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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암 Jul 28. 2021

기묘한 숫자 100

아이의 백일을 지나며

어린 시절 잠자리에 들기 전, 항상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곤 했다. 하나, 둘, 셋... 일, 이, 삼, 사... 처음 수라는 개념을 접하고 외워야 할 단어로 받아들였던 나에게 '왜 같은걸 다르게 읽는 걸까?' 하는 고충이 있었다. 어린 맘에 단어를 잊지 않으려 자기 전에 꼭 아는 숫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읊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기특하고 착실한 아이였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게으른 사람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숫자 십(10)까지 되뇌며 잠들던 어주 어렸던 어느 날, 갑자기 백(100)이라는 숫자를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십(10) 다음에도 숫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거기에 이십, 삼십, 사십... 스물, 서른, 마흔... 외워야 할 단어(?)가 열 배씩 늘어나는 초유의 사태에 약간의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은 잠자리에 누워 정말로 백까지 두 가지의 읽기 방법으로 세고 잤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천, 만, 억 따위의 더 큰 수를 알기 전까지 머릿속에 제일 큰 숫자는 백 이었었다.


백은 어린 시절 범접할 수 없이 커서 주로 현실과 동떨어지는 상상의 영역에 사용하거나 사용되곤 했다. 예를 들면 '엄마, 나는 언제 어른이 되는 거야?' 하는 다분히 아이 같은 질문에 '백 밤만 자고 일어나면 금방 어른이야' 하는 엄마의 대답부터 정작 '만'이란 숫자의 존재는 모르면서 '우리 집엔 백만 원 있어!' 하며 근거 없이 돈 자랑을 했던 기억이나, '백 살 까지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하며 할머니, 할아버지께 세배한 기억까지. 백은 당장에 떠올릴 수 있는 가장 큰 숫자였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백이란 숫자는 참 터무니없이 적다. 엄마가 말했던 백 밤은 커녕 일만 몇천 몇백 밤을 자고 일어난 지금도 소위 철없는 행동을 하는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어찌 저지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어린 시절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니던 백만 원 보다는 월급이 많지만, 카드비에 보험비에 이것저것 뜯기고 나서 잔고가 백만 원에 가까워질수록 '이번 달도 쉽지 않겠군.' 하는 마음에 식은땀이 흐르고 숨이 막힌다. 게다가 할머니께선 여전히 건강히 잘 계셔서 다음 설날에 혹여나 '백 살까지 건강하세요.' 하며 세배드리면 좀 위험한 인사가 되어 버린다.


아니나 다를까 4월 16일 사랑스러운 아이가 태어나고 백일이라는 시간도 순식간에 지나갔다. 새벽에 잠을 설치면서 '와, 이거 언제 백일의 기적이 오나' 싶었는데 이제는 한번 잠들면 4~5시간은 뚝딱이다. 아이의 몸무게는 출생 시점보다 두배가 훌쩍 넘게 불었고, 이목구비도 더 또렷해지면서 신생아 티를 조금씩 벗어내었다. 입으론 하루에도 수백 번씩 '우우 ~ 아아아 ~' 하며 소리 내는  옹알이 대장이고, 엉덩이를 들썩 거리며 뒤집기를 준비하는 시기가 되었다. 가끔 옹알이를 하면서 '엄마!' 하는 소리를 내어 더 사랑스럽고, 엉덩이는 쉼 없이 들썩이면서도 어찌 뒤집는지 방법을 몰라 끝내 짜증을 내는 아이가 안쓰럽기도 하면서도 그 나름대로 또 귀엽고 또 사랑스럽다. 아내와 내 휴대폰에 찍어놓은 사진은 어찌나 많은지 다 보려면 족히 몇 분은 걸린다. 백일이란 짧은 시간은 정말 금세 흘러갔지만, 그동안 아이의 성장과 아이와 쌓은 추억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리고 밤잠을 설치며 힘겨웠던 기억은 어느새 언제 그랬냐는 듯 기억도 나지 않으려 하고 있다.


백 이란 숫자는 적은 건지 큰 수인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기묘한 숫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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