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빨리 집에 가고 싶어. 오랜만에 책 몇 권을 샀거든. 아까 책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지 뭐야. 빨리 가서 책 보고 싶어"
나: "그래? 잘했네. 근데, 어떤 책들을 샀는데?"
2021년 가을에 결혼한 딸이 거의 매일 전화를 해온다. 퇴근 후 지하철을 타러 가거나 기다리면서. 10여분 남짓,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에 전화해 살림에 대해 묻기도 하고 언제쯤 어디에 갈 거라는 등 이런저런 이야길 들려주곤 한다. 며칠 전(2023년 3월 28일)에는 집에 와 있는 책에 대한 설렘으로 통화를 시작한다.
딸: "장하__준? 엄마 혹시 들어봤어? 암튼, 그 사람 책도 샀는데, 보면서 엄마가 좋아할 만한 책이겠다. 엄마가 이미 샀나?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혹시 엄마도 알아?"
나: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그 책 말하는구나? 엄마도 알지"
딸: "그럴 줄 알았어. 역시 엄만 벌써 샀네. 그 책 보는 순간 딱 엄마 책이다. 엄마가 좋아하겠다 싶더라니!"
나: "아니 안샀어. 장바구니에 있어. 그 책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어. 아마 며칠 전에 나왔을걸!"
참고로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이 책 출간 날짜는 2023년 3월 30일이다. 하지만 실제론 출간 날짜보다 먼저 출간, 내가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서점에서 지난 열흘간 눈에 박히도록 광고했다. 그래서 책 이름을 외운 것이다. 딸이 아는 것처럼 좋아하는 편의 책이라 구미가 당겨 장바구니에까지 담아뒀던 것이고.
왼쪽은 며칠 전에 딸이 구입한 책 목록. 오른쪽은 내 장바구니 일부.
또 어떤 책들을 샀을까? 물어보니 <나의 마지막 엄마>, <세이노의 가르침>, <서울에 내방 하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이중 두 권을 빌려주기로 약속받았다. 요즘 읽고 있다는 <헝거>(록산 게이)와 함께 모두 3권을.
딸: "내일 가져가야지!"
나: "내일? 캠핑 간다고 하지 않았어? 가지고 가지 마! 캠핑 가서는 그냥 캠핑만 즐겨!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요즘 나무들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 난 여행 가면서 책 가지고 가는 사람들 이해가 안 가더라(이 말하며 웃었다. 왜?)"
딸: "그런 사람 엄마잖아! (내가 웃은 이유다)"
나: "그런데, 그렇게 가져가서 다섯 페이지 이상 읽은 적이 없어. 하기야. 꼭 읽으려고 가져가니. 책을 보고 싶어서(읽는다와 다르다) 가져가는 것이지. 읽지 못해도 가방에 한 권은 넣고 다니는 것처럼"
딸: "엄마는 그래서 요즘 어떤 책들을 읽어?"
나: "이것도 읽고 저것도 읽고... 실은 엄마도 오늘 책 두 권이 왔는데 그중 한 권은 <고독사는 사회적 타살입니다>란 책이야. 경찰관이 쓴 책인데, 며칠 전 퇴근길에 책 쓴 사람 인터뷰 기사를 보고 바로 주문했지. 어떤 할아버지가 죽은 거야. 무연고로. 고독사였지. 그 사람 유품 중에 봉투 하나가 발견됐어. 짧은 편지와 5만 원짜리 두장이 든 봉투였어. '먼저 간 아내를 따라갑니다. 내 짐을 정리해 줄 사람에게 드리는 밥값입니다. 한 가지 더 부탁드립니다. 아내 옷 한 벌을 준비했는데 함께 태워주세요'라고. 그 할아버지는 아내가 죽자 아내 장례를 정성으로 치른 후 자살했는데, 자기가 죽은 후 아내 옷을 태우면 저승에 가서 꼭 만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으로 그렇게 부탁한 거야. 읽는데 뭉클, 복잡하게 와닿더라고. 고독사는 이젠 누구든 관심 둬야 할 문제이기도 하고..."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지하철 들어오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 허겁지겁 통화를 끝냈다.
요즘 지하철에서 읽는 <고독사는 사회적 타실입니다> 속표지와 내용.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처럼 딸도 여러 차례의 큰 비바람을 겪었다. 딸이 겪은 시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중학교 1학년 봄, 친구들의 배신이다.
딸은 유치원 때부터 인기가 많았다. 날이 밝으면 딸 때문에 유치원에 빨리 가야 한다고 서두른다는 아이도 몇이나 있었을 정도였다. 초등학교 들어가서도 인기는 계속되었다. 호들갑스러운 성격은 아니나 사회성이 좋아서인지 남다르게 친한 친구들이 몇이나 있었다. 딱히 정하진 않은 것 같은데, 그 애들과 일종의 그룹인양 주로 어울리곤 했다.
그 애들이 중학교로 고스란히, 함께 입학했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담배까지 피웠다는 인근 초등학교에서 온 한 애가 6명으로 이뤄진 아이들 그룹 그 중심에 있던 딸을 시샘했나, 아마도 작정하고 딸과 친하게 지내던 아이들을 먹을거리와 이간질로 꼬드겨 제 편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딸은 '어느 날 갑자기 친했던 친구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꺼번에 외면'해 버리는 것으로 왕따를 당했다.
딸은 초등학교 내내 어울렸던 여러 아이들에게 한꺼번에 당한 배신감으로 숨죽여 울곤 했다. 그런 딸과 어느 날 자주 가곤 했던 불광문고에 가 책 몇권을 사줬다. 딸과 비슷한 나이인 중2 때 읽으며 '인간의 밑바닥'과 '관계의 허망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 펄벅의 <대지>와, 청소년기의 방황과 복잡한 심사들을 위로받곤 했던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이었다.
내가 사준 책들을 며칠 지나지 않아 모두 읽은 후 처음으로 아이들에게 느낀 배신감 그 쓰라림을 헛헛하고 쓸쓸한 얼굴로 고백한 딸은 또 다른 책들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차츰차츰, 딸은 책 좋아하는 사람으로 성장했고 성숙해졌다.
지금도 딸이 사춘기 시작 즈음이라 더욱 힘들었을 그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마침내 엄마가 권해준 책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힘들었던 시간에 위로를 받았기 때문일까? 딸은 이후에도 이렇게 저렇게 힘들 때면, 특히 사람 때문에 힘들 때면 책을 몇 권 구입해 파고 읽은 후 해맑은 얼굴이 되곤 했다.
이제 딸은 힘들 때만 책을 읽지 않는다. 그냥 책 그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책을 구입해 읽곤 한다. 책 맛, 책 읽는 맛을 제대로 터득한 것이다. 그래서 우린 며칠 전처럼 책이야기를 종종 하곤 했다. 딸이 결혼으로 떠날 날을 앞두고 우리 둘이 가장 아쉬워 했던 것은 주로 밤 10시에서 11시 무렵, 마주보고 혹은 나란히 앉아 인상깊게 읽은 부분을 읽어주기도 하고 책도 보여주고 하던 그 시간을 더는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딸: "오빠는(사위) 내가 신기하대. 읽고 싶은 책들이 계속 생기는 것도 그렇고, 계속해서 읽는 것도 그렇고."
나: "엄마가 지난날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너에게 언제든 책 읽을 생각을 하게 하고, 읽을 수 있게 하는 책 씨앗(나 스스로 이렇게 정했다)을 뿌려준 것이라고 생각해. 그렇지 않아?"
딸: "그래 맞아! 그런데 엄마처럼 계속해서 읽어야 하는데 어쩌다밖에 읽지 못해서 아쉬울 때도 있어"
나: "네 생활에서 지금 정도로도 충분한 것 같은데? 그래도 언제든 읽자 마음먹으면 어떤 책이든 쉽게 읽잖아. 그럼 된 거지. 나중에 시간 많아지면 그때 좀 더 읽으면 되는 것이고. 꼭 많이 읽어야 한다가 정답도 아니고. 지금처럼 읽고 싶은 책 읽으면 되지. 다만 책을 읽어야 한다의 끈은 평생 놓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날 이런 대화도 했다.
우리 아이들이 아동기일때 이런 저런 폼나는 전집들이 참 많이 나왔다. 소박한 편인 친정동생조차 백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전집을 사줄 정도로 많은 부모들이 선뜻 전집을 사주곤 했다. 하지만 내가 전집이라고 사준 것은 첫째가 5살때 웅진에서 나온 20권?짜리 동물 시리즈 한질이 전부. 훗날 더 사줘야지의 계획은 하필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쏟아야 하는 시기에 시작되어 계속된 악재로 놓아야만 했다.
그런 내가 아이들에게 그나마 끊임없이 해줬던 것은 서점으로 자주 데리고 다니며 책과 눈과 마음을 맞추게 한 것. 생각하곤 한다. 헛헛함 가득한 얼굴로 '배신감'을 말했을 정도로 힘들던 그때 내가 사준 책에 선뜻 마음을 둘 수 있었던 것은 딸 어딘가에 이미 자리한, 엄마가 그처럼 서점으로 데리고 다니며 책을 사주거나 등으로 뿌려준 책 씨앗 덕분이라고. 책을 놓지 않고 살아온 덕분에 딸이 힘들 때 마땅한 책을 권해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이 정도면 책이 필요한 이유 혹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책의 힘 혹은 책의 가치 그에 대한 소회로 충분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