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냄새는 그리움일까 사랑일까.
삶이 돌담이라면, 그 언저리에 맴도는 바람의 냄새는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리움일까, 사랑일까.
Ⅰ
돌담은 말이 없었다. 대신 틈이 있었다. 틈은 바람을 통과시켰고, 바람은 늘 무엇인가의 냄새를 실어왔다. 비를 갓 맞은 돌에서 어머니 장독대 뚜껑 냄새가 나고, 바닷가 쪽에서 부는 날엔 말린 미역처럼 눅진한 짠내가 코끝을 앉았다가 금세 사라졌다. 나는 이 마을로 이사 오던 첫날, 돌담에 손바닥을 대고 조용히 물었다.
“너는 무엇을 기억하니?”
돌담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다만 내 손끝에 약간의 서늘함과 미세한 물결 같은 진동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길을 ‘소곤길’이라 불렀다. 돌과 바람이 서로의 사정을 소곤거리는 길. 나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Ⅱ
이삿짐은 한 줌이었다. 책 몇 권, 도자기 머그컵 하나, 오래된 운동화 한 켤레, 그리고 서랍 맨 뒤에서 꺼낸 작은 도장. ‘보류’. 손잡이엔 내 이름 대신 얇게 “한 줄만 풀어 묶기”가 새겨져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나는 망각청 출장소를 찾아가 내 과거 몇 장면의 해상도를 낮춘 뒤였다.
“색은 낮추되, 사운드는 남길게요.”
그때 창구의 담당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각 보존 옵션도 있어요. 냄새는 흔히 방향을 기억시키거든요.”
“냄새를 남긴다는 건…”
“장면의 중심이 몸으로 옮겨진다는 뜻이죠. 덜 아파질 때까지, 이주시키는 거예요.”
나는 서명했고, 엽서 한 장을 받아 들었다. ‘승인되었습니다. 일부 장면은 흑백으로, 일부 장면은 흐림으로 전환됩니다. 후각·청각은 보존합니다. 삶의 가독성이 향상되기를 바랍니다.’ 파란 잉크가 상냥했다.
Ⅲ
마을에는 망각청 ‘해변출장소’가 있었다. 초소 같은 크기의 흰 집, 파란 문. 현판에는 조그맣게 ‘풍향과’라고도 붙어 있었다. 한 달에 두 번, 본청에서 담당자가 내려와 서류를 받았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그날을 기다렸다. 우체통에 손을 넣듯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첫 방문 날, 번호표엔 ‘7’이 찍혀 있었다. 창구 여직원이 웃었다. “이 동네에서는 7이 잘 나와요. 바람이 일곱 방향이라나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바람이 일곱 방향이에요?”
“사람 마음이 일곱 방향이면 바람도 그럽니다.”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내 차례가 오자 나는 봉투를 열었다. “과거 한 장면의 채도를 낮추면서, 냄새는 보존하고 싶어요.”
“어떤 냄새요?”
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 차가운 철제 난간 냄새와, 멀리서 오는 석양 냄새와, 누군가의 목덜미에 오래 묵은 샴푸 냄새. 그리고—돌담 언저리에서 나는,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냄새.
“그 냄새에 이름을 붙이고 싶어요.”
직원은 펜을 굴리더니 서류의 ‘기타’ 항목에 적었다. ‘냄새 명명 신청—보류 상태에서 관찰 예정.’
Ⅳ
나는 말이 느린 곳에서 살고 싶었다. 도시에서는 모든 것이 끊임없이 나를 지나쳤다. 엘리베이터 층수가 내려가는 속도, 지하철 바람의 압력, 카페에서 타이핑하는 손가락의 재빠름. 그 속도들이 나를 멋지게 해주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 날, 내가 내 삶의 독자가 아니라 위태로운 교정자처럼 느껴졌다. 계속해서 빨간 펜으로 문장을 긋고, 주석을 달고, 다음 판에서 더 나아질 것을 강요하는 사람. 나는 그만두고 싶었다. 다음 판을. 그래서 여기로 왔다. 돌담이 말이 없는 곳, 바람이 대신 말하는 곳.
Ⅴ
마을 구멍가게의 주인은 서하라고 했다. 짧은 머리, 약국처럼 정갈한 손, 카운터 한쪽에 늘 말린 허브 다발을 세워둔 사람.
“이건 뭐예요?”
“사철쑥. 봄내도 나고, 늦여름내도 나죠. 끓인 물에 던져두면 밤새 바람이 정리돼요.”
“바람이 정리돼요?”
“사람 마음이 정리되면 바람이 따라오고, 바람이 정리되면 사람 마음이 조금은 덜 흔들려요.”
나는 웃으며 사철쑥 한 다발을 샀다. 서하는 봉투에 작은 종이를 끼워주었다. ‘바람 기우제—밤 9시 소곤길.’
“이건 뭐예요?”
“마을 모임이에요. 바람의 냄새를 모아 이름을 붙이는 밤.”
Ⅵ
밤 9시, 돌담 위에 촛불이 줄지어 올랐다. 사람들은 각자 작은 병을 들고 왔다. 병마다 라벨이 붙어 있었다. ‘첫 비 냄새’, ‘새로 이사 온 개의 털 냄새’, ‘단감 깎을 때 나는 칼의 냄새’.
“어떻게 잡았죠, 냄새를?” 내가 묻자 누가 웃었다.
“아, 진짜 냄새를 담는 건 아니고요.” 서하가 대신 설명했다. “각자 하루를 살다가 마음이 움직인 순간을 적어 오는 거예요. 그 순간에 맡았던 냄새를 기억나는 대로 붙이고. 여기서는 그걸 라벨이라고 불러요.”
나는 내 빈 병의 라벨을 바라봤다. 아직 아무 말도 쓰지 않았다.
서하가 종이를 나눠주었다. ‘오늘의 라벨: ________의 냄새.’
사람들의 펜이 돌담 위를 사각거렸다. 누군가는 ‘우체통 속 손가락의 냄새’, 누군가는 ‘기다려 달라는 손짓의 냄새’를 썼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적었다. ‘돌담 언저리 바람의 냄새—보류.’
“보류요?” 서하가 웃었다.
“네. 아직 뭔지 모르겠어요. 그리움인지, 사랑인지. 아니면 다른 이름이 있는지.”
“보류는 좋은 라벨이에요.” 서하가 내 종이 위를 톡톡 쳤다. “이 동네에서는 보류가 때로 결론이거든요. 정답을 유예하는 용기.”
Ⅶ
다음 날, 망각청 풍향과에 엽서를 보냈다. ‘냄새 명명—보류. 관찰기간 연장 신청.’
사흘 후, 파란 잉크로 답장이 왔다. ‘승인되었습니다. 관찰 기간 동안 다음 세 가지를 기록해 주십시오. 1) 바람이 분 방향 2) 돌담의 그림자 길이 3) 당신의 심박수. 추신: 삶의 가독성을 위해 행간을 넓히십시오.’
나는 엽서를 냉장고에 자석으로 붙이고, 작은 노트를 샀다. 제목: ‘행간 일지’. 첫 페이지에 적었다. ‘느슨함은 게으름의 반대편—그것은 신뢰.’ 그리고 오래된 운동화의 끈을 한 줄만 풀어 느슨히 묶었다.
Ⅷ
그날부터 나는 소곤길을 매일 돌았다. 오전의 바람은 설거지 비누처럼 맑았고, 오후의 바람은 잠깐 쉰 지붕의 먼지 냄새를 품었다. 해가 길어질수록 돌담의 그림자는 날씬해졌다가, 저물 무렵 다시 살이 올랐다. 심박수는 날씨와 닮았다. 마음이 차분한 날은 72, 어떤 날은 98.
어느 날, 돌담 틈에서 어린 고양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입술 위에 반점이 있는 검은 고양이. 나는 무릎을 굽혀 손등을 내밀었다. 고양이는 내 손을 냄새 맡더니, 느릿하게 고개를 비비고 사라졌다. 사라진 자리에는 풋귤 비슷한 냄새가 남았다. 나는 노트에 적었다. ‘돌담+고양이=풋귤’. 덧붙였다. ‘그리움은 종종 초록빛.’
Ⅸ
도시에 두고 온 사람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단문. “잘 지내?”
나는 화면을 오래 바라보다가 답장을 쓰지 않았다. 알림창은 내가 아는 모든 언어 중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낸다. 나는 휴대폰을 뒤집고, 사철쑥을 컵에 우렸다. 10분 뒤, 따뜻한 증기가 팔뚝 위로 올라왔다. 바람의 냄새가 정리되는 느낌.
그날 밤, 나는 자다가 일어나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사랑은 방향이 아니라 온도일지도. 그리움은 방향일지도. 바람은 이 둘을 교차시키는 선.’ 문장 끝에 작은 도장을 찍었다. ‘보류’. 아직 이 정의를 세상에 확정하고 싶진 않았다. 나에게 확정은 때때로 거짓이었다. 살아 있는 것은 계속 변하니까.
Ⅹ
마을의 초여름은 국밥집에서 시작했다. 어머니 같은 손을 가진 주인이 내어주는 따뜻한 국물, 낡은 선풍기가 내는 반복음, 수저통에서 철 수저들이 부딪히는 소리. 나는 국밥 위에 파를 흩뿌리며 생각했다.
—사람의 말 중 일부는 칭찬이라는 이름으로 검열이 된다. ‘넌 어디서든 빛날 거야’ 같은 문장. 그럴 때 필요한 건 빛이 아니라 위치다.
바람은 늘 위치를 알려준다. 어디서 불어왔는지, 어디로 갈 건지. 돌담은 그 바람을 잠깐 붙들어 어딘가 머물게 한다. 머묾은 위치의 시간적 이름. 아마 내가 찾는 냄새는 머묾의 냄새일지도.
국밥집 창문으로 낮은 바람이 들어왔다. 나는 갑자기 오래 전의 복도 냄새를 떠올렸다. 야근 끝 복도, 형광등과 베이지색 장판이 섞인 냄새. 그 냄새는 슬펐지만 동시에 안전했다. 오랜만에 나는 내 과거에게 안부를 물었다. “너, 아직 거기 있지?” 복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국밥 김이 허공에서 모양을 바꿨다.
Ⅺ
비가 오던 날, 돌담은 숨을 쉬는 듯했다. 빗방울이 돌 표면에 작은 파문을 남기고, 파문 사이로 토양의 냄새가 올라왔다. 어릴 적 비 오는 날마다 베란다에 놓인 흙화분을 코끝에 붙이고 킁킁대던 나를 떠올렸다. 흙은 늘 대답이 느렸다. 느린 대답이 싫지 않았다.
비를 맞으며 걸을 때, 서하가 우산을 들고 달려왔다.
“젖어요.”
“돌담은 젖을수록 말이 많네요.”
“그 말, 나도 좋아해요.”
우리는 우산 하나를 나눠 썼다. 우산 천을 두드리는 비 소리가 두 사람의 머리 위에서 작게 북을 쳤다.
“그 냄새 이름, 정해졌어요?”
“아직요. 보류 중.”
“좋아요. 그럼 오늘은 보류를 축하하죠.”
“보류를 축하한다고요?”
“정답을 늦추는 건, 대개 가장 용감한 선택이에요.”
나는 웃었다. 비 냄새 속에서 웃음은 한층 가볍게 났다.
Ⅻ
여름의 가장자리, 망각청 풍향과의 담당자가 바뀌었다. 새 담당자는 중절모를 쓰고 다녔고, 승인 도장도 이전보다 진했다. 나는 창구에 서서 내 노트를 보여주었다.
“바람 방향, 그림자 길이, 심박수… 꼼꼼하시네요.”
“냄새는요?”
“아직 이름을 못 붙였어요.”
담당자는 잠시 침묵하더니, 서랍에서 얇은 종이 한 장을 꺼내 건넸다. ‘사전 명명서’. 여백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름의 임시는 이름의 시작입니다. 임시를 오래 붙들수록, 이름은 당신에게 돌아옵니다.’
나는 그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임시를 오래 붙들수록…”
“그러니 서두르지 마세요.” 담당자가 웃었다. “후각 보존 옵션은 연장 가능합니다. 대신, 하루에 한 번 그 냄새를 생각하며 심호흡하세요. 행간은 호흡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창구 앞에서 조심스레 숨을 들이마셨다. 담당자는 내 동작을 따라 깊게 숨을 들이키고 내쉬었다. 창구의 유리 칸막이가 잠시 호흡의 박자에 맞춰 흐릿해졌다가 맑아졌다.
ⅩⅢ
어느 날 오후, 돌담 한쪽이 무너져 있었다. 폭우가 지나간 흔적.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돌을 주워 올렸다. 나도 돌을 하나씩 들었다. 돌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가벼운 돌들로 단단한 담을 쌓는 일. 우리는 입을 다물고, 숨을 맞추며, 돌과 돌 사이의 행간을 추측했다.
“여기, 이만큼?”
“조금만 더.”
“그 사이로 바람이 지나갈까요?”
“지나가야죠. 막으면 썩어요.”
담이 다시 세워졌을 때, 모두가 한걸음 물러서서 모양을 보았다. 여럿의 손길이 만든 매끈함. 나는 내 안에, 부서졌다가 다시 쌓인 어떤 감정의 모양을 떠올렸다. 부서지는 동안은 아팠지만, 다시 쌓는 동안에는 이상하게 덜 아팠다. 바람이 지나는 길을 남겼기 때문일까. 나는 그날 저녁 노트에 적었다. ‘슬픔이 썩지 않으려면, 바람길을 낼 것.’
ⅩⅣ
도시에 두고 온 사람에게 다시 메시지가 왔다. “언제쯤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는 이번에는 답장을 보냈다. “바람이 잦아들면.”
“그건 언제?”
“아마, 내가 이름을 붙였을 때.”
“…무슨 이름?”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작은 소리를 내며 커튼을 건드렸다. 바람 속에서 나는 한때의 나를 보았다. 언제나 빠르게 걷던 사람, 무언가를 증명하느라 족쇄처럼 묶었던 신발 끈, 칭찬을 의심하느라 더 외로웠던 밤. 나는 창틀에 팔꿈치를 대고 속삭였다. “괜찮아. 이제는 보류해도 돼.” 커튼이 짧게 대답했다. 커튼의 대답은 언제나 온기 쪽이었다.
ⅩⅤ
가을이 왔다. 돌담 위로 감국이 고개를 내밀었고, 국화잎을 쓰다듬으면 밀가루처럼 연한 향이 묻었다. 서하는 감국 한 줌을 내 손에 올려주며 말했다. “이건 가을의 바람을 잡아줘요.”
나는 코끝에 가져갔다. 그 냄새는 이상하게도 오래전 장롱 속 겨울이불 냄새를 닮았다. 나는 웃었다. 가을 안에 겨울이 숨어 있고, 겨울의 예고 안에 누군가가 나를 덮어주던 손길의 온도가 숨어 있었다.
그날 밤, 바람 기우제는 다시 열렸다. 사람들은 이번엔 다 같이 같은 문장을 라벨로 적었다. ‘삶이 돌담이라면, 그 언저리에 맴도는 바람의 냄새는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리고 각자 한 단어씩 붙였다. ‘사과’, ‘염치’, ‘재회’, ‘포기’, ‘머뭇’.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펜을 들고 한참을 멈췄다가, 결국 이렇게 썼다. ‘안부’.
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누군가가 물었다. “왜 안부예요?”
“그리움은 저쪽에서 여길 바라보는 방향 같고, 사랑은 이쪽에서 저쪽을 덮어주는 온도 같아요. 근데 이 바람은… 서로의 온도와 방향이 잘 있는지 묻고 지나가요. 그래서 안부.”
사람들이 조용히 웃었다. 돌담 위 촛불이 작은 박수처럼 흔들렸다.
ⅩⅥ
며칠 뒤, 망각청에서 또 엽서가 왔다. 파란 잉크로, 단정한 행정어. ‘냄새 명명—안부. 임시 확정. 추후 변경 가능. 행간 유지 권장. 추신: 신발 끈은 한 줄만 풀어 묶어도 충분합니다.’
나는 엽서를 읽으며 활짝 웃었다. 엽서를 찬장 앞에 붙였다. 임시 확정. 너무 사랑스러운 모순. 나는 그 말이 주는 여유를 신뢰했다. 확정은 되었지만, 언제든 다시 들여다볼 수 있다는 약속. 살아 있는 것에게 필요한 방식.
ⅩⅦ
도시에 두고 온 사람과의 통화는 짧았다. 우리는 서로의 근황을 말하고, 오래된 오해의 일부를 풀었다.
“너는 늘 나를 바쁘게 사랑했어.” 그가 말했다.
“나는 그걸 성실이라 부르고 싶었어.”
“이제는?”
“이제는 붙듦이라 부를래. 붙들기와 붙어 있기를 헷갈리지 않으려고.”
“네가 바람의 냄새에 이름 붙였다는 소식을 들었어.”
“안부.”
“그건… 우리에게도 필요한 말이네.”
통화를 끝내고 창문을 닫았다. 방 안의 공기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나는 내 안의 어떤 문장 끝에 도장을 찍었다. ‘전환’.
ⅩⅧ
겨울 초입, 돌담 위로 첫서리가 내렸다. 바람은 더 얇아졌고, 얇아진 바람은 오히려 멀리서 온 냄새를 잘 실었다. 석탄 냄새 같은 노을, 새벽에 일어난 빵집의 좁은 단내, 바닷가 공터에서 어느 노인이 태운 마른 장작 냄새. 나는 걸음을 멈추고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안부의 냄새는 계절마다 조금씩 달랐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는 핵심이 하나 있었다.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은 바람의 길과 닮아 있었다. 돌과 돌 사이의 행간을 지나며 지나치되,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ⅩⅨ
연말이 다가오자, 마을회관에는 길고 흰 종이가 걸렸다. 각자 올해 한 문장을 적어 걸어두는 행사. 서하는 ‘보류는 다음을 위한 친절’이라고 썼다. 누군가는 ‘나는 내 삶의 독자이자 저자’라고 썼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펜을 들고 천천히 썼다.
“삶이 돌담이라면, 그 언저리에 맴도는 바람의 냄새는 안부다. 그 안부에는 그리움의 방향과 사랑의 온도가 겹쳐 있다.”
그리고 마지막 점을 찍기 전에, 나는 잠깐 멈췄다.
“근데 가끔은—”
나는 점 대신 작은 네모를 그렸다. 그 안에 ‘보류’라고 적었다.
사람들이 웃었다. 어떤 아이가 물었다. “왜 보류예요?”
“내년의 내가 또 다른 냄새를 발견할지 모르니까.”
“그럼 내년 종이에도 쓸 거예요?”
“응. 아마도.”
ⅩⅩ
동지(冬至). 가장 긴 밤. 나는 등불을 켜고 오래 앉았다. 종종 그랬듯, 앉아 있기 위해 앉았다. 머그컵에서 김이 올라왔다. 나는 자신에게 작은 편지를 썼다.
—너는 귀향하듯 이곳에 왔고, 돌담과 소곤길은 너를 환대했다. 너는 냄새로 기억하고, 이름으로 구제되었다. 너의 그리움은 방향을 찾았고, 너의 사랑은 온도를 배웠다. 그리고 너는 안부를 배웠다. 안부는 서로를 붙들지 않으면서 붙어 있는 방식이다.
편지를 접고, 서랍에서 도장을 꺼냈다. ‘보류’. 탁. 잉크의 가장자리가 종이섬유를 타고 번졌다. 그 번짐이 예뻐서, 나는 한 번 더 찍고 싶었으나 참았다. 보류의 장점은 언제든 다시 찍을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내일의 종이에.
ⅩⅪ
봄이 세 번째로 돌아오던 날, 바람 기우제는 마을 밖 들판에서 열렸다. 우리는 각자 새 병을 들고, 병마개를 여는 대신 마음을 열었다. 올해의 라벨은 모두 같은 문장으로 시작했다. ‘안부의 냄새: ________.’
서하는 내게 조용히 물었다. “올해는 뭐로 채울 거예요?”
나는 멀리 소곤길 쪽을 바라보았다. 돌담 위를 지나가는 고양이의 꼬리가 깃발처럼 흔들렸다. 아이들이 뛰어가며 웃었다. 국밥집 굴뚝에서 얇은 연기가 올랐다. 바다 쪽에서 바람이 밀려왔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머묾.”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가 노래를 흥얼거렸다. 바람은 그 노래를 실어갔고, 돌담은 잠깐 그 노래를 붙들어두었다. 그렇게 안부는 올해도 모양을 바꿨다. 그리움의 방향과 사랑의 온도가 겹치는 자리에서, 안부는 머물렀다 갔다.
나는 노트에 조용히 써두었다. ‘안부=머묾의 기술.’
ⅩⅫ
이야기를 이렇게 끝내도 될까? 나는 아직도 가끔 묻는다. 이야기의 끝은 종종 다음을 위한 문턱이었다. 나는 돌담에 손바닥을 대고, 바람을 기다린다. 바람은 늘 온다. 늦을 때도 있지만, 늘 온다. 올 때마다 조금 다른 냄새를 데려온다. 그때마다 나는 마음속 우체국에서 엽서를 한 장씩 꺼내 쓴다.
‘수신: 나, 그리고 한때의 너, 그리고 아직 모르는 너.
제목: 냄새 명명—안부.
내용: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답하는 사이에 머물렀다. 그 사이가 바로 사랑이고, 그 사랑이 바로 그리움이었다.
추신: 신발 끈은 한 줄만 풀어 묶어도 충분하다. 행간은 호흡이다. 호흡은 용기다.’
그리고 작은 도장을 끝에 찍는다. 탁. ‘보류’.
보류는 끝이 아니다. 보류는 다음을 위한 친절이다.
그러니, 만약 삶이 정말 돌담이라면—그 언저리에 맴도는 바람의 냄새는 오늘은 ‘안부’라고 부르자. 내일은 또 어떤 이름이 우리를 찾아올지 모르니, 그 자리는 남겨두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그 빈칸을 함께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빈칸을 오래 바라본다. 바람이 지나간다. 누군가의 숨이, 아주 잠깐 머문다. 그리고 나도, 잠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