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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여니맘 Jun 09. 2024

하수구 덮개 참나물을 만나며

삶, 산다는 것

2024.5.20


출퇴근 길, 매일 지나치는 골목 하수구 덮개에 피어난 참나물싹입니다. 사진을 찍다가 폰을 하수구에 떨어뜨릴까 봐 조심조심, 열흘 가량 눈으로만 만나다가 결국 5월 어느 날 사진에 담았는데요.


엎드려 참나물이 자라고 있는 곳을 살펴봤는데, 언뜻 흙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럼에도 싹을 틔울 수 있었던 것은, 언뜻 보이지 않지만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나마 보일 아주 조금의 흙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먼지가 날아들고 날아들어 쌓여 생긴 그런 흙이.


암만 봐도 흙이 쉽게 보이지 않는 것이 아주 적은 양의 흙에 씨앗이 떨어졌나 봐요. 그럼에도 싹을 틔운 참나물을 보며 '그래, 삶이란 이런 것이지' 고된 하루를 스스로 다독이곤 한답니다.


싹을 틔우고 자랄 흙이 부족하다고 체념해버리고 말았다면, 그래서 아예 싹을 틔우지 않았다면 아마도 장차 비가 오면 그 빗물에 휩쓸려 내려가 영영 사라져 버리고 말았을 것인데 그럼에도 싹을 틔워 자라고 있으니 훨씬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사는 사람이 힘들다, 고되다 어찌 주저앉을 수 있겠나? 생각이 들곤 합니다.




2024.6.6


사실, 이 참나물을 보는 순간 문득 오래전 만났던 민들레 한 포기가 떠올랐습니다. 이 참나물처럼 지하철 통풍구 덮개 귀퉁이에 싹을 틔워 가냘프게 꽃을 피우고 있었거든요.


그 민들레는 이듬해 봄에는 더욱더 풍성하게 자라나 꽃을 피웠습니다. 그 민들레가 그곳에 싹을 틔워 자라는 것으로 보다 많은 먼지가 날아들어 보다 많은 흙이 생겼고 생명이 자랄 환경으로 더욱 좋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암만 봐도 이 참나물이 자라는 곳에는 그 민들레가 자라 잡은 곳처럼 보다 많은 먼지가 날아들어 어떤 생명들이 살아갈 곳으로 바뀌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흙이 많이 쌓이지 못할 그런 구조거든요.


참나물은 여름이 끝나갈 무렵인 8~9월쯤 꽃을 피운답니다. 제대로 자란다면 이 참나물도 그즈음 흰꽃을 피우겠지요. 그런데 아마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꽃을 피우려면 여름 장맛비와 7월 말~8월 초의 집중 폭우, 그리고 어쩌면 큰 태풍 한두 개는 이겨내야만 하는데요.  사실 이 하수구는 경사진 골목 끝에 위치해 비가 많이 내릴 때 지나다 보면 빗물들이 발등을 기어오를 정도로 많은 빗물이 쏟아지는 곳이거든요.


그런데 꽃을 피워야만 아름다운 삶인가요? 열매를 맺어야만 열심히 살았노라의 흔적이 되는 건가요? 이 참나물처럼 비록 옹색한 곳이지만 싹을 틔워 최선으로 살아낸다면 아름다운 생명, 값진 삶 아닐까요?


참나물은 조건이 좋은 곳에서는 30cm 가까이 자라더라고요. 잎줄기도 여러 개 틔워 자라고요. 이 참나물은 뿌리내린 곳이 워낙 열악해 손가락 한마디보다 작게 자라고 있답니다. 보름 사이에 잎줄기 하나를 더 키워냈지만 글쎄요? 앞으로 얼마나 더 키워낼 수 있을까요? 아마도 모습은 크게 바뀌지 못할 것 같아요. 바탕(흙)이 도무지 되어주지 못하니 말이죠. (어디까지나 내 지레짐작이지만) 그래서 한편으론 한 포기 작은 참나물이 어떻게든 살아보려 하나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그만그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가진 것 없는 사람들만 같아 우울해지곤 합니다.    




덧붙임... 시중에서 '참나물'이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우리가 참나물로 알고 재배하는, 사진 속 참나물은 '파드득나물'입니다. '삼엽채' 혹은 '반디나물'이라고도 하는데요. 참나물은 주로 산중에서 자란다고요. 재배가 쉽지 않다고요. 파드득나물과 참나물의 생김새가 비슷, 언제? 누구에 의해서? 인지 (일본) 파드득나물이 참나물로 보급.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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