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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동동 May 10. 2024

발로 걸으며 듣는 남한산성 이야기

영화 '남한산성'이 이야기해 주지 않은 역사

(지난 4월 27일 답사의 기록입니다)


가끔 시간 맞을 때 참여하게 되는 문화지평의 역사 답사.


매번 느끼지만 문화지평에서 주최하는 답사 프로그램은 정말 명품이다. 해설 내용도 그렇고 재미도 있으며 더욱이 무료에다가 참여 신청을 미리 해야 한다는 것 이외에 딱히 다른 의무 혹은 제약 사항이 없다. 어쩜 이런 좋은 곳을 알게 되었는지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


이번 4월 답사 목적지는 남한산성이었다.

봄이라서 봄나들이를 겸한 듯 대표님의 사려 깊은, 아니 안목 있는 장소 선정이다.


오늘의 답사 해설자는 배건욱 님이었다. 해박한 지식은 물론이고 본업은 전기기술자라는 놀라운 배경까지 대단한 분이다. 문화지평 답사는 다양한 해설자님들이 수고해 주셔서 각각의 개성을 경험할 수 있다. 다들 내공이 대단하셔서 어느 분이 더 낫다 찍을 수 없을 정도로 이 분야로는 고수들이시다. 이번에는 어떤 분이 해설을 맡으실지 기대해 보는 것도 문화지평 답사의 즐거움 중 하나다.


답사 시작 전에 간략이 남한산성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남한산성은 누구나 다 아는 병자호란의 중심지이다. 인조가 여기서 57일간 농성을 했고, 끝내 청나라에 항복하고 청 황제 앞에서 세 번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으로 끝맺었던 곳. 하지만 실제 역사는 이보다 훨씬 더 아프고 치욕적이고 부끄러운 사실들을 내포하고 있다. 소설과 영화가 미화시켜 둔 매끄러운 비단 결 밑의 자글자글한 시대의 주름을 들쳐보는 것이 후대 사람들의 일이다. 이날 답사는 바로 그런 시간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답사를 떠나보자.






지하철 8호선 산성역에 모여 9-1 버스(주말만 운행. 배차 간격이 길다. 이날은 아주 아~~주 많이 기다렸다)를 타고 남한산성 터널 입구에서 내렸다. 


가면 비석군이 있다. 


남한산성은 과거 국가 유사시 강화도와 더불어 조정의 공식 피난처, ‘유수’였다고 한다. 그만큼 남한산성이 중요한 곳이었기에 정계 주요 인사들이 거쳐 갔는데, 그들에 대한 기념비라고 한다. 오늘날로 치면 '감사패' 같은 모양. 비석 주인 중에는 흥선대원군, 조두순을 비롯한 쟁쟁한 인물들이 꽤 많아 놀랐다. 






저 멀리 보이는 남문.

오늘 답사의 실질적인 출발점인 셈이다.

망루에 올라가면 '지화문(至和門)'이라고 쓰인 현판이 양쪽으로 걸려 있다. 



남한산성 남문(지화문 至和門)


'지화문(至和門)'이라고 쓰여 있는 현판이 걸려 있다. 뒤쪽에도 똑같은 현판이 있다. 


남문 망루에 올랐다. 놀랍게도 망루 성벽에 올려놓은 벽돌에까지 수많은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렇게까지 한 사람들의 정성(?)도 대단하지만,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데도 관리가 생각보다 철저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남문을 지나 계속 걸어간다.

오르막이 꽤 가팔라서 서로 말도 줄어든다.

긴 계단을 오르고 한숨 돌릴 때마다 역사 이야기는 덤.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역사를 담고 있다. 

한강변은 삼한 시대 때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비옥한 곳이다. 그만큼 담고 있는 이야기가 많다. 



4월인데도 날이 더워 다들 반팔 차림이다.
멀리 롯데타워가 보인다. 공기가 뿌연 것이 대기질이 좋은 날은 아니었다.


멀리 보니 대기가 뿌옇다. 가까이서는 잘 몰랐는데, 공기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이날 답사 중 흥미로웠던 것은 '암문(暗門)'의 존재였다.

쪽문, 더 간단하게는 비밀문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내부에서는 몰래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위치에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크기의 문이 있었다.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이 없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곳이다. 영화 '남한산성'에서도 암문을 이용하는 장면들이 나온다고 하는데, 다시 한번 찾아봐야겠다.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크기의 암문((暗門)



다시 한번 오르막을 지나 드디어 수어장대에 도착했다. 

남한산성의 중심과 같은 곳.


조선의 군사 체계는 숙종 때 재정비되어 5 군영제가 된다. 그중 수어청은 한성과 도성부 남측의 방어를 담당했다. 수어장대는 그 수어청의 장수가 군사를 지휘하던 시설이다. 수원 화성 팔달산에도 수어장대가 있는데, 이는 정조가 화성으로 천도할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설치된 까닭이다. 


수어장대 들어가는 문
수어장대.


이날 답사 덕분에 알게 된 의외의 사실.

남한산성에는 의외로 이승만 대통령의 흔적들이 많다.


남한산성 자체가 이승만 대통령이 지정한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이다.

남한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이승만의 호를 따서 '우남'로라고 지어졌다.

아래 나무는 이승만 대통령 기념식수이고, 그 밑의 둥근 탁자 같은 것은 이승만 대통령 팔순 기념 송수탑(頌壽塔) 터라고 한다. 과거에는 실제로 탑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원탁만 남았다.


한국전쟁이 휴전되지 마자 국가 재건보다는 당시 정치적 경쟁자, 신익희의 고향이자 정치적 텃밭인 광주(당시에 이곳은 광주였다)에 자신의 세력을 새기기 위해 움직인 전 대통령의 행보는 씁쓸하기만 했다. 

이승만 대통령 80세 송수탑 터
이승만 전 대통령이 심은 기념식수






이제 하산길.

허여 허여 내려간다. 날은 덥고 다들 슬슬 다리도 아프고 지친 표정이다.

내가 사진 찍는 횟수도 줄어든다.

하지만 해설사 선생님은 지치지 않으셨다. 군데군데 풍경을 보며 지형 따라 과거 현대 이야기를 계속 풀어놓으신다. 그 덕에 따가운 봄볕 아래에서도 걸음을 계속할 수 있었다. 

내려가는 길


암문을 하나 더 만난다. 이번에는 옹성을 끼고 있는 연주봉 옹성 암문이다. 

두 번째 만난 암문
암문을 지나 옹성에서 바라본 풍경. 수어장대 쪽 숲은 소나무 숲이 울창하다. 


옹성에 올라와 수어장대 쪽을 바라보면, 산의 전체 모습이 보인다. 


남한산성이 위치한 산은 청량산이지만, 멀리는 남한산까지 걸쳐 있다.


영화, '남한산성'에 보면 청 황제가 포를 끌고 와서 인조와 신하들이 농성하고 있는 산성으로 포를 쏘는 장면이 있다. 이때 청나라 군이 포를 설치한 곳이 남한산 벌봉이다. 당시 청나라군의 포는 홍이포로 지금 봐도 깜짝 놀랄 정도로 사정거리가 길었다. 이 포격 후 인조는 결국 산성을 나와 청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하게 된다.


이때 청나라와 싸울 것을 주장하던 김상헌 등은 영화에서는 자결한 걸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죽지 않았다. 안동 김씨 출신으로 명문가 출신인 김상헌은 인조가 항복한 후 청나라가 전쟁을 주장한 사람들의 책임을 묻자 사직해 버린다. 년 후 청나라에서 다시 김상헌 등의 이름을 거명했을 때에야 청나라로 끌려가게 된다. 이때 지은 시가 그 유명한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이다.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사진을 보면 나무 색깔들이 틀린 것을 알 수 있다. 소나무는 더 짙은 녹색으로 구별이 되는데 주로 수어장대 부근에 몰려 있다. 소나무는 원래 '왕의 나무'라고 하여 궁 주변에 심었다고 한다. 그래서 수어장대 주변뿐만 아니라 산을 내려가면 행궁 주변 숲도 모두 소나무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드디어 도착한 북문.


옛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는 남문과 달리 북문은 완전히 새로 지은 모습이다.

북문


북문까지 와서 오늘의 답사는 끝. 

이제는 맛있게 점심 먹을 일만 남았다.




맛집 전문가이신 문화지평 대표님이 안내한 곳은 8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오복손두부".


손두부 맛은 말할 것도 없지만, 무엇보다 두부전골 국물 맛이 진했다. 누구를 데리고 와도 절대 욕먹지 않을 것 같은 맛. 반찬은 그럭저럭 평타였고, 도토리묵은 양이 좀 적은 듯했지만, 메인인 두부전골이 훌륭하다면 된 것 아닐까? 다시 또 오고 싶은 식당이었다. 


명품 두부전골. 국물 맛이 정말 진했다.



이렇게 봄나들이를 겸한 남한산성 답사가 마무리되었다.


내려오는 길 역시 인파가 몰려 30분 이상 버스를 기다려야 했지만, 그런 사소한 불편함조차 멋진 하루를 더 기억에 남게 하는 에피소드일 뿐이었다. 벌써 다음 답사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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