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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납작콩 Jun 08. 2024

감정의 널뛰기

남편이 밉다.     


그다지 잘 크지 않는 베란다 작은 정원에 심은 상추와 고추 모종에서 날벌레들이 쉴 새 없이 생겨나고 날아다닌다. 그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옷 집안을 날아다니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심지어는 콧속에도 들어와서 깜짝 놀라고 화나게 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 시부모님이 밭을 다시 정비하시고 나서부터 이렇다.

 

‘벌레가 왜 생기는 거지?’라고 남편에게 질문 반 불평 반의 퉁명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남편은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양 초연하게 ‘밖에서 들어온 거야.’라고 한다. 모기장이 뚫렸다나 뭐라나. 말도 안 되는 말을 한다. 

조금이라도 본인 부모님에게 부정적인 평가가 내려질까 봐 말도 되지 않는 방어를 해댄다.   

   

베란다 텃밭은 원래 있었지만 이번에 시부모님의 방문으로 더 확장되었다. 농사꾼이신 시부모님은 베란다의 텃밭 공간을 더 넓히고 좋은 흙을 사다가 깔고 작물 키우기 좋은 곳으로 만드셨다. 그리고 그곳에 상추며 고추며 깻잎 등을 갖다 심으시는 일에 앞장서셨다. 다만 그 이후에 우리의 계속된 관리 소홀로 상추는 나무가 되고자 위로만 크고 있고 고추는 한 달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3개 이상은 열리지 않고 있다.      


그런 부모님의 수고에 내가 벌레로 인해 텃밭의 작물을 탓하고 텃밭을 위해 쏟아부으셨던 부모님의 수고를 탓한다고 느꼈는지 미리부터 방어막을 치는 남편이 미웠다.   

  

우연히 베란다를 보는데 텃밭 흙밭 모서리 쪽에 날벌레들이 많이 모여있다. 이때다 싶어 남편을 불러 직접 눈으로 확인시켰다. 그렇게 하는데도 전혀 아무 말이 없다. 


조금 있다 ‘베란다에서 안방 들어가는 유리문에 모기장을 칠까?’ 한다. ‘아니, 모기장은 답답해, 그리고 먼지도 많이 끼고.’      


그렇게 하고 나서 나는 그제야 온라인 쇼핑사이트에서 벌레 트랩을 찾기 시작했고 많은 구매자의 리뷰를 보며 다시 한번 날벌레의 출처에 대한 나의 추측이 맞는다는 확신을 했다.      


내일 오랜만에 고향에 방문하신다고 오늘 머리 파마를 하시는 어머님을 모시러 갔다. 집 앞이지만 발 수술을 하시고 회복 중에 계셔 잘 걷지 못하셔서 차를 끌고 1분 만에 도착한 미용실 앞에 차를 세웠다.      


차 안에서 온통 벌레 트랩을 찾기에 바쁜 나에게 어머니는 ‘모기장을 치면 어떨까?’ 하신다. ‘앵?’ 그 순간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어떻게 똑같은 말씀을 하시지? 어머님이 이미 남편에게 이 말을 했고 그 말을 남편은 앵무새처럼 따라 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가 너무 지나치게 연결하는 것일 수 있다며 나 자신을 다독인다. 하지만 이 순간 여전히 실망감과 배신감의 감정이 들며 또 남편이 밉다. 


남편에 대한 미움을 손끝에 모아 벌레 트랩 구매하기 버튼을 꾹~ 눌러 임무를 완료했다. 


역시 큰 수술을 하시고 회복 중에 계신 아버님이 요즘 식욕이 없으시다. 그래서 아침에도 국을 그대로 남기셨다. 점심은 아버님이 드시고 싶으신 것을 먹어야 하지 않겠냐며 동네의 작은 일본음식점으로 두 분을 모시고 갔다. 그곳에서 우동과 모듬 스시와 초밥을 한 상 먹고 사장님이 서비스로 내어주신 일본식 연어 머리 찜과 새우를 얹은 초밥까지 잘 먹었다. 남편은 먼저 일어나 식사비를 냈다. 그리고 오후 일정을 위해 남편은 남편 차에 나는 시부모님과 함께 나의 차에 탔다. 남편은 일부러 운전석 창문을 열더니 나에게 ‘여보, 나 갈게.’ 한다. ‘응~ 그래!’하며 내 마음은 또 말랑해진다.      


남편에 대한 감정의 널뛰기는 언제쯤 끝나는 것일까? 내 마음이 지어내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감정의 널뛰기를 끝낼 수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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