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스타에서 가장 핫한 도시

쿤밍 가려다 충칭 가게 된 썰

by 크림동동

원래 내가 두 번째 중국 여행지로 찜해 두었던 곳은 쿤밍이었다. 쿤밍은 윈난 성의 성도로 일 년 내내 기후가 온화해서 '꽃의 도시', '봄의 도시'라고 불린다. 중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은퇴하고 살고 싶은 도시', 1위로 꼽히는 도시라고 들었다. 하지만 내가 쿤밍을 마음에 담은 건 이런 것보다는 좀 더 원초적인 데 있었다. 바로 진짜 '운남 국수', 즉 '윈난 국수'를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 가족이 홍콩에 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 나는 중국 국수와 사랑에 빠졌다. 그중 제일은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지점을 찾을 수 있는 '남기국수'와 여기서 말하는 '운남국수'였다. 특히 운남국수는 나의 첫사랑 국수로, 우리나라 갓김치를 연상케 하는 시큼한 채소와 칼칼한 국물, 하얗고 통통한 면이 어우러진 맛은 단박에 내 혀를 사로잡았다. 그렇게 한동안 운남국수에 빠져서 멀리 맛집까지 찾아다니곤 했다. 남기국수와 달리 운남국수는 우리나라에서 하는 곳이 거의 없다. 그래서 제대로 된 운남국수를 본고장에 가서 먹는 게 내 소원이었다. 그 입맛의 기억으로 쿤밍을 두 번째 여행지로 선택했던 것이다. 그렇게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었는데 연말에 아들이 돌아오면서 갑자기 사정이 바뀌었다.


아들은 지난겨울, 마지막 겨울 방학을 맞아 한 달 남짓 집에서 보내기 위해 돌아왔다. 이 기회를 틈타 급히 가족 여행을 가기로 했다. 이왕이면 해외로 가기로 하고 장소를 찾아보았는데 이미 때가 어지간한 곳들은 항공권이며 숙박비가 천정부지로 솟아 있었다. 그래서 나름 저렴하게 가기 위해 상하이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상하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검색할 때마다 숫자가 오르더니 불과 일주일 사이에 처음 가격의 두 배가 되어 버렸다. 잠시 망설이는 사이 도저히 건드릴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보린 숫자 앞에서 눈물을 머금고 상하이를 포기하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상하이를 포기하고 나니 대신할 마땅할 여행지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겨울에 베이징은 내키지가 않았고 언제나 찜해 두었던 쿤밍은 너무 멀었다. 게다가 남편은 자연과 역사를 보고 싶어 했고 아들은 화려하고 떠들썩한 젊은이들의 문화가 있는 곳을 가고 싶어 했다. 이 둘의 조합을 맞출만한 곳이 생각이 나지 않아 머리만 싸매고 끙끙대고 있는데 아들이 말했다.


"그런데 요즘 충칭이 인스타에서 아주 핫한 도시예요."


충칭?


아들이 계속해서 말했다.

"'바닥이 없는 도시'라고 한대요."


바닥이 없는 도시? 어쩐지 흥미가 당겼다.


충칭은 쓰촨 성에 위치한 도시로 인구 3천만의 거대한 직할시다. '충칭(重慶)'이란 이름의 유래는 남송(南宋)의 왕자였던 조돈이 이 지역 왕으로 봉해진 지 한 달 만에 황제로 추대되어 '경사가 겹친다'는 의미에서 지어졌다고 한다. 충칭에는 큰 강 두 개가 지나가는데 우리가 잘 아는 '양쯔강'과 자링강이다. 양쯔강은 6,000km가 넘는 길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장강'이라고도 불린다. 이렇게 강이 두 개나 지나가고 산과 협곡이 깊어 충칭은 예로부터 '산성(山城)과 안개의 도시'로 불렸다. 또 강에 다리가 많이 세워진 관계로 '교량, 즉 다리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충칭이 위치한 쓰촨 성은 중국 내륙 한가운데이기 때문에 여름에는 매우 덥다. 습도까지 높아 '중국 4대 화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이곳에서는 덥고 습한 날씨를 이겨내기 위해 매운 음식이 발달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마라맛의 본고장이 바로 충칭이다. 충칭은 역사가 기원전 이천 년 전까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도시이고 중일 전쟁 때 중국의 임시 수도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상하이를 떠나 마지막으로 자리했던 곳이기도 하다.


충칭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은 이러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충칭은 '더운 곳', '마라 맛의 본고장'이라는 사실 외에는 잘 아는 게 없는 곳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충칭'하면 '덥다'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이런 곳이 왜 난데없이 인스타에서 핫한 걸까? 그리고 '바닥이 없는 도시'라는 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컴퓨터를 열고 검색창에 '충칭'을 치자 이내 내가 모르는 충칭의 모습 사진이 가득 나타났다. 동화 속에서 빠져나온 듯한 온통 불을 환히 밝힌 강변의 마을, 건물을 통과해서 지나가는 전철, 멀쩡한 도로 끝이 깎아지른 건물 옥상이 되는 기묘한 건물들, 그리고 보기에도 매워 보이는 벌건 마라훠궈.

출처: 픽사베이
출처: 언스플래쉬
출처: 픽사베이

재미있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히고 설킨 건물들을 보니 '바닥이 없는 도시'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인스타에서 가장 핫하다'는 말도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붉게 빛나는 건물을 배경으로 오토바이가 달려와 길에 서 있는 여자를 채어가는 영상이 있는데 그게 그렇게 MZ들에게 인기였던 것이다. 배경 도시가 충칭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렇게 하나씩 사진과 영상을 보다 보니 점점 충칭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급기야는 나도 한번 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https://youtube.com/shorts/XBToBWA4cCk?si=5TygiYRtkXCX0PGi

화제의 충칭 오토바이 영상(출처: 유튜브 쇼츠)


내친 김에 항공권을 찾아보니 직항도 있었다. 서울에서 4시간, 딱 적당한 거리였다. 대충 살펴본 결과로는 상하이보다 물가도 싼 것 같았다. 숙박비도 싸고 너무 멀지도 않고, 역사도 깊으면서 젊고 활기찬 곳 같았다. 무엇보다 새로운 곳이었다. 매운 음식 때문에 위가 좀 아프긴 하겠지만 이참에 본고장 마라 맛을 먹어보고도 싶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충칭에 가 보기로. 충동적인 결정이긴 했지만 여행이란 애초 그런 충동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일단 마음을 정하고 나자 새로운 곳에 가 본다는 생각에 흥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연말 여행으로 충칭에 가지는 못했다. 이번에도 마음을 정하기까지 시간을 끈 게 문제였다. 충칭행 비행기와 숙박권 역시 상하이의 뒤를 쫓듯 빠르게 올라가더니 '마음의 마지노선'까지 넘어섰다. 그러니까 충칭 역시 '도저히 이 돈 주고는 못 가겠다'는 수준이 되어버린 거다. 결국 해외 대신 국내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다고 충칭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좀 더 여유있게 날짜를 잡아 제대로 여행 계획을 짜서 다녀오기로 했다. 남편과 둘이서였다. 그때 아들은 학교에 있을 거라 할 수 없었다.


내 계획에 대해 말하자 아들은 조금 아쉬워하는 듯했지만 선선히 알겠다고 했다. 어차피 친구들과의 여행을 더 좋아할 나이이긴 했다. 남편도 선선히 그러자고 했다. 하지만 이어서 말했다.


"패키지로 가야겠지? 충칭은 난이도가 높아."


패키지? 왠 패키지? 내 사전에 패키지 여행이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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