은지심'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나보다 못한 자에게 관대해지는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고개를 갸웃 거리는 모깨비에게

자신은 이제 마음이 홀가분해졌노라며- 어딘가

후련해진 얼굴로 명철은 담담한 태도를 내보였다.


 

갸웃거리던 모깨비는 임무 완수의 약속인

금조각을 요구했고, 명철은 어디서 얻어 왔는지

모를 작은 금조각을 모깨비에게 전해주었다.

금조각을 물고는 통통 튀어 밤골목을 지나

지은의 방, 침대 밑 작은 창고에 도착한 모깨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금고를 열어

금조각을 넣어놓는다.


 




 - 명철의 속 시끄러운 이야기 -


진짜 도깨비 홀리듯이 너를 다시 만났다.

어.... 친구든 지인이든, 인생은 등산

같은 거라고 배웠다. 어떤 인생이든

오르는 속도 따라, 잠시 쉬기도 하고...

오며 가며 마주치다가 속도가 맞으면 같이 걷다,

속도가 다르면 멀어졌다가, 이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하 같이 웃다가

새로운 가족을 소개하기도 하고...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진짜로.


난 널 언제고 만나면, "너 그때 진짜 쪼잔했어,

아냐 인마? 이제는 통 좀 커졌냐?" 하며

어깨동무도 하고 반갑게,

인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사람이 아무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지만...

오늘 일로 꼭, 너도 어른이 좀 되면... 좋겠다.


그게 지금 내가 너한테 친구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인 것 같다.

다음엔 소주 한 잔 기울이면서

그땐 그랬었는데 하자. 사는 게 뭐 있냐?

뭐 모르고 학교에서 철없을 때 만났던 친구가

나이 들수록 진짜 되게 귀하더라.


사심 안 재도 되고, 머리 복잡하게

계산 안 해도 돼서. 아마.... 내 속도가

여기까지는 빨랐던 것 같다, 너보다는?


너 꼭 분발해서 나 앞질러라.

그리고 연락해라 인마.


형이 술 한 잔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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