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장 강렬했던 책
사실 이 책을 다 읽은 지는 좀 되었다.
그래도 아직 후기를 남기지 못하고 있었던 이유는, 이 책의 감상을 표현할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때론 어떤 경험은 너무 강력해서 표현하기가 불가능할 때가 있다.
록산 게이의 <헝거: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은 강렬한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눈을 떼지 못했다.
저자가 겪은 경험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 운명적인 사건이 일어난 이후 자신의 몸을 다루는 방식은 더욱 충격적이고 슬펐다. 먹고 먹고 또 먹는 그녀의 내면에는 자신의 몸을 거대하게 키워 요새로 만들고 그 속에 숨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하는 소녀가 있었다.
12살에 집단 강간을 당한 저자는 그 충격으로 살이 찌우기 시작해 20대 후반에는 261킬로그램이 된다. 키도 190센티미터에 달해 저자의 표현대로 '거대'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몸속에서 편안하지 않다.
그 결과 어른이 된 저자에게는 두 개의 분열된 자아가 존재하게 된다.
록산 게이가 전달하는 비만의 몸이 직면하는 불편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단순히 입을 옷이 없다는 정도의 차원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이 그녀에게는 목숨을 걸 정도로 힘든 일이 된다.
가령 의자 문제가 있다.
'비행기로 여행하면 좌석에 엉덩이가 맞지 않는다.
강연을 갔는데 의자에 엉덩이와 허벅지가 끼인다.
식당 의자가 그녀의 엉덩이 크기와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식사 내내 스쿼트 자세를 취한다.'
비만은 의지박약과 실패의 동의어다.
여기에 여성이라는 조건이 붙으면 사회의 시선은 더욱 편협해진다.
빅 사이즈 옷이 남성용에 비해 여성용이 더욱 찾기 힘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행히 저자 록산 게이에게는 훌륭한 무기가 있다.
그녀는 글을 쓴다.
뛰어난 재능으로 소설, 에세이를 여러 편 쓰고 대학에서 가르치기까지 하고 있는 그녀가 자신의 몸에 대해서만은 솔직하고 담담하게 전달한다. 그 결과 이 책에는 그 어떤 감성적인 외침보다 더욱 묵직하고 강렬한 울림이 있다. 스스로 몸으로 겪은 진실이 주는 무게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내 몸이 받았던 시선, 내가 내 몸을 보는 눈, 여성으로서의 나의 몸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내 몸이 내 것만이 아니었음을.
내가 내 몸을 쳐다보는 시선 속에서도 사회의 눈이 있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