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부촌'에 산다

압구정 사는 이야기-부자 동네에 산다는 것

by 크림동동

압구정은 ‘오래된 부촌’이다. 이번에는 그 ‘부촌’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지인 중에 딸이 외국인과 결혼한 사람이 있다. 사돈네는 가족 간 정이 유난해서 일 년에도 몇 번씩 한국을 방문했다. 지인 딸은 이 동네 아파트 작은 평수에 월세를 살았는데, 사돈네는 그 아파트를 보고 두 번 놀랐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파트가 너무 낡아서, 그다음으로는 이런 ‘난민촌’처럼 보이는아파트가 수십억 한다는 소리를 듣고 놀랐다는 것이다.


압구정은 부촌이다. 압구정이 부유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위의 지인 사돈네처럼 외국인이 아닌 다음에야 압구정이 부자 동네라는 걸 모를 사람은 별로 없다. 아파트는 낡았지만 구획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주거지와 상업지의 구분이 확실하다. 고급 백화점도 두 개나 있다. 각각의 백화점은 지하철과도 연결되어 생활 편의성도 좋다. 서울 중심부에 위치해서 위치는 가히 최상이라 할 수 있다. 대중교통 면에서만 본다면 서울 어디를 가든 쉽게, 빨리 갈 수 있다. 여기에 ‘한강 조망권’이라는 바꿀 수 없는 프리미엄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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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다고 대놓고 부를 과시하며 다니는 사람은 없다. 동네의 소득 수준을 직접적으로 말해 주는 건 부동산의 매매 광고물밖에 없다. 하지만 부유함의 향기는 동네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길에는 비싼 차가 지나다니고 사람들 옷차림도 깔끔하다. 자세히 보면 명품이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다닌다. 심지어 버스 정류장에조차 해외 명품 광고판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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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런 동네에서 사는 건 어떨까?


처음에는 좋았다. 강남 중에서도 노른자,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아는 부촌에 살게 되었으니 어찌 좋지 않았을까? 매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직후에는 매일이 둥실둥실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아파트만 봐도 배가 불렀다. 주소지에 '압구정'이라고 쓸 때면 어깨가 으쓱하기까지 했다. 드디어 우리도 부자가 되었다. 그런 줄 알았다.


불행히도 그 달콤한 허니문 기간은 짧았다. 처음의 흥분이 가라앉자 곧 현실이 눈에 보였다. 낡아도 보통 낡은 게 아닌 아파트에서 사는 삶이란, 아무리 각오했다고 해도 힘들었다. 매일 어디서 무슨 문제가 일어날 지 몰랐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면 재건축만이 답이었지만, 바로 그 재건축은 요원했다. 기약이 없었다. 차라리 잊고 사는 게 나았다. 하지만 이런 생활 상의 불편보다 더 힘든 게 나타났다. 바로 정신적인 스트레스였다.


처음에 이웃의 존재는 큰 의미가 없었다. 지금껏 한 군데서 오래 산 동네가 없어서 그런지 딱히 '이웃'을 사겨본 일이 없었다. 적응할 만하면 이사가고, 적응할 만하면 이사 가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여기, 압구정에 오면서 비로서 '정착'이란 걸 하게 되었다. 부분적으로는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책 때문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곳에 머물며 뿌리는 내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과도 안면을 트고, 성당도 가고 도서관 자원 봉사도 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주변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나와 그들을 비교하게 되었다. 점차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이웃이 타는 차, 옷차림, 재산 정도... 내가 초라하게 여겨졌다. 자꾸 위축되었다.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생각이 자꾸 그렇게 돌아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아이러니했다. 이웃이 생겨 좋은가 보다 했더니 오히려 그 이웃의 존재에 짓눌리는 격이었다.


한동안은 자격지심과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모든 데에는 시간이 약이다. 서서히, 서서히 나는 나아졌다. 어차피 이곳에서 한해 두해 살 게 아닌데 계속 이렇게 살 수 없었다. 이곳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러려면 주위에 휘둘리지 않아야 했다. 나한테 필요한 것에 집중해야 했다. 이웃의 명품과 재산에 자격지심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아니, 그 이전에 그 이웃은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살아갈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압구정이라는 동네 역시 잘못이 없었다. 압구정은 압구정이었다. 압구정이 지금처럼 부촌이 된 데 무슨 음모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압구정으로 부가 모여들고 이렇게 부자 동네가 된 것이다. 여기서 잘 사느냐 아니면 자격지심에 짓눌려 우울하게 사느냐는 전적으로 나의 몫이었다.


나는 압구정에서 즐겁고 편하게 살기로 했다. 그래서 요즘은 덜 보려고 덜 느끼려고 노력 중이다. 자극을 적게 받고, 대신 나한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려고 한다. 이러니 마치 정신 수양을 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역사를 더듬어보면 시끄러운 속세를 떠나 살려고 했던 곳이 압구정의 시초가 아니었던가? 조선 세조 때의 권세가 한명회는 퇴직 후 갈매기가 노니는 모습을 보고 지내겠다며 이곳 압구정에 정자를 지었다. 시끄러운 세상을 떠나 덜 생각하며 마음 편하게 지내겠다는 한명회의 마음이나 지금 내 마음이나 어쩐지 결이 닿아 있다. 그러니 돌고 돌아 나는 압구정의 뿌리를 건드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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