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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암 Apr 27. 2021

첫 기억과 첫 경험

새로운 우리 가족에 대한 첫 기록이 생겼다.

성별 : 남아

출생 시 체중 : 3,200g

출생일 : 2021.04.16

출생 시간 : 12:09

분만 형태 : 제왕절개


출산에 관한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네 살 차이 나는 동생이 태어나던 날이다. 1993년 9월 14일, 고작 만 세 살의 기억이 정확할 수는 없지만, 그날, 캄캄한 밤중에 잠에서 깨어났다. 어찌 병원에 도착했는지는 기억이 없다. 분명 아버지 손에 안겨 차에 태워졌고 병원에 가는 동안 잠을 자고 있었으리라. 칠흑같이 어두운 밖과는 대비되는 환한 병원 복도에서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아버지가 빠른 걸음으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등받이 없는 딱딱한 검은색 병원 밴치에 앉았다가 누웠다가 하며 영문도 모르는 긴 기다림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동생이 태어나는 장면이 기억이 안나는 걸 보니 결말을 못 보고 그 검은색 벤치에서 잠이 들었었나 보다. 그런 단편적인 기억과 걱정과 피곤함 같은 부정적 감정들.

살아가면서 수많은 미디어에서 접한 임신과 출산에 관한 느낌도 내 첫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 생명의 탄생과 기쁨보다는 그 과정에 있는 고통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었고, 그 때문에 멀리 부산에서 출산 준비를 하던 아내가 더 걱정되었다. 우리 부부는 담당 의사의 권유로 출산 예정일인 4월 20일 보다 조금 일찍인 4월 16일 유도분만을 시도하기로 했다.


4월 15일 밤 최근 부쩍 늘어난 회사 일을 겨우 끝내고 3시간 정도 운전해서 오후 11시경에 아내가 입원해 있는 부산에 모 산부인과에 겨우 도착했다. 분만실에는 수많은 검사와 걱정으로 지쳐있는 아내가 누워있었고 '콩콩콩' 하며 빠르게 뛰는 아기 심장소리가 방안에 고요하고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도 확신이 없으면서 아내에겐 그저 '잘할 수 있을 거야' 하며 의례 남편이라면 해줄 법한 말 몇 마디 해주는 것 말고는 크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음날 새벽 6시 촉진제를 투여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서서히 통증을 느끼는 순간 '콩콩콩' 규칙적으로 뛰던 심박 소리가 '삐삐삐'하는 날카로운 기계 경고음으로 바뀌기까지는 불과 몇 초 걸리지 않았다. 간호사들이 몰려왔고, 촉진제 투여를 잠시 멈췄다. 아내는 혹여나 뭔가 잘못되었나 싶어 얼굴이 창백해졌다. 간호사는 자궁 수축으로 인해 아기에게 산소공급이 잘 안되고 있어 심호흡을 통해 아기에게 산소를 원활히 공급해줘야 한다고 했다. 걱정이 섞인 한숨인지 간절한 마음의 심호흡인지 아내가 큰 호흡을 하기 시작한 지 몇 분. 아이 심박은 곧 돌아왔고 간호사가 그만해도 된다고 했지만 아내는 한동안 혼자서 계속 큰 호흡을 내쉬었다.

몇 시간의 간격을 두고 촉진제 투여를 두어 번 더 했다. 하지만 매번 아기의 심박은 급격히 떨어졌고 우리 부부의 마음도 같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기의 자세가 바르지 않아서 자궁이 수축할 때 탯줄이 눌려 산소 공급이 잘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사의 의견이 있었다. 오전 11시경, 3번째 시도 후 의사가 제왕절개를 권했다. 아이와 산모의 체력이 많이 떨어져 무리한 시도는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망설임 없이 아내를 분만실에 두고 데스크로 나와서 수술 동의서나 추가 사용 약물 따위에 대해 서명했다.

그새 아내는 휠체어에 힘없이 실려 분만실을 나왔다. 수술실로 가기 전에 내 등 뒤에서 작은 소리로 인사를 했다. 큰 수술도 아닌데 축 처진 아내의 몸을 보니,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잘하고 오란 말을 똑바로 해주지 못했다. 흐려지는 눈에 흐르는 눈물을 간신히 닦고 이런저런 동의서에 서명을 마쳤다. 그리곤 수술실 앞에서 대기하란 안내를 받았다. 아내에게 눈물 흘리는 모습을 안 보인 줄 알았는데, 아내도 내가 우는 걸 알아차리고 수술실에 가는 길에 어깨가 흔들릴 정도로 흐느꼈다고 나중에 들었다.


그렇게 대기실에 정신없이 앉아 있기를 잠시, 갑자기 내 아이를 보러 오라는 뜬금없는 통지를 들었다. 아내가 수술실 들어간 지 느낌상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하얀 천으로 감싸진 예쁜 아기가 있었다. 너무 어리둥절하고 정신이 없어서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출생 시간, 출생 시 몸무게, 온전한 손발가락 그리고 건강한 아들임을 확인시켜주는 간호사의 이야기에 '네네' 대답만 하며 멀뚱히 서있었다. '아빠, 사진을 찍으 셔야죠!' 하는 말에 정신을 번쩍 차리고 '아? 네!' 하고 딱 두장 찍었다. 참 바보 같은 아빠다. 그러고는 간호사에게서 수술 부위 봉합 후 회복실에서 아내를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잠시 후 안내를 받고 도착한 회복실 한쪽 구석에 미쳐 눈을 뜨지 못한 아내가 호흡기를 달고 누워있었다. 인기척을 느끼고 큰 눈을 껌뻑 껌뻑하며, 힘없이 '자기 왔어? 자기가 네 개로 보여.' 하는 말에 안도감인지 미안함 안지, 기쁨인지 모를 온갖 감정이 뒤섞여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고생했다고,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아기가 예쁘다고' 두서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해댔다.


 시간 후 아내의 수면마취가 어느 정도 깨고 나서 병실로 아내를 옮겨 주었다. 수술 당일 하루는 걷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날 오후 8시에 아기 첫 면회를 나 혼자 하게 되었다. '사진을 잘 찍어와야 해'하며 부탁하는 아내를 병실에 뉘어 두고 면회실로 갔다. 출생 시간, 산모 이름, 아기 몸무게 따위가 적힌 카드를 유리창 너머 간호사에게 보여줬다. 아들과의 두 번째 만남, 아들은 깨끗하게 씻겨진 후 새하얀 천으로 감싸져 있었다. 기쁨과 설렘, 말할 수 없는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이 작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위해 앞으로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며 두 손으론 연신 아내에게 보여줄 사진을 찍고 있었다. '찰칵찰칵' 쉼 없이 찍히는 사진 소리에 문득 동생이 태어나던 그날 밤 아버지가 느꼈을 걱정과 안도와 기쁨이 이랬을까 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올해 33살 21년 4월 16일 12시 09분 나도 아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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