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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여니맘 May 11. 2023

'2023 민들레'를 기록하다

보고, 보고, 또 보고... 도 눈길이 가는 풀꽃들.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찍곤 하다 보니 미러리스(카메라) 속 사진을 주로 옮겨놓는 외장하드에도, 이 글을 쓰는 스마트폰 속에도 고만고만한 꽃 사진들이 많다. 아마도 몇만 장은 될 거 같다.


올봄, 특히 많이 찍은 것은 민들레다.


민들레는 워낙 흔하다. 흔한 그만큼 민들레를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알고 있을 대표적인 풀꽃 민들레인 것이다. 


이건 잘못된 것인데) 흔한 것은 간과하는 경향이 많다. 내게 민들레도 그중 하나였다.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그리고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어서인지 그리 귀하게 와닿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쪼그려 앉아 관찰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해 봄 처음 만난 민들레 한두 포기 사진에 담는 것으로 더 이상은 찍지 않은 것이 벌써 오래전부터다. 하지만 올해는 유독 많이 찍은 것이다. 


토종 민들레 중 한가지인 흰민들레
가장 많이 자라는 서양민들레
토종 민들레 중 한가지인 그냥 '민들레'


지난 늦가을(11월), 마당 한쪽에 완벽한 분홍색으로 민들레가 피었다. 그동안 참 많은 흰민들레를 봐왔다. 그런데 그처럼 분홍색으로 핀 민들레는 처음이었다. 지난해 11월, 겨울을 코앞에 둔 무렵이었다. 아직 가을이라지만 이미 몇 차례 찬서리가 내린 후였다.


봄에 흰민들레가 피었던 자리에 핀 분홍색 민들레였다. 아마도 봄이련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막상 꽃을 피우려고 보니 겨울로 가는 추위라, 그 추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분홍색 꽃을 피운 것은 아닐까?지레짐작하니 그 민들레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입춘 지나고 봄기운이 자주 와닿으면서 봄이, 아니 민들레가, 아니 분홍색 민들레가 피었던 그 자리에 일어날 변화가 궁금했다. 민들레는 여러해살이다. 봄이련가 싶은 때 그 어떤 꽃보다 빨리 꽃이 피는 것은 지난해 꽃을 피웠던 그 뿌리에서 새순과 꽃대가 나와 꽃을 피우기에 가능하다.


당연히 분홍색 민들레가 피었던 자리에도 민들레가 피어날 것, 그렇게 분홍색 민들레가 피어난 자리를 자주 들여다보며 주변 민들레들까지 더욱 자주 들여다본 올봄이었다.


민들레를 눈여겨보면서 흔하다 보니 간과하게 되고, 그로 미처 모르고 있던 민들레를 알게 됐다. 내가 사는 지역 가까이에 몇 년 전 신도시가 조성되었다.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 아이들과 손잡고 다니던 풀꽃들이 가득 피어나곤 했던 길도, 그에 깃들어 살던 풀들도 사라졌다.


토종민들레도 풀밭과 함께 사라진 풀꽃 중 하나. 한때, 저만치처 민들레가 보이면 눈을 박은 상태로 다가갈 정도로 토종 민들레를 찾기도 했고,  내가 사는 곳에서 더는 볼 수 없음을 아쉬워했었더랬다. 올봄, 토종민들레라고 판단되는 민들레도 만났다. 


오랫동안 흔한 꽃이라 지나치고 말던 민들레를 눈여겨본 덕분에.





-민들레를 만나는  눈, 하나: 민들레가 바닥에 바짝 붙어 꽃을 피우는 이유


남향집이다 보니 마당 가득 햇빛이 길다. 그래서인지 봄부터 초겨울까지 수많은 풀들이 자란다. 이 집으로 이사와 확실하게 보게 된 것이, 그래서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 있다. 풀이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싹을 틔운 그 자리에 놀랍게 적응한다는 것, 그래서 풀이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많은 책에서 읽어 알고 있었던 것을 확인했고 거의 일년 내내 눈으로 보며 살고 있는 것이다. 


마당은 보도블록을 깐 곳과 아마도 오래전 시멘트를 덮은 곳으로 되어 있다. 보도블록 틈과 시멘트가 낡아지며 떨어져 나가 흙이 드러난 곳을 따라 풀들이 자란다. 살펴보면 틈이 좁은 곳에선 작게, 조금 넓다 싶은 곳에선 조금 크게 자라 꽃을 피운다.


민들레도 마찬가지. 씨앗이 내린 그곳 환경에 맞게 작게 자라거나 크게 자란다. 빨랫줄이 지나거나 현관으로 오가는 등으로 사람 발길이 많은 곳에 자리 잡은 민들레라면 꽃대를 거의 키우지 않아 바닥에 바짝 붙은 모습으로 꽃을 피운다. 잎도 최소한만 키우는지 그리 크지 않다. 풀들이, 민들레가 몸집을 최대한 작게 하면서 바닥에 바짝 붙어 꽃을 피우는 이유는 '꽃대가 길면 길수록 꺾일 가능성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반면 사람 발길이 거의 없는 곳에서는 꽃대를 길게 키워 자란다. 잎도 탐스러운 경우가 많다. 꽃대를 크게 키워 꽃을 피워도 밟히거나로 꺾일 염려가, 끝까지 꽃을 피워 홀씨를 날려 보낼 자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민들레의 이와 같은 생존전략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큰길 인도나 버스정거장 부근. 사람 발길 정도에 따라 꽃이 피고 홀씨가 맺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이 밟을 가능성이 많은 곳에 피어도 거의 밟히지 않았다면 크게 자라 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사람 발길이 가장 많은 곳에 흰민들레가 한포기가 3년째 자란다. 민들레가 처음 꽃을 파운 2년 전, 얼떨결에 밟곤 했다. 그래서인지 낮게 꽃을 피웠었다. 꽃을 피운 때문에 2년전 봄 이후 가족 누구나 그 민들레를 피해 다닌다. 거의 밟히는 일이 없는 그 민들레는 지난해 봄부터 제법 크게 자라 꽃을 피운다. 





모든 민들레는 수정이 끝나면 꽃대를 쑥쑥 키운다(~30cm정도까지). 높아야 씨앗을 멀리 퍼트릴 가능성이 많아져서다. 


민들레를 만나는 눈, 둘: 민들레 홀씨 키가 큰 이유


가을에 흔히 볼 수 있는 풀꽃 중에 유홍초가 있다. 작은 나팔꽃처럼 피었던 이 꽃은 어느 순간 마치 강한 바람에 우산이 활딱 까져버린 것처럼 꽃잎을 뒤로 한껏 젖혀버려 한가운데의 꽃술 부분이 툭 불거져 나온 모습으로 바뀐다. 맞을지 모르겠는데) 아마도 수정이 끝난 꽃으로 지레짐작한다.


식물 관련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수정을 끝낸 꽃 모양이 달라지는 것은 열매(혹은 씨앗)를 맺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지만, 이미 수정했음을 벌이나 나비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이미 수정을 했으니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다른 꽃으로 가라'고 꽃 모양을 바꾼다는 것이다.


민들레는 수정 후 특히 눈에 띄게 모습이 달라진다. 수정을 끝낸 민들레꽃은 꽃대를 쑥쑥 키운다. 30cm까지 키울 수 있다고 한다.  식물들의 최종 목표는 씨앗을 최대한 많이 퍼뜨림으로써 많이 번식하게 하는 것이다. 높을수록 멀리 날아갈 가능성이 많다. 말하자면 수정이 끝난 민들레가 꽃대를 최대한 높이 키우는 것은 홀씨를 멀리멀리 날려 보내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민들레 홀씨(뭉치)는 꽃만큼이나 예쁘다. 종종 사진의 주인공이 될 정도로. 하지만 (몇 년 동안 유심히 살핀 결과 알게 됐는데) 사람에게 밟히며 꽃을 피운 민들레는 꽃대를 크게 키우지 않는다. 또한 홀씨도 웅크린듯한 모습으로 맺어 날린다.


2006년? 무렵, 어떤 책에서 민들레가 이렇게 피고 진다는 것을, 아니 이와 같은 생존전략으로 민들레가 그리고 수많은 풀들이 그토록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풀꽃들이 더욱 좋아졌다.



맑은 날, 햇빛이 많을 때는 이렇게 활찍 피지만
해가 지거나, 흐리거나, 비가 오면 이렇게 오무려버린다.


민들레를 만나는 눈, 셋: 밤에나 비오는 날에 꽃을 닫아버리는 이유


'민들레는 종류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대략 어른 손길이 정도로 자라 꽃을 피운다. 하지만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선 작게 자라고 꽃도 낮게, 심지어는 꽃대가 있나 싶을 정도로 바닥에 바짝 붙어 피운다. 그래야 밟혀도 꺾이지 않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민들레는 일단 수정이 끝나면 씨앗을 최대한 멀리 날려 보내고자 꽃대를 쭉쭉 키워 올려 홀씨를 맺는다'


민들레의 이와 같은 생존전략을 알고 보는 것과 무심히 지나치는 것 그 차이는 크다. 이제부터라도 눈여겨본다면 민들레꽃 한 송이가, 또 다른 풀들이 훨씬 남다르게 보일 것이다.


해가 질 무렵 길을 가며 꽃을 관찰하다 보면 꽃들이 꽃잎을 닫아버린 것을 볼 수 있다.  비가 내릴 때도 꽃잎을 닫아버린 꽃을 볼 수 있다. 식물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꽃을 피우는 이유는 씨앗을 맺어 번식시키고자이다. 그래서 꽃을 피워 씨앗을 맺는데 훨씬 많은 에너지를 쓴단다. 가뜩이나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상황인데 기온이 떨어지면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만 현상유지다. 혹은 아직 수정하지도 못했는데 비를 오래 맞음으로 꽃술이 손상되면 어쩌나? 그래서 꽃잎을 닫아버린다고 한다.


이런 꽃의 변화를 어떤 책 별꽃 이야기에서 읽었다. 어느 해 봄 어느 날. 볼일을 보고 가는데 두 시간 전쯤엔 활떡 피었던 튤립들이 꽃잎을 모두 오므려버린 것을 보게 되었다. 볼일을 보러 갈 때와 볼일을 본 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비가 오려고 잔뜩 흐려진 날씨. 그때 실하게 알게됐다. 큰 꽃들일수록 날씨(온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그렇다지만 해가 지건 말건 비가 오건 말건 큰 변화가 없는 꽃들이, 즉 꽃이 활짝 핀채로 비를 맞는 꽃들이 많다. 민들레도 그렇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올 4월은 3월 초순 꽃샘추위 같았기 때문일까? 불과 보름전까지 밤이면 춥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지난 4월 거의 많은 날동안 해가 질 무렵이면 민들레들이 꽃잎을 닫아버렸다. 비 오는 날에도 꽃잎을 모두 오므리곤 했다.


그동안 못 봤던 것일까? 워낙 추운 4월의 날씨에 닫아버린 걸까? 






서양민들레(왼쪽)와 토종민들레 구별 포인트는 꽃받침 조각(꽃 아래 뾰족뾰족한 것)모양이 어떤가?



민들레를 만나는 눈, 더하여: 풀꽃 저마다 존재 이유가 있다. 편견없이...



지난해 봄, 2005년 출판사 편집자와 기자로 만나 친구인지? 언니인지?처럼 지내는 나이가 훨씬 많은 지인과 북한산 봄꽃 산행을 갔다. 마침 유독 예쁘게 피어난 서양민들레 한그루가 있어서 사진을 찍고 일어났는데 우리를 본 어떤 여자가 말한다.


"이거 서양민들레 아니에요? 흰민들레가 진짜민들레라면서요? 흰민들레는 보기 아주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 여자 말에선 '하찮은 서양민들레'가 느껴졌다. 꽃은 사실 구분 없이 예쁘다. 솔직히, 그렇다고 모든 꽃이 똑같은 비중으로 예쁘게 와닿는 것은 아니다이다. 여러 장 찍고서도 아쉽게 일어날 정도로 마음이 더 가는 꽃이 있고, 그냥 빙긋 웃으며 스쳐 지나갈 정도로 그만그만한 꽃들도 많다. 마음이 더 가는 풀꽃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흰민들레가 진짜민들레고 서양민들레는 하찮은 존재처럼 스스로 구분해 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실 꽃으로선 우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크게 상관없겠다. 구분해 버리는 사람 스스로 한 식물 혹은 그 식물의 꽃은 물론 다른 식물들까지 제대로,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을 알아갈 기회를 스스로 접어버릴 가능성이 많다. 한마디 덧붙이면 편견 없이 바라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참고로 흰민들레만 토종 민들레가 아니다. 토종 민들레 중에는 노랗게 피는 것도 있고 연노랑색으로 피는 것도 있다. 제주도에서 자라는 좀민들레도 노랗게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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