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밤에는 진짜 잠이 너무 안 왔다.

아니, 잠이 달아나버린 것 같다.

어느 밤에는 진짜 잠이 너무 안 왔다. 근데 이 말이 계속 우스워 푸스스 웃어버렸다. 그래서 잠이 달아나 버렸을까. 아니, 대체 잠이 온다는 건 어떤 거야? 살금살금 걸어와 왕! 하고 나를 덮치면 잠들어버리는 걸까.



그날 밤, 나는 침대 위에서 “잠이 온다”는 문장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다가 스스로 웃음이 터져버렸다. 말이 너무 귀여웠다. 잠이 걸어온다니, 신발은 몇 센티 굽을 신을까. 까치발로 올까, 장화로 철퍼덕철퍼덕 올까. 문을 두드리나, 초인종을 누르나. 웃음이 나오자, 잠은 더 멀어졌다. 웃음이란 게 그렇다. 혼자 방에서 킥킥거리면, 방도 덩달아 깨버린다. 나만의 녹음 버튼을 누른 것도 아닌데, 방 안의 모든 물건들이 내 웃음을 저장해 두는 것 같았다. 베개, 침대프레임, 스탠드, 천장의 돌기, 심지어 창틀 먼지까지도.



나는 ‘잠이 온다’는 문장을 행정적으로 처리해 보기로 했다. 뭐든 종이에 올리면 조금은 진정된다고 믿는, 나의 오래된 믿음. 서랍에서 고무인 도장을 꺼냈다. 손잡이에 ‘보류’라고 새겨진, 파란 잉크를 먹는 작은 동그라미. 종이 위에 크게 썼다.
— 안건: 잠의 동선 파악.
— 배경: 오늘 자정 웃음으로 인한 방 전체 각성.
— 목적: 잠의 입실 경로 확보 및 불시 덮침(왕!) 방지.
그리고 도장을 ‘탁’ 찍었다. 보류. 이 말은 늘 나를 편하게 한다. 결론을 잠시 미루는 일. 내일의 내가 조금 더 잘 알 수도 있다는 믿음. 느슨함은 게으름의 반대편—그것은 신뢰라고, 나는 메모했다.



다음 날, 나는 주민센터 지하 1층에 있는 수면진흥원 출장창구—정식 명칭 ‘수면진흥원 잠행과(潛行課)’를 찾았다. 파란 문, 은색 글씨, 안에는 파리채 같은 얇은 부채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담당자는 나를 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잠이 안 오셨군요.”
“네. 근데 표현이 너무 웃겨서요. ‘잠이 온다.’ 그게 어떤 걸까요.”
담당자는 투명 파일에서 서류를 꺼냈다. ‘입잠(入睡) 신고서’. 옆에는 작은 부록. ‘잠의 보행습관 7종’.

까치발형: 소리 거의 없음. 라이트 다운, 체온 살짝 하강 필요.

큰 걸음형: 무기력 폭주. 방은 조용하지만 마음은 어수선할 때.

우회형: 침대 대신 의자에서 옆으로 잠깐.

포옹형: 담요의 무게, 무게가 말 걸어올 때.

반려형: 고양이/강아지 수면호흡 동조.

장난형: “왕!” 하고 덮치기도 함.

행간형: 문장 사이 공백이 넓어질 때, 호흡이 길어질 때.

“고객님은 어떤 유형이신 것 같아요?”
“장난형… 같기도 하고, 행간형 같기도 하고요.”
“좋습니다. 그럼 ‘행간 유지 계도서’와 ‘장난형 안전수칙’을 드릴게요.”
그는 파란 잉크로 엽서를 적어 내게 건넸다. ‘입잠 교육 수강 승인. 행간=호흡=용기. 추신: 신발 끈은 한 줄만 풀어 느슨히 묶으세요.’



집으로 돌아와 의식을 만들었다.

신발 끈 한 줄 풀어 느슨히(느슨함은 신뢰).

스탠드 조명 30%로 낮춤(현실의 채도 낮추기).

머그컵에 따뜻한 물과 사철쑥 한 꼬집(바람의 냄새 정리).

휴대폰에게 작게 “오늘은 나 먼저 잘게”라고 말하기(기계에게도 예의를).

‘입잠 신고서’ 옆에 ‘보류’ 도장 찍기(결론 유예).

나는 침대에 앉아 그 모든 걸 실행했다. 그런데도 잠은 오지 않았다. 어쩌면 잠은 ‘의식’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지도 몰랐다. 너무 잘 준비된 자리에는 장난치고 싶지 않은 걸까. 즉흥성이 부족한 무대는 관객도 배우도 졸린 척을 못 한다.



나는 계획을 틀었다. 계획을 틀 수 있다는 사실이 어른의 증거라면, 나는 오늘 처음 어른이 된 셈이었다. 전등을 더 낮추고, 베개에 얼굴을 비비고, 입술로 공기를 불어보았다. 바람이 굴러가다 내 뺨으로 돌아왔다. 나는 속삭였다.
“잠아, 너 오는 거 알아. 근데… 오늘 ‘왕!’은 하지 말자.”
웃음이 터졌다. ‘왕!’이 너무 귀여웠다. 잠이 내 위에 느닷없이 올라타 내 숨을 “흐” 하고 끊어버리는 상상을 하자, 오히려 숨이 깊어졌다. 나는 하품을 했고, 그 하품이 입 밖으로 나오자 나는 그걸 잡아 서랍에 넣는 흉내를 냈다. 하품을 저장해 두면 잠이 찾으러 올까. 나의 바보 같은 생각은 나를 부드럽게 했다. 바보스러움은 종종 안전지대다.



내가 잠을 포획하려 했던 가장 오래된 방법은 ‘양 세기’였다. 양은 착하고 둔해서 늘 넘어갈 것만 같았지만, 열한 마리쯤부터는 내 속마음이 계산을 시작했다. “열둘, 열셋… 아, 방금 빼먹은 것 같은데? 처음부터 다시.” 그리고 나는 도표를 그렸다. 양들이 무리 지어 이동하는 루트, 펜스 높이, 점프 각도. 나의 잠은 공부하는 순간에 도망쳤다.
그래서 나는 잠의 종류를 바꿨다. 이번엔 고양이. 이름은 ‘잠’. 부르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좋다. 오지 않는 이름을 부르며, 나는 조용히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기다림이 오면, 숨길이 넓어진다. 행간이 생긴다. 행간은 호흡이고, 호흡은 용기다—잠행과 엽서의 그 문장을 천천히 따라 읽었다.



새벽 두 시를 넘어가자, 벽지가 아주 미세하게 숨 쉬는 소리가 났다. 벽지는 밤마다 나보다 먼저 자고 나보다 먼저 깬다. 그 패턴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각자의 직업이 다르니까. 밤은 벽지에게 일터고, 거실러그에게 휴식처다. 나는 내 직업을 생각했다. 오늘의 나는 ‘잠 안내원’이었다. 손에 작은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는 사람. “이쪽입니다. 발밑 조심하세요. 방석은 따끈합니다.”
무슨 일인지, 나는 갑자기 배가 고팠다. 착한 허기였다. 허기와 나는 오랜 원수였다. 배고프면 나는 조급해졌고, 조급하면 잠은 더 멀어졌다. 그날의 허기는 조금 달랐다. ‘조금만, 따뜻한 것 한 모금’이라고 적힌 허기였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물을 데웠다. 머그컵에 물을 붓고, 사과 반쪽을 얇게 썰어 넣었다. 사과가 뜨거움에 얼굴 붉히는 모습이 귀여워서 또 웃음이 나왔다. 웃음, 사과 향, 따뜻함. 이 셋은 오랜 친구 같다.



다시 침대로 돌아왔을 때, 창밖에서 작은 바람이 올라와 커튼을 건드렸다. 커튼이 작게 ‘쉿’ 하는 손짓을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쉿. 지금부터는 ‘쉽니다’의 쉽으로 쉿. 잠이 올 때, 말이 많으면 늘 도망갔다. 그래서 나는 단어들을 속으로 접었다. ‘오늘의 실수’, ‘내일의 일정’, ‘쓸데없는 비교’, ‘흥분’, ‘억울’. 단어들을 접어 작은 상자에 넣는 상상을 했다. 상자 겉면에는 ‘보류’ 도장을 찍어두었다. 내일 아침, 필요하면 다시 꺼내자.
그렇게 상자를 닫자, 방 안의 공기가 느리게 흘렀다. 느림은 음악이다. 나는 그 느림을 타고 대자로 누웠다. 손등이 이마에 닿자, 이마가 ‘아’ 하고 작게 신음했다. 그때—문득—‘왕!’이 왔다.



정말로, 왕! 하고 왔다. 사납게 가 아니라 장난기 가득한 ‘왕!’이었다. 이불 끝에서 시작해 내 배 위를 사뿐하게 밟고, 어깨까지 올라와 내 눈꺼풀 위에 엎드리는 ‘왕!’. 나는 너무 웃겨서 또 웃었다. 잠이 내 위에 올라타면, 무얼 해야 하지? 밀어내야 하나, 붙잡아야 하나.
잠행과에서 받은 ‘장난형 안전수칙’이 생각났다.
— 장난형 잠이 덮칠 경우

즉시 목을 내주지 말고, 어깨부터 살포시 맡기기.

눈꺼풀 위에 잠이 앉을 때, 깊은 하품으로 침대의 탄력 확보.

웃음이 나면 웃어도 무방. 단, 큰 소리 웃음은 수면의 고양이를 놀라게 함.

나는 2번을 실행했다. 하품. 하품이 나오자, 어디선가 아주 가늘고 긴 실이 하나 걸려들어왔다. 그 실은 내 가슴뼈 중앙과 베개 밑 어둠을 연결했다. 나는 그 실을 잡아끌지도 놓아버리지도 않았다. 그냥 두었다. 잠은 그 실을 따라왔다.



그날 밤, 꿈의 초입에서 나는 ‘잠세관’에 들렀다. 세관 직원은 네모난 모자를 쓰고, 내 가방을 엑스레이에 넣었다. 가방 안에는 오늘 접어 넣은 단어들이 있었다. ‘억울’, ‘비교’, ‘흥분’. 직원이 물었다.
“반입 금지입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찾아가시죠.”
“혹시 ‘안부’는 반입되나요?”
“안부는 환영이죠. 그리고 ‘보류’는 면세입니다.”
나는 웃었다. 면세 ‘보류’. 내 꿈은 점점 행정의 나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행정은 내겐 안전이었다. 질서가 아니라 자비의 형태로 작동하는 서류. “지금은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문장들. 나는 도장을 꺼내 직원에게 내밀었다. ‘보류’. 직원이 탁 찍어줬다. 잠이 그 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았다. 전날의 행운이 영원할 거라 믿지 말자. 잠은 여권에 스탬프 받는 손님이 아니라 근처 고양이였으니까. 고양이는 날마다 기분이 다르다. 나는 다시 서랍을 열고 서류를 꺼냈다. ‘입잠 신고서—재신청’. 이유란에 적었다. ‘전날 웃음으로 인한 과도한 기대. 오늘은 무기력.’ 담당자에게서 파란 잉크의 엽서가 왔다.
‘재신청 승인. 무기력형은 조도의 과감한 인하와 무게 자극이 유효. “달아나지 않을 무게”를 사용하세요.’
달아나지 않을 무게? 나는 서랍을 뒤졌다. 작은 담요 하나, 두꺼운 책 한 권(읽지 않기로 유명한 책), 그리고 고양이 대신 껴안는 쿠션. 담요를 배 위에 얹자, 몸이 “아” 하고 길게 소리를 냈다. 무게는 종종 말을 걸어온다. “여기 있어.”
그때 나는 깨달았다. 잠은 나를 덮치는 괴물 ‘왕!’이기도 하지만, 내가 맡아주는 무게이기도 하다는 것을. 누군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졸던 오래된 버스의 기억이 떠올랐다. 버스의 흔들림, 그 버벅거림. 내 목의 두께. 창문에 머리콩 박히는 소리. 그때도 나는 졸았다. 잠은 왔다. 버스의 무게로, 사람의 체온으로.



잠행과에서 ‘행간 유지 계도서’의 다음 페이지를 펼쳤다.
— 실습 3: 잠에게 길을 묻지 말고, 길을 내줄 것.

침대 위에 ‘빈자리’ 확보(쿠션 하나 치우기).

방에 ‘빈 소리’ 확보(선풍기 미풍, 창문 살짝).

마음에 ‘빈칸’ 확보(오늘 해석 금지).

나는 “해석 금지”라는 문구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종이에 굵게 써서 머리맡에 붙였다. ‘오늘의 일은 오늘 해석하지 않는다.’ 내가 자꾸 삶을 당일배송 해석으로 찢어먹는 버릇이 있어서였다. 모든 것을 그날 밤 판단하려고 하면, 잠은 영원히 면허를 내주지 않는다.


ⅩⅢ
나는 때때로, 잠의 냄새를 기록하기로 했다. 파란 노트 표지에 ‘잠 라벨 일지’라고 적고, 매일 밤 잠 가까이 왔을 때의 냄새를 채웠다. 어떤 날에는 빨래 건조대에서 풍기는 면 냄새, 어떤 날에는 손등의 비누 냄새, 또 어떤 날에는 먼 데서 오는 미역 냄새. 특히 좋은 건 ‘안부의 냄새’였다. 누군가에게서 “잘 자”라는 메시지가 오면, 그 문장엔 따뜻한 김이 났다. 그 김은 이불속으로 얌전히 들어와 자리 잡았다.
나는 나에게도 “잘 자”라고 문자처럼 보내보았다. 수신자: 나. 내용: 잘 자. 첨부: 보류 도장 사진. 답장은 없었지만, 마음은 읽음 표시를 달았다. 파랗게.


ⅩⅣ
어느 밤에는 정말 미친 듯이 안 왔다. 두 눈이 창살처럼 딱딱해졌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게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고 돌아와 다시 누웠다. 그리고 문득, 한 생각이 들었다.
— 잠이 오지 않는 밤은, 잠에게 휴가를 주는 밤일지도.
잠도 사람처럼 지칠 것이다. 매일매일 우리를 재워주느라. 그래서 나는 잠에게 엽서를 썼다. ‘오늘 밤은 쉬세요. 저는 그냥 이렇게 깨어있겠습니다. 대신 내일 낮의 한 조각을 당신께 양보할게요. 오후 네 시쯤,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올 때, 단감처럼 달콤한 20분을 가져가요.’
엽서를 창틀에 올려두고, 나는 깨어있는 시간을 깨끗하게 보내보기로 했다. 핸드폰을 멀리 밀어 두고, 베개를 가만히 만지며, 내 심장 소리를 들었다. 심장이 일정하게 고개를 끄덕일 때, 나는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 길었다. 길지만 맑았다. 그리고 약속대로 다음 날 오후 네 시, 나는 소파에서 잠깐 단감처럼 스르륵 사라졌다. 잠은 약속을 지켰다. 상냥했다.


ⅩⅤ
수면진흥원 잠행과에서 마지막 엽서가 왔다. 파란 잉크, 단정한 행정어.
‘입잠 습관 전환—임시 확정. 장난형·행간형 혼합으로 분류. “왕!” 발생 시 놀라지 말 것. 웃음 권장. 추신: 웃음은 수면의 적이 아닙니다. 큰 소리만 조심하세요.’
나는 그 엽서를 머리맡에 붙였다. 밤마다 나는 확인했다. 임시 확정. 나는 이 말이 좋다. 확정되었지만 언제든 수정 가능하다는 자비. 살아 있는 것에게 필요한 방식. 잠도, 사랑도, 그리움도, 나도.


ⅩⅥ
그 뒤로, 잠은 여러 모습으로 나를 찾았다. 까치발로 커튼을 흔들며, 무게로 배를 눌러오며, 장난으로 이마에 ‘왕!’ 하고 올라타며. 나는 점점 덜 겁먹었다. 겁을 덜 먹자, 밤이 덜 무서웠다. 밤이 덜 무서우니, 낮이 덜 지쳤다. 낮이 덜 지치니, 다시 밤이 덜 무서웠다. 좋은 순환이 생겼다.
물론 어떤 날은 다시 처음처럼 돌아가기도 했다. 그럴 때는 서랍을 열고 도장을 꺼냈다. 탁. 보류.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오늘 해석 금지.” 그러면 이상하게도, 잠이 완전히 오지 않더라도, 밤은 지나갔다. 지나간다는 게 얼마나 큰 은혜인지, 나는 이제 안다.


ⅩⅦ
나는 내 잠에게 감사장을 주고 싶었다. A4 반 장 짜리, 파란 잉크로.
— 감사장
수상자: 잠(장난형/행간형)
공적: 밤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내게 붙듦을 가르침.
기여: 웃음과 하품의 공존, 무게와 빈칸의 균형, “오늘 해석 금지”의 도입.
비고: 가끔 늦어도 괜찮음.
나는 도장을 꾹 눌렀다. 보류. 감사장에 보류를 찍는 것도 이상했지만, 내 삶에 잘 맞았다. 고마움에도 유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제의 고마움과 오늘의 고마움 사이에는 늘 행간이 있고, 그 행간에서 숨을 쉬면 내일의 고마움이 자란다.


ⅩⅧ
이 이야기를 어디서 끝낼까 고민하다가, 나는 오늘 밤의 나를 기록한다. 지금, 스탠드 조명 30%, 창문 살짝, 사철쑥 아주 조금. 머그컵에서 김이 난다. 휴대폰은 저쪽 책상 위에 자고 있다. 방 안은 편지처럼 조용하다.
나는 속삭인다. “잠아, 올 거면 조용히 와. 안 와도 괜찮아. 나 혼자서도 오늘 밤을 깨끗하게 보낼 수 있어.”
그러고는, 아주 작게 웃는다. ‘왕!’이 떠올라서. 그리고—정말로—오늘도 어딘가에서 까치발 소리가 난다. 커튼이 “쉿” 하고 손짓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잠이 살금살금 걸어와, 왕! 하고, 나를 덮치지 않아도 괜찮다. 나를 스치고 지나가도 좋다. 붙들지 않고 붙어 있는 법을 조금은 알게 되었으니까.
잠은 오늘도, 오거나, 오지 않거나. 어느 쪽이든 나는 내 숨을 천천히 쓴다. 행간을 넓힌다. 느슨함은 게으름의 반대편—그것은 신뢰다. 나를 믿는 마음, 세계가 나를 저버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베갯속에 들어가 자리를 만들면, 그 자리에—어쩌면—잠이 앉는다. 아주 가볍게.
그리고 아주 멀리서, 파란 잉크의 엽서가 내게 도착한다.
‘입잠 처리 완료(또는 보류). 삶의 가독성이 향상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엽서를 베개 밑에 넣고 눈을 감는다. 왕! 하고 웃음이 새어나간다. 그 웃음이 도망이 아니기를, 초대이기를.


밤이, 천천히, 지나간다. 그리고—나는, 어느 순간—사라진다. 아주 짧고 달콤한 단감처럼.

작가의 이전글사는 게 어떻게 맨날 어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