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의 상징(2), 숲길
숲의 중심, 성속과 나의 해체
잠시 정신을 차려보니 길이 사라졌다. 그 대신에 작지도 크지도 않은 빈터가 눈앞에 나타났다. 다른 것보다 그 속에 세밀하게 얽힌 풀줄기들만 보였다. 문득 생명의 거룩한 탯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탯줄은 하늘의 양식을 땅으로, 땅의 결실을 하늘로 되돌리는 이음이다. 세상 만물의 기원과 끊임없이 연결된 상징이다. 그런데 왜 그런 상징이 여기에서 보이는 것일까? 아마도 여기가 숲의 중심인 것 같았다. 인간의 신체로는 배꼽이라 할만하다. 그렇다면, 숲 속의 숲인 셈이다.
그렇다면, 숲의 기원일 수도 있다.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그 공간을 바라보았다. 위로는 하늘로 열려있고 아래로는 땅을 뚫고 진퇴 하는 듯하다. 수많은 벌레 같은 것이 움직였다. 그 움직임이 너무 정교해서 마치 하늘과 땅 사이에 성스러움과 세속의 경계를 허무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없는 듯했으나 숲이 숨을 쉬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숨 쉬는 숲은 숲이 살아있다는 은유다. 이곳에서 성과 속은 무의미해 보였다. 경계는 당연히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도 분명했다. 해체다. 생각해 보니 이 빈터에서 세계 시말(始末)의 징조가 하나로 이어져 응축되는 것 같다.
나는 조심스럽게 숲의 중심으로 들어서 보려 했다. 무벽이었으나 뭔가 닿았다. 힘을 조금 주어 밀었다. 루시가 옷장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 옷장 안으로 들어섰을 때도 그랬을 것 같다. 곧 눈앞에 펼쳐졌던 나니아 세계, 눈의 나라가 숲에서 떠오른다. ‘국경의 터널을 지나오니 설국이었다’라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첫 문장도 문학적 과장이 아니다. 지금 내 앞에서 하얗게 떠오른다. 곧이어 무시의 경계 저 너머로부터 바람과 소리만 들려온다. 나의 귀에서는 언뜻 소음의 세계다. 문은 열렸으나 나는 들어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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