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아빠존이 경험한 육아휴직제도
대한민국의 2023년 출산율이 0.72라는 뉴스를 봤습니다.
뭔가 무섭습니다. 숫자가 1 보다 작다는 것이 왠지 무섭습니다.
뉴스에서는 인구가 줄어들면 앞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거라고 합니다.
어랏? 또 다른 뉴스는 AI 때문에 일자리가 많이 줄어들 거라고 합니다.
혼란스럽습니다. 사람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해야 할지 걱정 안 해도 될지 혼란스럽습니다.
똑똑한 분들이 두 영향을 합쳐서 분석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팩트는 인구, 특히 젊은 세대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 많은 곳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람 북적였던 추억이 깃든 명동, 동대문, 신촌, 홍대, 대학로가 텅 빈다거나
젊은이들 대신 할매, 할배들로 붐빈다 생각하니 조금 서운하긴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사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져 갑니다.
조국을 지옥(헬조선)이라 부르고, 출산율이 바닥을 친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이 힘들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출산장려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광고 아님, 정부 측 스파이 아님)
몰랐는데 아이를 기르다 보니 아이를 위한 제도적 지원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산부인과 비용 등을 보조해 주는 것은 물론, 어린이집 비용 보조, 무료급식에
학교 수업을 위한 준비물 무상제공 등 꽤 많습니다.
문방구에서 물체주머니며 과학상자, 찰흙, 지점토 등을 매번 준비하고, 안 가져오면 손바닥을 찰싹찰싹
맞았던 저희 때를 떠올리면 또 할배처럼 '세상 좋아졌다'는 말이 자동으로 나옵니다.
여하튼 그 출산장려 정책 중 육아휴직도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초등학교 3학년 미만 자녀를 둔 엄마나 아빠가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자녀당 엄마 아빠 각각 최대 1년간 육아휴직을 법적으로 보장받는 제도입니다.
돈도 줍니다.(야호!)
매달 150만 원입니다!! (휴직기간 매달 125만 원씩, 복직하고 6개월 후에 25만 원씩 모인 것을 받습니다)
고용보험 홈페이지에 가서 매달 신청하는 게 조금 귀찮지만,
10분 투자로 125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야호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법만 믿고 덜렁 육아휴직을 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직장문제)
회사 상황도 조금 살피고, 규정이나 제도도 확인해야 합니다. 물론 눈치도 좀 봐야 합니다.
당연한 겁니다. 나만 살겠다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너도 살고 나도 살아야죠.
복직 후 있을지 모르는 불이익도 생각해야 합니다.
정부는 불이익을 주지 말라고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역차별 이슈가 있습니다.
휴직으로 회사에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은 사람과 정상적으로 일한 사람이 똑같은 대접을 받는 것이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경제적 문제)
게다가 125만 원으로는 식료품, 집세(혹은 대출이자), 공과금 등 감당이 안됩니다.
육아휴직. 정말 큰 결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저질렀습니다.
육아 상황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했습니다. 당했습니다, 여러분!! (2화 참고)
돈도 문제였는데, 그냥 눈 딱 감고 1년에 1억 쓰자는 마음으로 했습니다.
돈이 많냐고요? 마이너스라고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이너스 빼기 마이너스는 마이너스라 정신적 타격이 없습니다.(경제적 타격은 얼얼합니다)
다만 마음속 리스크를 크게 잡아놔야 그 시간을 소중하게 쓸 거라는 생각에서 1억으로 잡았더랬죠.
(본론) 육아휴직 저지른 남자(Sanai)의 경험담
이제부터가 제가 느낀 경험담입니다.
육아휴직 전까지 정말 고민도 많고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승진이며, 돈이며 생각할수록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하지만 거기서 욕심 한 커플을 벗겨내 보니 다른 것이 보입니다.
2년간 어린 자녀들을 기르는 것이 정말 내 인생에 그렇게 마이너스일까?
내 삶에서 중요한 건 뭐지? 난 뭐 때문에 돈 벌지?
깊게 생각해 봅니다. 더 깊게 생각해 봅니다.
나 잘 살았소. 하고 자랑할 것이, 뿌듯해할 것이 뭐였으면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저는 2년간 아이들과 정서적 유대를 갖고, 추억을 쌓고, 아빠라는 따뜻한 감정을 남기는 경험이
결코 마이너스가 아니라고 결론지었습니다.
나중에 애들이 '돈이나 더 벌지' 라며 딴소리하면 어쩌나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빠 집에 있어서 좋지?'라고 매일 물으며 세뇌라도 시켜야겠습니다.
나이 60에 경제적으로 넉넉해진들 장성한 자녀들과 유대를 시작하기가 쉬울까 싶습니다.
오히려 그때가 되면 아빠가 아무리 매달린다 한들 스마트폰보다 못한 아빠를 상대해주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그때 내밀 2년 치 마일리지를 쌓은 덕분입니다.
그때 가서 심심하면 저는 "너 아빠가 2년 동안 놀아줬으니까 너도 놀아줘!"라며 브루마블을 내밀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서울을 먼저 사서 꼭 이길 겁니다.)
이곳 필리핀.
자주 가는 스타벅스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임산부 직원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아이 낳고 3주 만에 재출근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회복력에도 놀랐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 놀랐습니다.
이곳 현지 친구들은 우리의 육아 관련 제도에 놀라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한 것이 다른 곳에서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매번 좋은 나라의 제도들과 비교하며 투덜댔는데, 시선을 돌려보니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들이었습니다.
'다시 보니 선녀 같다'던 주성치 영화의 밈이 떠오릅니다.
자녀당 육아휴직 1년이 가능한 대한민국.
밖에서 보니 좋은 나라입니다.
제도도, 사람들 역량도, 의식도 좋습니다.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화내고 투덜대봤자 제 마음에 상처가 날 뿐입니다.
욕심을 한 커플 걷어내고 제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얼까를 생각하니,
마음도 조금 여유로워지고, 감사한 마음도 조금 우러나옵니다.
(결론) 저는 육아휴직하길 정말 잘한 것 같습니다.
(주의 : 광고 아님. 정부 측 스파이 아님. 제 경험담이니 다른 사람 경험과 다를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