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에 지나치게 성실했다.

나의 20대를 위하여



욕심에 지나치게 성실했던 나의 20대를 위하여.



첫 내리는 비가 아스팔트에 적응하듯, 나는 서른의 현관에서 오래 묵은 운동화를 벗었다. 끈은 여전히 단단히 묶여 있었고, 발등에 눌린 자국이 아직도 말을 한다. “다시 뛰자.” 그러나 나는 오늘 달리러 온 게 아니었다.
나는 기억의 행정기관이라 불리는 곳으로 향했다. 건물 현판에는 세 글자. 망각청(忘覺廳). 문을 열자 종이 냄새와 묵직한 고무인 냄새가 섞여 들었다. 번호표를 뽑자 ‘20’이 찍혔다. 우연일까.
창구의 담당자는 가느다란 눈웃음을 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나는 대답했다. “저의 20대의 해상도를 낮추고 싶어요.”
“삭제가 아니라.”
“네. 소거는 두렵습니다. 하지만 선명도는 너무 높은 듯해서요.”
담당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파란 펜으로 신청서 상단에 한 줄 적었다. 기억은 해상도가 있다. 때때로 흐림은 생존의 기술이다.
종이 아래칸에는 사유를 고르는 네모칸이 있었다. 저장 기간 경과, 중복 회상 과다, 질서 훼손, 기타. 나는 ‘기타’ 칸에 조심스레 적었다. 욕심에 지나치게 성실했던 시절의 과열.



내 20대는 공장형 새벽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적막을 반죽처럼 치대는 법을 배웠다. 마감은 새벽 다섯, 제출은 아침 아홉, 칭찬은 오후 세 시, 다음 마감은 다시 제로시.
그 무렵 나는 능력을 증명하는 가장 빠른 길이 ‘더 많이, 더 오래’라고 믿었다. 남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얘기했지만 내 귀에는 분수대처럼 시끄러웠다. 물은 항상 넘쳐야 아름답다고, 나는 고집했다.
한 상사의 말이 기억난다. “넌 성실해서 참 좋아. 다만 그 성실이 너를 먹지 않도록 하렴.” 나는 웃고 끄덕였지만, 내 속의 누군가는 박수쳤다. 나를 먹어치우는 성실이라니, 얼마나 장관일까. 나는 장관을 보고 싶었다. 창 너머로 붉은 해가 솟을 때, 밤새 다듬은 보고서의 글자들이 눈부신 화석처럼 굳어갈 때, 나는 내 욕망을 장식품처럼 목에 걸었다. ‘나를 증명했다.’



사람들은 나를 ‘정확한 사람’이라 불렀다. 표를 만들면 행과 열 사이의 틈마저 숨을 죽였다. 숫자는 나의 군대였고, 일정은 나의 국경이었다. 그 국경을 넘어오는 건 모두 적이었다. 휴식도, 고요도, 사랑의 느린 문장도.
사랑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내게 물었다. “주말에 바다 갈래?” 나는 달력을 펼치며 대답했다. “좋아. 그런데 토요일 오후 세 시부터 여섯 시 사이면 돼.” 그는 웃었고, 잠시 뒤엔 웃지 않았다. 우리는 바다를 네모난 시간통에 담다 끝났다. 바다는 각지고, 파도는 조항(條項)이 되었다.
그는 나를 나무랐다. “너는 너의 성실함을 신처럼 숭배해.”
“아니야.”
“사실은 욕심을 숭배하는 거겠지.”
나는 고개를 저었지만, 그 말이 창문에 박힌 작은 돌멩이처럼 오래 남았다.



망각청 창구의 담당자가 종이를 넘겼다. “사건을 몇 가지 서술해 주세요. 흐림 처리의 정도를 정하려면, 선명함의 결을 알아야 하거든요.”
나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장면들을 고르는 데에도 계획을 세우고 싶었으나, 오늘만큼은 계획을 풀어놓았다.
첫 장면: 새벽 2시의 사무실. 자판기는 500원을 삼키며 커피를 토해냈다. 나는 검은 잔을 들고 모니터 앞에 앉았다. 화면 속 폴더들의 이름이 모두 ‘최종’으로 끝나 있었다. 최종, 진짜최종, 진짜진짜최종. 나는 파일을 열고 문장을 다듬었다. ‘협력’이라는 단어가 문장에서 네 번이나 등장했다. 협력은 주로 혼자 야근한 사람이 쓴다.
둘째 장면: 어머니의 생일. 허리까지 내려오는 남색 케이크 상자를 들고 집 문을 열었다. 초는 서른 개를 꼽기엔 너무 많아서 세 개만 꼽았다.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바쁘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했다. “괜찮아.” 그러나 ‘괜찮아’는 종종 ‘나를 잊어도 돼’와 동의어였다.
셋째 장면: 친구의 퇴사 파티. 나는 축하 카드에 ‘넌 어디서든 빛날 거야’라고 적고도 고개를 갸웃했다. 빛난다는 말은 때로 검열이었다. ‘여기서는 빛나지 않았다는 뜻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나는 싫어했다.



담당자는 내 말을 받아 적으며 물었다. “그럼, 어느 정도의 흐림을 원하세요?”
나는 창구 유리 아래 작은 스티커들을 바라보았다. ‘유약한 흐림(Soft)’, ‘은은한 흐림(Dim)’, ‘원경화(Far)’, ‘흑백 변환(Gray)’, ‘사운드 오프(Mute)’. 선택지는 세심했다. 삶이 이 정도로 배려받았던 적이 있던가.
“사운드는 남겨둘래요.”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그때의 발걸음 소리, 자판기 소리, 어머니의 숨 고르는 소리… 그건, 나를 만들었거든요.”
“좋아요. 그럼 색을 낮춰볼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색을 낮추면, 의미가 차분해질까요?”
“의미는 오히려 또렷해질지도 모릅니다.” 담당자는 웃었다. “과도한 색은 종종 사물의 경계를 희롱하니까요.”



나의 욕심은 단 하나였다. 최초가 아니라 유일이 되고 싶다는 야망. 최초는 운이 끼지만, 유일은 반복으로 세워진다. 나는 반복을 사랑했다. 같은 이마에 여섯 번째 스티커를 붙이는 일도 즐거웠다. ‘해야 할 일’ 리스트를 아침마다 작성하고, 밤마다 지우개로 지워 새 하얀 공간을 만들었다. 그 빈칸이 너무 예뻐서 다시 채우고 싶어졌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어딘가 괴상한 물리학.
하지만 유일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결국 관계를 곧게 세웠다. 곧음은 견고했지만, 곧음은 꺾이기도 쉬웠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어떤 아이가 울었다. 아이 울음은 언제나 모서리가 없다. 나는 그 모서리 없음에 질투했다. 내 울음은 칼날처럼 날카로워, 스스로를 베기 쉬웠으니까.
집에 와서 일기를 썼다. ‘오늘도 성실했고, 그래서 조금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살아남는 것만으로 사는 걸로 착각하지 말 것.’ 그 문장을 서른 번 베껴 썼다. 성실이 때로는 미신이 된다. ‘이렇게 쓰면 내일은 달라질 거야.’
달라지지 않았다.



망각청의 인주(印朱)는 깊은 붉은빛이었다. 담당자는 작은 도장들을 보여주었다. ‘완화’, ‘전환’, ‘파일링’, ‘보류’.
“이건 어때요?” 담당자가 ‘전환’ 도장을 들어 보였다. 손잡이에 새겨진 나뭇결이 예뻤다.
“전환이라면… 무엇으로요?”
“성실을 다른 단어로 옮기자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성실을 ‘견딤’이 아니라 ‘붙듦’으로.”
그 단어가 내 손에 얹혔다. 붙듦. 붙어 있는 것과 붙잡는 것 사이에는 작은 강이 흐른다. 나는 건너편 둔치에 서 있는 누군가를 보았다. 젊은 날의 나였다. 흰 운동화를 신고, 예쁜 사람처럼 바쁘게 손목시계를 확인하던 나.
“붙듦이라면, 놓칠 줄도 알아야 하겠네요.”
“네.” 담당자는 도장을 탁, 찍었다. 종이 위에 붉은 글자가 번졌다. ‘전환’. 잉크의 가장자리가 종이섬유를 타고 서서히 스며드는 동안, 나는 내 눈동자 속에서 한 계절이 지나가는 걸 보았다.



나는 때마침 여름방학처럼 숨을 골랐다. 과거의 자리에서 한 발 물러서 보니, 그 시절의 내 열심은 사실 누군가에게 보이려는 불꽃놀이였다. 불꽃놀이는 화려했으나, 그다음 날의 하늘은 늘 잿빛이었다.
한 번은 프로젝트의 끝에 전 직원 앞에서 상을 받았다. 작은 상패와 도톰한 봉투, 그리고 환호. 무대 아래 꽃다발이 우수수 쏟아졌고, 사진기 플래시가 내 얼굴 위를 발라주듯 스쳤다. 그날 밤, 나는 혼자 노을이 오래 남는 텅 빈 회의실에 앉아 상패 뒷면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뒷면에는 아무 글자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나는 그 뒷면이 고맙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곳에는 요구가 없으니까.
그러다 문득, 상패의 빈 뒷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 무엇을 강요하지 않는 단단한 공백. 그 이후로 ‘최초’와 ‘유일’이라는 표어가 조금씩 먼 곳으로 밀려났다. 대신 ‘지속’과 ‘안부’가 내 책상에 붙었다.



망각청에서 나왔을 때, 하늘은 장맛비의 마지막 모서리를 떼어내고 있었다. 나는 우산을 접었다. 비는 그쳤는데 길바닥의 물웅덩이들은 여전히 바다였다. 나는 고개를 숙여 바다의 얼굴을 보았다. 물은 내가 지나온 시간을 왜곡 없이 비추지 않았다. 오히려 즐겁게 흔들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래전 헤어진 연인에게서 엽서가 왔던 일이 떠올랐다. 그가 보낸 건 우표 붙인 종이엽서가 아니라, 내 손목에 남겨진 글씨였다. 어느 늦은 밤, 둘이서 앞뒷면이 꽉 찬 달력을 보며 장난처럼 서로의 피부에 남긴 낙서. ‘휴일 만들기’. 우리는 일요일이 부족하다고 노래하던 사람들, 어쩌면 그 노래를 들을 귀가 부족했던 사람들.
그 후 나는 내 달력에 진짜 휴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들의 이름을 붙였다. ‘사과 씻기’, ‘비가 오면 비 듣기’, ‘엄마 안부 듣는 날’, ‘걷다가 멈추는 날’. 그렇게 만들어진 작은 휴일들은 내 삶의 공백을 보호했다. 공백은 지우개가 아니었다. 공백은 온기였다.



해가 짧아지는 어느 날, 어머니와 나는 오래된 국밥집에 앉았다. 어머니는 국물의 위안을 아는 사람처럼 천천히 들이켰다. “네가 한 번 크게 앓고 나서, 네 눈매가 달라졌더라.” 어머니가 말했다.
“어떻게요?”
“분주한 눈이던 게… 살피는 눈으로.”
나는 숟가락을 내려두고 웃었다. 그건 아마도 ‘나는 증명해야 한다’에서 ‘나는 묻고 싶다’로 옮겨간 마음의 시선일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어린 나에게 편지를 썼다.
— 너는 가끔 천성과 의무를 헷갈리곤 할 거야. 타고난 기질을 의무처럼 쓰면 행복한지 묻기도 전에 지치지. 너의 성실은 좋은 등뼈야. 다만 그 등뼈에 남의 집을 얹지 말 것. 욕심은 나쁜 게 아니야. 벽이 아니라 창으로 쓰면 돼. 창은 하늘을 들이거든.
편지를 접어 서랍에 넣었다. 서랍을 닫는 소리가 마치 마감 도장의 ‘퍽’ 같았다. 그 소리 뒤에 아주 가벼운 ‘후욱—’이 따라왔다. 종이와 공기의 작은 화해.


ⅩⅠ
내가 다시 망각청을 찾은 건 겨울 초입이었다. 담당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고, 나는 신청서를 건넸다. 이전보다 훨씬 얇았다.
“변경 사항이 있나요?”
“네. 몇 개의 장면은 흐림을 조금 줄이고 싶어요.”
“이유는요?”
“그 장면들이 이제 나를 해치지 않아서요.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설득했어요.”
담당자는 웃음을 지었다. “그럼, 선명도를 조정하지요.”
우리는 몇 장면 위에 작은 루페를 올려놓고 들여다보았다. 새벽의 모니터 불빛이 그때보다 덜 차갑게 보였고, 바다를 시간을 나눠 가던 연인의 눈빛도 그때보다 덜 억울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생일날, 세 개의 촛불이 새까만 방에서 언덕처럼 흔들리는 장면은… 선명해도 좋았다. 사랑의 장면은 선명할수록 덜 아프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야 알았다.
마지막으로 담당자가 물었다. “이제 20대에게 뭐라고 말하고 싶으세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 조용히 말했다. “수고했어. 너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왔어. 그런데 다음번엔, 나를 증명하려고 너무 먼 길을 돌지 말자.”
담당자는 종이를 정갈히 정리해 건넸다. “이 정도면 충분히 살아갈 만한 해상도입니다.”


ⅩⅡ
나는 서른의 복도를 걸었다. 때로 꿈속에서, 내가 나를 소송하듯 말하던 날들이 있었다. 자신에게 불친절했던 증거들을 모아 스스로를 피고로 세우고, ‘과로, 과욕, 과성실’의 죄목을 붙였다. 판사는 언제나 그랬다. “피고는 충분히 벌을 치렀습니다. 이제 판결을 계기로 삶을 선고합니다.”
선고란, 삶을 살라는 명령일지도 몰랐다.
나는 책상 위에 작은 도장을 하나 샀다. 손잡이에 내 이름 대신 이렇게 새겼다. ‘보류’. 어떤 말들은 당장 결론 내리지 않기로, 어떤 욕망들은 당장 심문하지 않기로. 보류는 도망이 아니었다. 보류는 나를 기다려주는 시간의 자세였다.
가끔 내 안의 젊은 직원이 뛰어나온다. “이건 더 잘할 수 있어요. 더 빨리, 더 많이.” 그럴 때면 나는 뾰족한 펜을 내려놓고 둥근 컵을 들어 올린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면, 젊은 나는 금세 조용해진다. “그럼,” 그가 말한다. “한 모금만 마시고 시작할까요.” 우리는 웃고, 시작하지 않을 때도 있다. 시작하지 않음도 때로 시작이었다.


ⅩⅢ
봄이 다시 왔을 때, 나는 어머니에게 작은 화분을 선물했다. 야생국화였다. 화분의 라벨에 이렇게 적었다. ‘과한 물은 뿌리를 약하게 합니다. 흙이 마를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나한테 하는 말이지?” 어머니가 물었다.
“나한테 하는 말이기도 해요.”
나는 그 해의 여름에 바다를 다시 보러 갔다. 혼자였다. 파도가 문장처럼 밀려오다 무너지고, 다시 문장이 되어 돌아갔다. 나는 발목까지 물에 잠기며 두 눈을 감았다. 물의 무게가 딱 적당했다. 물러서지 않아도, 떠내려가지 않아도 되는 그 적당함.
그때 나는 어렴풋이 알았다. 내가 그렇게 집착하던 ‘유일’은 사실, ‘적당’에게서 배울 것이 많다는 걸. 적당은 게으름이 아니라 배려였다. 나에게, 타인에게, 세계에게.


ⅩⅣ
가을밤, 친구들과 오래된 술집에서 만났다. 누군가는 전역을 앞둔 군인처럼 자유를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곧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고르고 있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말했다. “나는 이제, 나의 성실을 다른 곳에 쓰고 싶어.”
“어디에?”
“어떤 사람의 사소한 안부에. 어느 완성되지 않은 문장에. 그리고 나를 괜찮게 여기는 일에.”
우리는 잔을 부딪쳤다. 유리와 유리가 부딪힐 때 나는 예전처럼 떨지 않았다. 예전의 나는 항상 ‘내일의 할 일’이 잔의 표면에 비치지 않을까 두려워했었다. 새벽의 할 일을 술잔 속에서 확인하던 습관을, 나는 마침내 내려놓았다. 잔은 잔이었고, 밤은 밤이었다.


ⅩⅤ
冬至(동지). 가장 긴 밤. 나는 등불을 켰다. 노란 등불 아래서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뭔가를 위해 앉은 게 아니라, 앉아 있기 위해 앉았다. 내 그림자가 벽에 걸렸다. 그림자는, 성실함의 또 다른 모양인지도 모른다. 빛이 있어야만 생기고, 빛이 너무 강하면 짙어진다. 나는 등불을 한 칸 낮췄다. 그림자가 부드러워졌다. 그제야 그림자와 내가 서로를 닮았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 밤에 다시 한 장의 신청서를 썼다. 수신: 나. 제목: 내 20대를 위한 추천서. 내용: 그녀는 욕심이 많았고, 그래서 성실했다. 때로는 그 조합이 그녀를 피곤하게 했으나, 덕분에 많은 사람을 살폈고, 많은 실패를 견뎠다. 이제 그녀의 성실은 보호를 배웠다. 보호는 느린 성실이다. 이 사람을 앞으로도 기꺼이 함께 일하고 싶다고, 나는 서명했다.


ⅩⅥ
봄이 세 번째로 돌아오던 날, 망각청에서 엽서가 도착했다. 파란 잉크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신청하신 흐림 조정이 승인되었습니다. 일부 장면의 색이 돌아오며, 일부 장면의 외곽선이 부드러워집니다. 삶의 가독성이 향상되기를 바랍니다.’
엽서를 읽고, 나는 잠시 웃었다. 삶의 가독성. 참 좋은 말이었다. 우리는 모두 삶을 읽는 독자이면서 저자다. 나는 내 문장 사이의 행간을 조금 더 넓히기로 했다. 행간은 호흡이었고, 호흡은 용기였다.
나는 신발장의 오래된 운동화를 꺼냈다. 끈은 여전히 단단했다. 그러나 이번엔 한 줄만 풀어 느슨히 묶었다. 느슨함은 게으름의 반대편에 있었다. 느슨함은 신뢰였다. 나를 믿는 마음, 세계가 나를 버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


ⅩⅦ
나는 이제 때때로, 일의 현관에서 망설인다. 그 망설임이 고맙다. 망설임은 덜어내는 기술이니까. 덜어낸 자리엔 빛이 놓인다. 그 빛으로 나는 누군가의 이름을 더 선명히 읽는다.
밤이 깊으면 내 젊은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온다. “더! 더!” 그러면 서른의 나는 대답한다. “충분.” 그 대화 사이에 작고 맑은 침묵이 깃든다. 그 침묵에서 나는 오래 전의 나와 악수한다. “너의 욕심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 이제는, 너의 성실을 쉬게 하자.”
창밖에서 벚꽃이, 늦게 피어난다. 늦게 핀 꽃은 남은 시간을 천천히 쓰는 법을 안다. 나는 벚꽃 아래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지난 계절들이 물결처럼 연달아 건너온다. 모든 물결의 끝에는 모래사장이 있다. 모래사장은 발을 받아준다. 그 단순한 환대가, 나는 좋다.


ⅩⅧ
마지막으로, 나는 20대의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 너는 참 예뻤다. 예쁨은 얼굴의 모양이 아니라, 매일을 끝까지 살려는 태도였다. 너의 욕심은 너를 다치게도 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배우게 했다. 이제는 욕심을 창으로, 성실을 의자로 쓰자. 창으로 바람을 들이고, 의자에 앉아 쉰 뒤에 다시 걸어가자.
나는 펜을 내려놓고 등불을 끈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지 않아도, 세상은 자연스레 잠긴다. 그 잠김 속에서 오래도록 멈추어 있던 무언가가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음 문장을 향해. 다음 사람을 향해. 다음 나를 향해.
그리고 나는, 서랍에서 작은 도장을 꺼내 오늘의 문장 끝에 찍는다. 탁. ‘보류’.
보류는 끝이 아니다. 보류는 다음을 위한 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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