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양가감정에 대한 솔직한 고백
작년 6월 건강하시던 시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3일 만에 돌아가셨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시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친정아버지가 나한테 말씀하셨다. "이런 자리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나는 사돈이 너무 부럽다." 나는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너무 잘 알았다. 아버지의 노년은 길고도 지루하게 시들어가는 과정이다. 눈물샘이 막혀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나오는 데다 귀가 어두워지셔서 보청기 없이는 제대로 듣지도 못하신다. 소화가 되지 않아 먹는 양도 형편없이 줄었을 뿐만 아니라 불면증 때문에 약까지 처방받아 드시지만 잠을 못 이루실 때가 많다. 당신 스스로도 말씀하시듯이 한마디로 '삶의 질이 바닥'이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젊은 시절 온갖 운동을 즐기시던 분이 지금은 척추 협착증으로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질질 끌며 다니시는 모습을 볼 때다.
하지만 더 큰 걱정은 따로 있다. 노년의 문턱에서 사업 부도와 사기를 당하신 친정 부모님은 경제적 능력이 없다. 부모님의 노후와 병원비는 오롯이 나를 비롯한 두 동생들, 우리 삼 남매의 몫이다. 처음에는 띄엄띄엄이던 두 분의 병원 방문이 이제는 일상이 되다시피 하면서 비싼 검사에 때로는 수술비 청구서까지 점점 허리가 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내색하기도 쉽지 않다. '효'라는 정서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우리나라 문화에서 부모 봉양은 자식의 당연한 의무이다. 겉으로 힘듦을 드러내는 순간 자식 된 도리를 저버렸다고 손가락질 받게 된다.
나이 든 부모를 돌볼 때 가장 힘든 점은 '사회의 당연함'과 '내 안의 실제 감정'을 다스리는 일이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를 사랑한다고 세상은 생각한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는 않다. 아니, 그렇지 않은 경우가 사실 더 많다. 하지만 우리 감정이 사회의 '명제'에 맞지 않을 때 우리는 죄책감을 느낀다. '나는 나쁜 자식인 걸까?'
다행히 돌봄 노동에 대한 인식은 최근 조금 개선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예전보다 조금은 돌봄의 힘듦에 대해 이야기하기 편해진 것은 사실이다. 사회적 차원의 지원이 조금 나아졌다 하더라도 돌봄의 주요한 부담은 자식들에게 돌아간다.
<어머니를 돌보다>는 미국 작가 린 틸먼은 자신의 어머니를 11년 동안 돌보며 그동안 느낀 감정을 기록한 책이다. 이 글은 '기록'이다. 자서전 형식을 띠고 있지만 건조하고 객관적이다. 보통 이런 글에서는 기대하기 마련인, '어머니에 대한 사랑', '가족 간의 화해', 그리고 '이별에 대한 슬픔' 등은 여기서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작가가 어머니를 돌보며 매 순간 느낀 감정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 그것은 때로는 슬픔이고, 놀라움이고, 혼란과 분노이며, 죄책감이기도 했다. 작가는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미워하지도 않았다. 작가의 어머니 역시 작가와 정서적으로 가깝지 않았다. 사실 많은 부모 자식 관계가 그러하다. 지극히 현실적인 관계이다. 그런 부모가 늙고 병들었을 때 자식은 어떠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걸까? 물론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느끼는 바는 틀리겠지만, 작가는 자신의 경우를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작가가 느꼈던 것은 '사랑, 의무, 양가감정'이다. 이 책의 부제가 '사랑, 의무, 죽음, 그리고 양가감정에 대하여'인 것은 그런 까닭이다.
이 책은 '부모님 돌봄'이라는 길고 힘든 길에 들어선 이들이 차마 내색하지 못했던 지점을 건드린다. 그럼으로써 읽는 이들은 자신들의 죄책감과 부채감에서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바로 작가가 원했던 바이다.
마지막으로 옮긴 이의 말을 첨언한다.
“여전히 부모 부양 문제를 ‘효’와 ‘자식 된 도리’로 여기고 강조하는 우리 사회에서 부모를 돌보는 일에 대한 작가의 관점은 상당히 비정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틸먼은 자신이 몸소 경험하고 깨달은 진실을 한 치의 타협 없이 솔직하게 서술한다. 이 책을 통해 돌봄에 대한 사회적 통념에 문제의식을 느껴본(느낄) 사람들은 죄의식과 부채의식으로부터 다소나마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p.255)
“내 목표는 당신에게 도움이 되거나 정보를 제공하거나 위로를 건네거나 당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내가 이 상황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다.
이 일을 완벽하게 제대로 해내기란 불가능하다.”(p.256)
“나는 좋은 딸 역할을 연기했지만 거기에는 내 진심이 담겨 있지 않았고
대신 내 양심은 담겨 있었다.”(p.130)
“나는 어머니를 몰랐다.”(p.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