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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동동 Jun 25. 2024

대출이 안돼요

처음 대부업체를 이용해 본 경


  드디어 한강변 아파트의 주인이 되었다!

  가계약금을 집주인에게 송금하고 부동산을 나왔을 때, 눈앞에 우리가 이제 우리 것이 될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검은 하늘 아래 환한 달빛과 그보다 더 눈부신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아파트 건물들이 서 있었다. ‘이제 우리가 저 아파트 주인이다. 우리도...압구정 주민이다.’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고 있는데 남편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아파트 단지에 한번 들어가 볼까? 우리가 산 집을 밖에서라도 봐야지.” 나는 웃으면서 피곤하다고, 앞으로 실컷 볼 텐데 서두를 필요 없지 않냐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우리와 압구정 아파트를 산 이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꿈같은 시간은 길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아파트를 샀는지 알게 되었다.      





  대출이 안 된다!’


  갑자기 대출 이야기라니? 여기에는 사정이 있었다. 충동적으로 매수를 결정하는 바람에 우리는 충분한 대비를 하지 못했다. 즉, 우리의 자금 계획에 차질이 생겼던 것이다. 우선 우리가 매수한 아파트는 애당초 염두에 두었던 예산을 상당히 초과했다. 집값이 늘어나니 당연히 그에 수반되는 각종 세금과 부동산 수수료도 늘어났다. 이것도 부담이었지만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앞서 우리가 매도한 아파트의 매수인은 역시 자신의 기존 아파트 처분에 얽힌 사정으로 잔금을 일시불이 아닌 몇 차례에 걸쳐 내기를 희망했었다. 당시만 해도 이렇게 빨리, 그것도 예산을 훌쩍 초과하는 아파트를 살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우리는 별생각 없이 거기에 동의했었다. 결과적으로 그 일이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즉, 우리의 매수 잔금일 이후 2-3달 후에 매도 잔금이 들어오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기간은 고작 2-3 달이었고, 집값 대비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기간이나 액수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루가 되었던, 10년이 되었던 10원이라도 정해진 돈을 채울 수 없다면 계약은 파기되는 거였다. 


  문제는 우리가 은행에서 대출을 전혀 받을 수 없다는 데 있었다. 2020년 당시 압구정동은 투기과열지구였고, 더욱이 우리 아파트는 초고가 부동산으로 분류되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아예 대출 심사 대상도 될 수 없었다. 다행히 남편이 직장인 신용 대출을 좀 받을 수 있었다. 그게 우리가 은행에서 빌릴 수 있었던 유일한 돈이었다. 남편의 대출로 숨통이 조금 트였지만 나머지 금액이 문제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변에도 물어봤지만 역시나 소용없었다.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하면 2-3달만 쓰고 돌려주겠다는 말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게 들릴까? 그래서 답답하긴 해도 조심스럽게 거절한 지인들이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쨌거나 돈을 구해야 했다. 





  이 상황을 해결한 곳은 부동산이었다. 가계약금을 보내기 전 우리가 자금이 너무 빠듯하다는 이유로 망설이자, 부동산은 ‘그런 이유로 집을 못 산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다들 그런 상황에서 집을 사는 거다. 대출받는 방법이 다 있다. 집을 사겠다면 연결시켜 주겠다’고 한 바 있었다. 약속대로 계약금을 보낸 후 우리가 대출에 대해 묻자 부동산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더니 한 대부업체를 소개해 주었다. 



  대부업체? 사설 대부업체? 사채? 나는 ‘대부업체’라는 말에 얼어붙었다. 사채를 쓴다는 건 생각만 해도 무서웠다. 부동산과 남편은 내가 심하게 거부 반응을 보이자, ‘여기는 허가를 받은 정식 대부업체다, 내가 생각하는 불법 업체와는 엄연히 다른 곳이다’라며 열심히 설명했다. 뉴스에 나오는 불법 대부업체는 연 20%가 넘는 고금리를 요구하지만, 부동산이 소개해 준 이 곳은 그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높은 이율은 요구하지도 않는다는 거였다. 실제 그 업체가 우리에게 제시한 대출 이율은 연 8%로 내가 공포에 떨었던 거에 비해서는 상당히 ‘합리적’이긴 했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사채’라는 단어가 즉각적으로 연상시키는 ‘빚 독촉’, ‘조폭’과 같은 이미지를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대부업체를 이용하지 않기 위해 은행이며 지인이며 여기저기 알아봤던 거였다. 하지만 이제는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래서 2020년 여름의 어느 날, 우리는 부동산이 소개해 준 대부업체로 찾아갔다. 사무실은 강남역 인근에 있었다. 대부업체 사장은 겉보기에는 평범하고 인상 좋은 중년 아저씨 같았다. 그는 돈을 이렇게 조금 빌리는 경우는 처음 본다며 “요즘 젊은 사람들이 엄청 돈을 빌리러 엄청 와요. 그런데 다들 액수가 장난이 아니야. 10억은 많은 축도 아니에요. 몇십 억씩 빌린다니까. 그렇게 해서 부동산 갭투자하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조금 빌리는 건 처음 보네.”라고 웃으며 말했다. 





 남편과 나는 할 말이 없어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빌리는 액수는 대부업체 사장이나 당시 부동산 열풍에 올라탄 사람들의 눈에는 하찮은 정도겠지만 우리에게는 큰돈이었다. 남편과 나는 어떻게든 이런 높은 금리의 이자는 피하고 싶었다. 단지 정말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그리고 분명히 갚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단기간만 쓰자는 마음에서 어쩔 수 없이 빌리는 돈이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이율로 우리가 빌린 것보다 몇 배나 되는 액수를 턱턱 빌려 부동산을 사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강심장의 소유자들인 걸까? 아니면 우리가 너무 순진한 걸까? 


  압구정 아파트를 사면서 점점 지금껏 알지 못하던 요지경 속의 세상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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