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어떻게 맨날 어렵지?

지겨워, 지겨워~

사는 내내 삶이 버겁고, 진절머리 나게 지겨웠다. 왜 사는 게 이다지도 쉬운 적이 단 한 번이 없는 건지에 대해 한탄할 때마다, 비교적 쉬웠던 순간들이 몰래몰래 내 눈치를 보며 살금살금 까치발을 들고 지나갔다. 애써 모른 척하며 삐대던 나는 아직도 철이 안 든 30대 후반의 어른이.



나는 어느 날, 내 삶의 무게를 재러 갔다. 주민센터 지하 2층, ‘생활무게조절과’라고 적힌 문패 아래 줄을 섰다. 창구 바깥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 “버거움은 절대량보다, 라벨에 민감합니다.”
번호표엔 37이 찍혔다. 바닥은 고무 냄새가 났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제각각의 서류봉투를 꽉 붙들고 있었다. 어떤 이는 ‘가계부채 경감 신청’, 어떤 이는 ‘이사 스트레스 완화’, 그리고 나는 ‘삶의 난이도 하향 희망서(임시)’.
“어떤 무게를 줄이고 싶으세요?” 담당자가 물었다.
“모든 무게요.”
“그건 불가합니다.”
“알아요. 그러면… ‘늘 무거울 것이다’라는 예단을요.”
담당자가 웃었다. “예단 제거는 가능합니다. 대신 라벨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녀는 서랍에서 작은 스탬프를 꺼내 보여주었다. ‘전환’, ‘보류’, ‘행간’. 손잡이엔 나뭇결이 예쁘게 살아 있었다.
“당장 삶을 가볍게 만들 수는 없지만, 가독성은 높일 수 있어요. 읽히는 삶이 덜 무겁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읽히는 삶… 그거 좋아요.”



요즘 내 혀끝에서 자주 맴도는 단어는 ‘항상’이었다. 항상 바빴고, 항상 비어 있었고, 항상 누군가의 안부를 묻고 나면 내 안부는 뒤로 밀렸다. 어떤 밤에는, 쉬웠던 순간들이 줄 맞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발끝 소리조차 내 눈치를 보느라 작게, 까치발. 그 아이들을 붙잡아 이름을 붙여주면 내 삶도 조금은 변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늘 놓쳤다. 쉬움은 대개 조용하게 지나가니까.
그래서 생활무게조절과에서 받은 서류 제1호를 꺼냈다. ‘쉬웠던 순간 라벨링 일지’. 사용법은 간단했다.

오늘의 쉬움 1가지를 적고,

그 쉬움에 어울리는 냄새·소리를 붙이고,

끝에 도장을 찍을 것. (권장: ‘보류’)
도장이 마음에 들었다. 보류. 딱 내 나이의 말투였다. 결론을 뒤로 미루는 것은 도망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친절. 나는 그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첫 기록은 빨래방에서 시작됐다. 밤 열한 시의 드럼통은 우주였다. 습기와 섬유유연제, 금속이 구르는 둔탁한 소리. 비어 있는 의자 위에 가방을 올려두고, 나는 오랜만에 등을 곧추 세우지 않았다.
— 오늘의 쉬움: 회전창 안쪽에서 밝아지는 흰 목티.
— 냄새: 따뜻한 공기, 약간의 레몬, 동전의 쇠내.
— 소리: 터덜터덜 빨래가 자기 속도로 돌리는 박자.
나는 마지막 칸에 ‘보류’를 찍었다. 왜 쉬웠는지는 아직 몰랐다. 다만 그 순간 내가 누군가에게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것만, 확실했다.
돌아오는 길, 하얀 김이 뺨에 닿았다. 설마 내 숨이? 나는 웃음이 났다. 내가 내 숨을 따뜻한 일로 세는 법을 그제야 배웠다는 게 어처구니없어, 웃음.



둘째 기록은 국밥집에서. 문을 열자 쇠숟가락들이 서로를 부딪치며 반겼다. 사장님은 내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 특유의 간결한 미소를 지었다.
“파 많이요?”
“네, 파 많이.”
나는 파를 쓸어 넣으며 생각했다. 파도 쉬움이다. 잘린 단면에서 올라오는 초록 냄새가 마음속 먼지를 눌렀다. 국밥이 쉬운 건 국물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를 기다리는 뜨거움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쉬웠다.
— 오늘의 쉬움: 식탁에 놓인 김 그릇이 내 어제까지의 말을 모른 척해줌.
— 냄새: 파, 기름, 김.
— 소리: 보글, 후루룩, “맛있게 드세요.”
그리고 도장: 보류.
보류를 찍을 때마다 나는 마음속에 작은 문서를 한 장 더 만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행정이 나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마음의 나라에 드디어 문서의 나라가 생겨서였다. 증거가 있는 마음. 마음이 증명되는 삶.



그런데, 기록은 뜻대로만 되지 않았다. 셋째 날, 아무것도 쉬웠지 않았다. 출근길 지하철은 어제보다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간 것 같았다. 승강장에서 내 옆에 서 있던 여자가 전화로 크게 울었다. 나는 눈을 어디 둘지 몰라 신발 끝만 봤다. 내 신발 끈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빡빡하게 묶여 있었다.
그날 하루 종일, 쉬움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나타났는데 내가 못 본 걸까. 쉬움이 까치발로 지나간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내 발을 조금 들어 올리는 일이었을지도.
밤이 되어서야 나는 겨우 적었다.
— 오늘의 쉬움: 없음(추정).
— 사유: 시야 협소. 발목 경직.
— 조치: 신발 끈 한 줄만 풀어 느슨히 묶기.
그리고 도장. 보류. 나는 보류를 찍고, 진짜로 끈을 풀었다. 놀랍게도 발등에서 벌떡, 한숨 같은 것이 일었다. 철이 덜 든 어른이었지만, 이런 건 배울 수 있었다.



생활무게조절과의 담당자에게 중간 점검을 받으러 갔다. 그녀는 내 일지를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 좋습니다. 그런데 ‘없음(추정)’도 기록하세요. 쉬움이 없는 날이야말로 쉬움의 자리 표시가 되거든요.”
“자리 표시요?”
“빈칸은 보통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죠. 하지만 빈칸은 지정 좌석의 다른 이름이에요. 나를 위한 자리.”
그녀는 서랍에서 또 하나의 스탬프를 꺼냈다. ‘좌석’.
“이건 보너스예요.”
나는 웃었다. 나도 모르게 도장들에 애착이 생겼다. 사람마다 자기만의 보호구가 있다면, 나는 이제 작고 둥근 고무인 몇 개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즈음, 내 꿈에 법정이 나왔다. 원고는 나, 피고는 삶. 죄목: 상시 난이도 상. 증거: 매일 밤의 무릎 통증, 매달의 계좌 잔고, 대화의 끝마다 남는 죄책감.
판사가 내게 물었다. “원고는 쉬웠던 순간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까?”
나는 주머니에서 일지를 꺼내 들었다. “가끔요. 빨래방, 국밥집, 파, 김.”
“그 순간들에 이름을 붙였습니까?”
“네. 아직도 보류지만요.”
그때 피고석에서 삶이 고개를 들었다. 삶은 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신은 늘 어려웠던 건 아니잖아요.” 삶이 말했다. “나는 꽤 많은 쉬움을 보냈어요. 다만 당신이 까치발을 싫어했을 뿐.”
좌중이 술렁였다. 판사가 책상을 톡 쳤다.
“본 법정의 판단은 이렇습니다. 전면 폐기가 아닌, 재라벨링. 피고는 여전히 어렵지만, 원고가 읽을 수 있게 행간을 넓힐 것. 선고: 보류.”
나는 웃다 깨었다. 웃으며 깬 아침은 오랜만이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내가 보류를 자꾸 찍어.”
“그게 뭔데.”
“결론을 미루는 도장.”
“그럼 좋지. 사람은 원래 내일의 결론으로 산다.”
“근데 자꾸 철이 안 든 것 같아.”
“철은 들고 나면 또 변색돼.”
어머니는 간결하게 말했고, 그 말은 국물처럼 오래갔다. 전화를 끊고, 나는 냉장고 위에 작은 메모를 붙였다. ‘철의 색은 계절마다 다르다.’ 이 말은 나를 즉시 어른으로 만들지도, 어린애로 되돌리지도 않았다. 다만 지금을 얹을 접시를 하나 더 내줬다.



어느 휴일 오후, 나는 동네 문구점에 들렀다. 주인아저씨는 가느다란 안경을 쓰고, 연필을 날카롭게 깎는 사람 특유의 정숙함이 있었다.
“도장 잉크는 파란 게 좋아요, 빨간 게 좋아요?”
“파란요. 빨강은 자꾸 죄책감이 떠오르거든요.”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병을 내밀었다. “이건 수성이라 번져요. 번지는 걸 싫어하는 분들도 있지만, 번짐이 행간을 만들어주기도 하죠.”
집에 돌아와 새 잉크를 찍어보니, 정말이었다. ‘보류’의 가장자리가 종이 섬유를 타고 천천히 번졌다. 번짐은 경계가 아니라, 숨이었다. 나는 번짐을 바라보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 내 삶이 지겨운 건, 사실 경계가 너무 또렷해서가 아닐까. 흰 건 무조건 일, 검은 건 무조건 쉼. 그리고 나는 늘 흰색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의로 선을 흐리기로 했다. 흑백의 중간에 그을음색을 하나 더 만들기. 그을음은 더럽지 않았다. 그냥 하루의 색.



그날부터 나는 “쉬움의 까치발”을 따라 걸었다. 구체적으로는, 하루에 세 번 발뒤꿈치를 살짝 들어 올리는 연습을 했다. 오전엔 커피를 내리며, 오후엔 신호를 기다리며, 밤엔 문고리를 잡고. 그렇게 발뒤꿈치를 살짝 들어 올리면, 몸이 앞이 아니라 위로 조금 움직였다. 위로 움직이는 건 마음에 새로운 층을 만든다. 1층에서만 살던 내가, 반층만 올라간 셈이었다.
반층의 풍경은 미묘하게 달랐다. 창문틀에 앉아있던 햇빛이 더 가까워졌고, 길고양이의 귀가 햇빛을 받는 각도가 선명했다. 길가 화단의 잡초에도 싸그락 하는 소리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 오늘의 쉬움: 발뒤꿈치 3차례.
— 냄새: 창틀의 먼지, 고양이 털, 화분 흙.
— 소리: 싸그락, 딸깍, 하—.
도장: 보류.



하필 그런 날, 회사에서 크고 작은 일이 한꺼번에 몰아쳤다. 보고서 마감, 과장님의 “혹시 이거 가능해?”가 세 번, 회의의 결론 없는 연장. 나는 종이를 세 번 구겼다. 구겨진 종이를 펴서 다시 쓰면, 종이는 이상하게도 더 금방 찢어진다. 사람도 그럴까.
퇴근길, 발목 통증이 차오르자 나는 문득 정류장 벤치에 앉아 울컥했다. “왜 이렇게 힘들어.” 소리 내지 않고 말했지만, 내 입모양이 유리창에 비쳤다. 그때, 내 옆에 앉은 어떤 아주머니가 종이봉투를 건넸다. 뜨거운 고구마 두 개.
“하나 먹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자꾸 괜찮다고 하면, 세상이 널 모를걸?”
나는 고구마 하나를 받았다. 뜨거웠다. 손바닥이 뜨거워서, 머릿속의 엉킨 끈이 조금 풀렸다.
— 오늘의 쉬움: 낯선 아주머니의 반강제 간식.
— 냄새: 뜨거움.
— 소리: 껍질 찢기는 소리.
도장: 보류.
그러고 나서, 나는 깨달았다. 쉬움은 종종 타인의 손에서 온다. 내가 나에게 해준 적 없이, 누군가가 가볍게 건네줬던 그 손. 까치발의 소유자는 나만이 아니었다.



생활무게조절과에서 한 달 점검을 받는 날, 담당자는 내 기록을 읽고 미소 지었다.
“이제 라벨을 바꿔보죠.”
“어떤 라벨로요?”
그녀는 작은 라벨 스티커 뭉치를 내밀었다. ‘항상’ 대신 ‘대체로’, ‘절대’ 대신 ‘대개’, ‘끝’ 대신 ‘보류’.
“언어는 난이도에 영향을 줍니다. 난이도 하향의 첫 단계는 부사 조정이에요.”
나는 집에 돌아와서 냉장고의 메모들을 모두 새 라벨로 바꿨다.
‘오늘도 항상 힘들었다’ → ‘오늘은 대체로 힘들었다.’
‘나는 절대 못 쉰다’ → ‘나는 대개 못 쉬지만, 가끔 쉰다.’
라벨을 바꿨을 뿐인데, 문장이 들린다. 귀가 덜 막혔다. 그렇게 귀가 열리면, 쉬움이 발을 딛고 들어온다. 까치발이더라도.


ⅩⅢ
가끔은 여전히 한탄이 먼저 뛰쳐나왔다. “왜 사는 게 이다지도 쉬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지?”
그럴 때마다, 쉬웠던 순간들이 몰래몰래 내 눈치를 보며 까치발을 들고 지나가는 상상이 선명해졌다. 나는 그 아이들을 붙잡아 세웠다.
“그만 까치발 하고, 그냥 걸어.”
“그럼 너 보고 모른 척하지 않을 거야?” 쉬움이 물었다.
“애써 모른 척하던 나, 이제 지겨워.”
쉬움은 나를 보더니, 천천히 발뒤꿈치를 바닥에 붙였다. 발바닥이 바닥을 만날 때 나는 이상하게 안도했다. 그게 사랑의 모양이든, 그리움의 방향이든, 상관없었다. 그냥 붙는 것이 필요했다.


ⅩⅣ
나는 나를 키운 도시를 떠난 적이 없다. 그러나 마음은 이주를 반복했다. 기억의 동네에서 망각청 출장소가 있는 동네로, 그리고 요즘은 행간이 넓은 동네로. 주소지 변경 신고는 생략했다. 신고해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니까. 대신 내가 나를 찾아갔다.
밤이면 책상 앞에 앉아 작은 의식을 치렀다.

신발 끈 한 줄 풀어 느슨히.

컵에 온수 붓기.

오늘의 쉬움 한 줄 쓰기.

끝에 도장 찍기.
특별할 것 없는 의식이었지만, 의식은 내 편을 만들어줬다. 그 편이 한 명 더 늘어날 때마다 세상은 미세하게 쉬워졌다.


ⅩⅤ
어느 토요일, 어머니와 국밥집에 앉았다. 어머니는 국물 위로 김을 올리고 말했다.
“네가 요즘 고단해도 좋아 보인다.”
“좋아 보여?”
“한탄을 말로 하고, 쉬움을 기록으로 하는 사람은 독해져.”
“독해진다고?”
“자기에게 덜 잔인해진다는 뜻이지.”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웃었다. 덜 잔인해지는 일. 그것도 성장이라면 성장이다. 철이 드는 대신, 잔인함이 덜해지는 쪽으로.
— 오늘의 쉬움: 엄마의 말을 ‘정답’이 아니라 ‘안부’로 듣기.
— 냄새: 김.
— 소리: 후—.


ⅩⅥ
생활무게조절과에서 마지막 엽서가 왔다. 파란 잉크, 단정한 행정어.
‘신청하신 난이도 하향(언어 라벨 조정)이 승인되었습니다. 일부 장면의 외곽선이 부드러워집니다. 삶의 가독성이 향상되기를 바랍니다. 추신: 쉬움이 까치발로 올 때, 본인도 발뒤꿈치를 살짝 들어 맞춰 주시길.
나는 엽서를 책상 위에 놓고 한참을 바라봤다. 가끔은 세상이 내 어휘를 알아듣는 것 같았다. 아니, 내가 세상의 어휘를 따라잡은 걸지도. 그 어느 쪽이든 괜찮았다. 가독성이 생겼으니.


ⅩⅦ
나는 여전히 30대 후반의 어른이고, 아마 앞으로도 철이 덜 들 것이다. 대신 나는 철의 무게를 줄이는 법을 배웠다. 철은 그대로지만, 라벨이 바뀌었다. ‘항상’에서 ‘대체로’로, ‘절대’에서 ‘대개’로, ‘끝’에서 ‘보류’로.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쉬움에게 제 발로 오라고만 하던 태도를 버렸다. 쉬움이 날 떠나지 않도록, 내가 쉬움 쪽으로 한 걸음 갔다. 발뒤꿈치를 조금 들고, 허리를 조금 풀고, 말끝을 조금 낮추고. 그렇게 말끝을 낮추면, 세상도 목소리를 낮춘다.
쉬웠던 순간들이 까치발을 풀고 내 옆을 지나간다. 손등이 닿는다. 안부가 된다.


ⅩⅧ
이 이야기를 여기서 멈추어도 될까. 나는 아직도 가끔 한탄한다. “왜 이렇게 힘들어.” 그 한탄은 예전처럼 나를 곧장 심해로 끌고 가지 않는다. 한탄 뒤에 행간이 있다. 행간은 호흡이고, 호흡은 용기다.
나는 일지를 덮고, 도장을 꺼낸다. 탁. ‘보류’. 그 도장 소리가 밤의 바닥을 부드럽게 울린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쓴다.
— 사는 내내 삶이 버거웠다. 그러나 버거움만 있지는 않았다. 쉬움은 왔다. 까치발로, 조심조심. 이제 나는 그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준다. 지정 좌석. 오늘도 비어 있지 않게, 내 이름을 붙여둔다.
빈칸 겁내지 않기. 느슨함은 게으름의 반대편—그것은 신뢰.


행간 유지. 가독성 확보. 그리고, 안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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