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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암 Sep 09. 2020

더 잊어버리기 전에

곧 태어날 아기가 어느 날 우연히 찾아 주길 바라며 쓰는 뒤늦은 일기

현재 나이 만 30.99살, 

학연, 지연, 혈연 연이란 연은 하나도 없는 낯선 도시에서 생활한 지 약 2년. 아직도 배달의 ○○에 아무것도 뜨지 않는 인구 3만의 시골생활은 여전히 불편하고, 이곳에서 구한 새로운 일자리의 기쁨은 어느새 매일 밀려오는 일 하기 싫음이란 파도에 씻겨나가 버렸다. 

십여 년 전 친구와 놀고만 싶고, 가족에겐 무언가 바라기만 하던 고교 시절의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은 30대의 지금. 아내의 뱃속에 내년 4월에 태어날 아이가 생겼다. 이제 곧 아빠가 된다.

 

늘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익숙한 삶, 그러나 새로 태어날 아이에게만큼은 주는 것이 더 많은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평범한 월급으로 해줄 수 있는 선물은 한정적이기에, 다른 선물을 고민해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우연히 찾은 엄마의 육아수첩과 아빠의 일기장 같이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를 읽고 그때의 모습을 상상하며 지금의 내 가족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 소중한 추억을 내 아이에게도 전해주자 생각했다.


어릴 적 일기를 스스로 쓰는 기특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숙제라는 노동으로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엉뚱하게 남긴 기록이 있었다. 그런 기록이 지금도 남아 있다면 유용한 참고자료가 되었을 것인데, 아쉽게도 사춘기의 내가 부끄러운 흑역사를 스스로 지우고 말았다. 그 덕에 20여 년 전의 뒤늦은 그때의 일기를 써보려 한다. 비록 조금씩 왜곡되고 잊었지만 기억 저 편에 있는 나의 엉뚱한 유년 시절이나, 재미있었던 가족과의 에피소드, 지금은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엄마와 할아버지와의 추억, 다시 돌이킬 수 없는 후회되는 일들, 끝으론 엄마가 된 내 아내와의 연애나 짧은 여행기 따위를 더 잊기 전에 남기려 한다. 


부디, 우연히 발견하는 날 아빠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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