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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동동 Apr 12. 2024

압구정 아파트까지 가게 된 이야기 1

우리 집 스토리

  강남은 떠나는 게 아니다


 나는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부산 사람이다. 

  남편은 서울 사람이다. 

  서울 중에서도 강남 사람이다. 남편하고 결혼하고 나서 나는 강남 사람에게는 ‘강남 부심’이란 게 있다는 걸 알았다. 지금에야 강남 부심이란 말을 좀 쓰지만,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말해서 어이가 없었다. 강남이 비싸고 좋은 동네인 건 알겠지만 ‘부심’을 느낄 것 까지야. (참, ‘부심(負心)’은 “어떠한 것에 대하여 그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네이버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게다가 시댁이 강남 비싼 아파트에 사는 것도 아니고 단지 오래전에 강남으로 이사 와서 토박이로 살고 있는, 강남에 주소지가 있을 뿐인 강남 주민인데 무슨 강남 부심? 지방민인 나로서는 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강남 부심이란 게 무서웠다. 강남 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 살만한 곳은 강남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 한번 발을 들이면 좀처럼 떠나려 하질 않았다. 부동산 이야기를 할 때 서울 사람들은 하는 말이 있다. ‘한번 서울을 떠나면 다신 들어올 수 없다.’ 마찬가지로 강남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한번 강남을 떠나면 두 번 다시 들어올 수 없다.’


  우리가 결혼했을 때 시부모님께서는 아파트를 한 채 해 주셨다. 시댁 옆의 아파트라 이 아파트 주소지도 강남이었다. 언론에서 주로 언급하는 강남 뜨거운 동네는 아니지만, 하여간 이 집 역시 강남 아파트인 건 틀림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아파트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집을 해 주신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지만, 이 아파트는 시댁에서 불과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다. 또 시부모님이 해 주신 거라 마음대로 처분할 수도 없었다. 시부모님에게 이 아파트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파트였다. 이걸 팔고 어디 가서 이만한 아파트를 사겠냐고 했다. 강남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간다니 철없는 소리라고 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파트를 파는 문제에 관해서는 소극적이었다. 효자 남편에게 이 아파트는 집이기 이전에 부모님이 주신 소중한 자산이었다. 그런 자산을 함부로 팔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런 배경을 생각하면 우리가 결국 그 아파트를 팔았다는 건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이건 전적으로 당시 부동산 광풍으로 집값이 폭등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남편은 항상 '부모님이 주신 소중한 아파트'의 위치가 강남 노른자가 아닌 걸 아쉬워했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면서 우리 아파트도 덩달아 오르자 남편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이때야말로 우리 집을 팔고 자금을 더 보태어 강남 중심부로 진입할 때라고 판단한 것이다. 남편이 그렇게 생각하는 줄도 모르고 나는 이참에 강남을 탈출해서 신도시에 가서 사는 걸 꿈꿨다.


  꿈도 야무졌지.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다. 집이 팔렸으니 이사 갈 곳을 정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도 남편은 꾸물거리며 도무지 결정을 내리질 않는 거였다. 주말마다 이곳저곳, 심지어 신도시까지 집을 보러 다녔지만 번번이 빈 손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보는 곳마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퇴짜를 뒀다. 그런데 그때마다 남편이 하는 말이 있었다. "강남 우리 집 팔아 기껏 여기 갈 것 같으면 집 안 팔았다."(동네 비하 아닙니다. 당시 그렇게 말했다는 겁니다.) "아무리 봐도 강남만 못하다." "여기 사느니 강남 작은 데 들어가는 게 낫다." 이쯤 되면 바보라도 알 지경이었다. 남편 마음속이 훤히 보였다. 차라리 속 시원히 말이라도 하면 좋겠는데 저렇게 딴청을 피우며 시간만 잡아먹었다. 


  마음 단단히 먹고 하루 날을 잡았다. 이날만큼은 기어이 남편 속마음을 들을 셈이었다. 남편에게 진짜 가고 싶은 곳은 어디인지 말해 보라라고 닦달했다. 처음엔 요리조리 피하던 남편도 내가 물러서지 않고 계속 물으니 그제야 "실은 강남으로 갔으면 좋겠어."라고 실토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막상 들으니 기가 막혔다. 하지만 내가 계속 버틴다고 해서 무슨 수가 있나? 이사는 혼자 하는 게 아니었다. 어차피 남편과 타협하지 않으면 내가 고집부려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도 사는 내내 불편할 거였다. 차라리 내가 생각을 바꾸어 남편과 뜻을 맞추는 게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사방에서 부동산으로 돈 벌었다고 난리인데, 나도 남편을 말리지만 말고 차라리 같이 한 번 제대로 해 보는 게 어떨까? 아예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집 판 돈이 있으니 여기에 여유 자금 더하면 남편 말처럼 지금이 기회일 수도 있어. 여유 자금이 없어 힘들겠지만 여기서 더 나이 들면 아예 허리띠 졸라맬 엄두도 못 낼지 몰라. 어쩌면 잘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계산도 있었다. '남편은 생각만 많고 실행력은 부족한 타입이니 내가 나서면 어쩌면 좋은 보완이 될 거야.' 생각이 이렇게 정리되자 결심이 섰다. 그래, 10년, 딱 10년이다! 60이 될 때까지 딱 10년만 눈 딱 감고 부동산으로 몸테크를 해 보자! 


  그렇게 해서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게 인생 마지막 기회가 될지, 아니면 무모한 결정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도는 해 보기로 했다. 

(출처: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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