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두웠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내 글이 브런치 메인과 다음 메인에 떴다. 브런치 조회수가 급격히 늘어나길래 용기를 내서 오마이뉴스에도 기사를 기고했는데, 그것도 오름 등급으로 실렸다. 이런 일이 나한테도 일어나는구나! 하루 종일 브런치 앱을 들락날락거리며 조회수를 확인했다. 자꾸 올라가는 숫자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하지만 지난번 브런치 메인에 올라갔을 적과 마찬가지다. 여전히 자랑할 사람이 없다. 브런치 메인뿐만이 아니라 다음 메인에도 올라가고, 오마이뉴스에도 실리고…. 개인적으로 이 정도면…. 서울대에 합격한 거에 비할 만한 경사다. 그런데 아무한테 말도 못하고 끙끙 앓는 꼴이라니…. 누구한테 말하지?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성당 성경 공부반이 여름방학을 마치고 다시 시작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옳지! 그 자리에서라도 이야기해야겠다.’ 요즘 성당에 오시는 분들이 대체로 그렇듯 우리 성경 공부반 연령대도 높은 편이어서 아마 다들 브런치를 모르시겠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제 글이요, 좋은 데 실렸어요!’ 아, 유치했다. 하지만 뭐 어때? 가끔은 유치해질 수도 있는 거다.
제 글이요, 좋은 데 실렸어요!
“헬레나(나의 세례명이다), 방학 어떻게 지냈어요?”
마침내 봉사자님(성경 공부반을 이끄는 분에 대한 호칭)이 물으셨다. 기다리던 질문이었다. 때가 왔다!
“별 건 아닌데요. 사실은, 제가 요즘 초등학교 우유 알바를 하거든요. 거기에 대해 쓴 글이 브런치라고 메인에 올랐어요. 다음 메인에도 떴구요.”
그다음 자연스럽게 이어질 ‘브런치? 브런치가 뭐에요?’라는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봉사자님이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
“브런치 메인에 떴어요? 와 대단하다. 글 제목이 뭔데?”
놀란 건 나였다.
“브런치를 아세요?”
봉사자님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이 대답하셨다.
“브런치, 알지. 그럼.”
“우와, 제 주변에 브런치 아는 사람, 처음 봐요. 다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브런치가 뭐냐고 물어보는데.”
“내가 브런치를 왜 몰라? 우리 딸도 거기에 글 써요. 내가 성당에 우리 딸 글 좀 보라고 홍보를 얼마나 했는데.”
맞은편에 앉은 우리 성경 공부반 제일 나이 많은 언니인 루시아 자매님이 웃으면서 “봉사자님 때문에 우리, 브런치 다 알아.”라고 말씀하셨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딱이었다. 성당에서 브런치 독자들을 만날 줄이야. 그것도 기대하지도 않던 연령대의 독자였다. 봉사자님은 60대, 루시아 자매님은 70대다.
“글 제목이 뭐야? 빨랑 말해 봐요.” 봉사자님이 재촉했다.
“별거 아니에요. 굳이 읽으실 것까지 없어요.”
조금 전까지는 내가 브런치 메인에 뜬 걸 자랑하고 싶어 온몸이 들썩거렸으면서도 아는 사람이 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쑥스러워졌다. 자꾸 물어도 내가 좀처럼 제목을 가르쳐 주지 않자 봉사자님이 말했다.
“그런다고 뭐 못 읽나? 검색하면 되지? 아까 우유 알바에 대해 쓴 거라고 했죠? 찾아봐야지.” 하시더니 이제 성경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고는 그 일은 그걸로 끝난 줄 알았다. 봉사자님도 잊어버리시겠지 했다.
성경 공부가 끝나고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성당 성경 공부방 단체 카톡이 울렸다. 봉사자님이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헬레나, 작가명 가르쳐 주세요. 괜히 찾느라 눈알 빠지겠음. 시간 낭비 넘 했음. 읽을 거 태산인디...”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이 나왔다. 봉사자님 얼굴과 목소리가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말투와 내용을 보니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얼른 썼다.
“앗, 죄송해요. ‘크림동동’입니다.”
조금 있다가 단체방 카톡 알림이 다시 울렸다.
“자기 글 다 읽고 좋아요와 댓글 남기고 구독알림도 했음.” 하시더니 이어서 “오늘 안 온 분들, 헬레나 브런치 작가임. 작가명 ‘크림동동.’ 구독과 좋아요 눌러주세요.”라고 단톡방에 홍보까지 해 주셨다. 화끈하셨다.
내가 “넘 감사합니다. 앞으론 잊고 사셔도 괜찮습니다.” 라고 소심하게 굴었더니 “작가가 그리 조회수와 구독자 욕심이 없음 안됨” 하며 일침까지 가해 주셨다. 단톡방에는 곧 성경공부팀원들의 ‘구독 했어요’ 톡이 계속 올라왔다. 봉사자님 덕분만은 아니겠지만 그 이후로 구독자 수가 급등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구독자 수는 50명이 넘었다.
작가가 그리 조회수와 구독자 욕심이 없음 안됨
봉사자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