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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행복은 (어디에?)

by 레드뷔 Feb 28. 2025

A그룹 회장과 해외 출장에서 돌아온 호진은 오늘에야 이삿짐을 풀 수 있었다. 회사 근처 오피스텔로 이사 온 지 3주 만이었다.           



******          



“동훈이는 뭐래?”

“나랑 살겠대요.”

“그래. 집은 당신 앞으로 해. 개도 있고 하니까.”

“맥스, 아니 춘섭이, 얘는 왜 이름을 바꿔서 헷갈리게... 춘섭이 때문에도 힘들었지요?”

“아냐, 생각보다 괜찮았어. 막상 키워보니 괜찮더라고.”

“동훈이가 일부러 고른 거예요. 아빠 털 빠지고 하는 거 싫어한다고 래트리버 대신 슈나우저로. 배변훈련도 지가 시켰어요.”

“...그랬어? 녀석...”

“그리고 그때 얘기한...”

“어, 걱정 마. 생활비는 계속 보낼 거야. 혹시나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내 집은 회사 근처에 알아보고 있으니까 계약하는 대로 나갈게.”     


동훈이 대학에 들어가자 호진의 아내는 더 이상 같이 못 살겠다며 이혼을 요구했다. 호진은 화를 내며 현실을 부정했지만, 이내 곧 수긍했다. 사실 그는 막연히 느끼고 있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을. 회사 동료들도 꺼리는 자신을 20년 넘게 참고 산 아내는 오죽했을까 싶었다.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래야만 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그는 아내와 아들이 불편함 없이 살 수 있도록 하나하나 준비해 나가기 시작했다.          



******          



호진은 이사한 방에 쌓인 박스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감사패, 트로피가 가득 담긴 박스를 정리하던 그는 박스 바닥에서 코팅된 종이 하나를 발견했다. 그는 몸을 굽혀 누렇게 바랜 종이를 집어 들었다. 


‘가훈 행복하자’. 


언젠가 아들의 숙제로 급조해 만든 것이었다.     


‘행복... 하자.’     


헛웃음이 나왔다. 그는 말없이 한참 가훈을 바라봤다. 가슴 아래서 울컥, 커다란 바다가 일어났다. 곧 무서운 현실감이 거대한 파도처럼 그를 덮쳤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그냥... 행복하고 싶었는데.’     


호진은 그대로 바닥에 누웠다. 그리고 누렇게 바랜 종이를 손에 쥐고 한참 소리 내어 울었다. 텅 빈 오피스텔에 그의 서러운 울음이 가득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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