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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여니맘 Oct 18. 2023

어른에게 '잔말 말고'가 뭐야?


출근 둘째 날(8월 29일), U아파트 후문에 들어서서 몇 걸음 걸었나? 아마도 초등학교 3학년? 아니 4학년? 은 될 것 같은 남자아이가 우산을 내밀며 대뜸 말한다. 그 아파트에 살지 않으니 당연히 전혀 모르는 아이였다. 얼떨결에 우산을 받고 말았다. 

 

"이거 해주세요!"

"어? 어떻게 해달라고? 펴달라고? 비 안오는데?"


"(두 손으로 우산을 움켜쥐며) 아니 이렇게 해달라고요!"

"아하, 접어달라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아침이었다. 나도 우산을 들고 있었다. 한 손에 우산을 쥔 채로 해주려니 쉽게 되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가 내민 우산은 일반 비닐 소재와 다른, 약간 메쉬? 바시락거리는(오로라 느낌이 나는) 그런 우산이라서인지 쉽게 모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손에 있던 내 우산을 내밀며 말했다.


"이것 좀 가지고 있어 봐. 그런데 이 정도는 너도 충분히 할 수 있잖아? 다음부턴 네가 해봐"

"(중간에 말을 끊으며 짜증 섞인 소리로) 나는 못한다고요. 잔말 말고 그냥 해주세요!"


"(속으로 놀랐다. 어?! 요녀석보게!) 어른에게 잔말 말고 가 뭐야! 부탁합니다 해야지(약간 단호하게). 그리고 너, 나 알아? 처음 본 사람이잖아! 그러면 더욱 부탁해야 맞는 거지!"


"(내 눈을 보며, 약간 놀라는 듯, 그러나 비아냥거리며) 아 예.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열 살도 넘었겠고만. 이런 것은 네가 알아서 해야지!. 다음부턴 네가 해봐


아이가 내 옆을 지나 휙 가버린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의 태도가 황당해서 몇 걸음 걷다 뒤돌아보니 이미 몇 미터 가버리고 있다. 잠깐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어른에게 잔말 말고 가 뭐냐? 고 말하자 앞질러 "고맙습니다" 해버리고 만 것을 보면 되바라진 아이 같기도 하고, 단호한 태도에 뜨끔해했던 것을 보면 아예 몰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잠깐 헷갈렸지만 '겨우 열 살 남짓한 아이가 되바라졌으면 얼마나 되바라졌을까? 아마도 몰라서 그러는 것이지', 이렇게 결론지어버리고 나니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쟤네 부모는 어떤 사람들일까?, 저런 말을 누구에게 배운 걸까? 누가 쓰니까 배웠겠지. 밖에서 배웠든 집에서 배웠든 집에서도 쓰긴 쓸 텐데... 고쳐주지 않나? 아니, 쟤네 부모가 아이한테 '잔말 말고'를 하나? 그래서 쟤도 하는 거고... 부모가 그래서 고쳐줄 생각조차 못하는 거고. 말하는 태도도 잘못됐던데...' 




서산 보원사지 코스모스(2022.9)


종일 정신없이 일하다 퇴근하자고 엘리베이터에 타니 아침에 만났던 그 아이가 떠올랐다.  그와 함께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알게 된 몇몇 아이가 떠올랐다. 그중 한 아이.


딸이 여섯 살 때로 기억한다. 유치원 참관 수업에 갔다. 엄마들에 섞여 앉아 있자니 수군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귀가 쫑긋. 


"쟤 있잖아요. 혹시 쟤가 그 oo이에요? 얼마 전부터 나온다는"

"어떤 애? 아 저 애? 그런데 왜요?" 


자세히 듣지 않아도 한 아이를 지목하고 있음이 쉽게 읽혔다. 


"걸핏하면 애들한테 주먹질을 한대요. 우리 OO이도 쟤가 때렸다고..."

"어머나! 우리 OO이도 집에 오자마자 어떤 애가 때렸다고 울던데 쟤였나 보네요"


"그래서 선생님께 전화했더니, 그러면 안 된다고 해도 고쳐지지 않는다고, 어머니께 말해도 고쳐지지 않는다고. 그런데 애는 정말 착하다네요. 주먹으로 때리는 것만 빼면. 선생님도 고쳐보려고 하는데 잘 안되나 봐요! 난감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요? 혹시 쟤네 아빠가 집에서도 주먹질하는 것 아닐까요? 애들은 어른들 보고 배우잖아요!"

"설마?... 정말 그런가? 쟤네 아빠 조폭인가?" 


"우리가 나서서 OO이 엄마한테 말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맞아요. 조금 있다가, 수업 끝나고 말해요!"


엄마들이 OO이 엄마라는 사람을 흘깃하며 이렇게 수군거렸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가게를 운영할 때였다. 옆집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인 데다가 가게가 있는 지역에서 평판이 좋아 그 유치원에 보낸 거였다. 동서네 아이도, 세 살 터울의 첫째도 그 유치원을 만족스럽게 다녔더랬다. 그렇다 보니 옆에서 수군거렸던 엄마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서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당연하게 엄마들에게 끼이게 됐다.


"OO이가 우리 애를 주먹으로 때렸다고 하던데"

"우리 OO이도 며칠 전에 맞았다며 자기도 때려줄 거라고 하더라고요"

"OO 이는 걸핏하면 주먹으로 애들을 때린대요!"


우리 애는 맞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편으론, 이렇게 여럿이 한꺼번에 몰려가 말하면 안 되는 것 아닐까? 나는 빠질까? 잠깐 고민했다. 여하간, 그 엄마가 어쩔 줄 몰라하거나 얼굴이 빨개질 줄 알았다. 그래도 어쨌거나 당연히 사과하리라 생각했다. 친구들을 때리지 말라고 해도 안된다고, 그래서 그렇다고, 하지 말도록 해보겠다고 변명하리라 생각했다. 


"그거 때리는 것 아니에요. 함께 놀자고 그러는 거예요. 우리 OO이는 좋으면 그래요. 걔가 좋아서, 걔하고 친구하고 싶어서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그게 왜요?"


하지만 그 엄마는 그런데 뭐가 문제냐? 아이의 행동이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 당연한 듯, 당당하게 말했다. 당혹스러워하지도 않고, 물론 죄송해하지도 않고. 아니 되려 왜 난리들이세요? 표정으로. 그러고는 뒤돌아서서 쌩~! 가버렸다. 


아침에 만난 그 아이 때문에 오랜만에 그 아이를 떠올렸는데, 우리 애들을 키우는 한동안 그 아이 엄마는 부모의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오늘(9월 8일)로 서비스 10일 차. 며칠 전 큰애 유치원 하원길에 아이가 막무가내로 떼쓰며 울고불고하는 일이 있었다. 아마도 놀이터에 조금 놀다 들어오곤 하는 모양인데, 저보다 어린아이가 가방과 함께 놀이터 의자에 뒀던 풍선을 잠깐 만졌던 모양이다. 그게 억울해 죽겠다는 듯 막무가내로 떼를 쓰며 울고불고, 그 와중에 들고 있던 것들을 현관에 던지는 것으로 난장판이 되었다. 그것도 10분 넘게. 속으로 저러다가 목이 쇠 버리는 것 아냐? 걱정될 정도로 정말 너무나 크게 크게. 인터폰 울리지 않는 것을 보며 이 아파트 사람들 참 무던하구나 생각까지 들 정도로.


"애가 그러지 않았었는데.... 정말 순했거든요. 그래서 둘째 낳을 생각까지 했는데... 요즘엔 너무나 힘에 부쳐 하나로 끝낼 걸 그랬나 후회되고 그래요."


다음날 아이가 유치원에 간 후 어제 오후의 한바탕 소동이 민망했던지 이렇게 말했다. 그런 엄마에게 답했다.


"아이들 누구나 다 그런 과정을 거쳐요. 그리고,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동생)을 아이에게 해주신 것 같은데요!"


이어 덧붙였다. 


"그래서 더욱 아이를 하나 이상 낳아야 해요! 아우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도 많이 혼란스러울 거예요. 그래서 어제처럼 별것 아닌 것으로 떼도 쓰고. 차차 받아들일 거예요. 그러면서 동생이 있어서 포기해야 할 것, 배려해야 할 것도 배울 거고요. 길 가다가 바닥을 뒹굴며 떼쓰는 애들도 종종 보는데, 아마도 아이 키워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저 녀석이 뭘 사달라고 떼쓰는구나' 하면서 씽긋 웃고 말 거예요. 어느 집 아이나 한두 번만이라도 다 그래요. 우리 애도 그랬는걸요. 남들은 그야말로 지나가는 사람이잖아요. 하지만 내 아이는 어떤 아이로 자라는가에 큰 영향을 받고. 그러니 다른 사람 눈 생각하지 말고 혼내야 할 것은 단호하게 혼내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못하게 해야겠죠? 그게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니까요"




오래전, 주먹질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던 그 아이는 어떤 사람으로 성장했을까? 


당연히 그 아이는 누군가에 대한 관심을 주먹으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언젠가는 알아차렸을 것이고 수정을 했을 것이다. 워낙에 드러나는 행동이라 잘못된 것이란 걸 그만큼 빨리 알아차렸을 것이고, 자의든 타의든 고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자신의 아이가 보편적이지 못한 행동을 하는데도 그걸 분별하지 못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되려 감싸고 들었던 그 엄마. 여전히 그런 정도의 판단과 인식이었다면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알고 보면 문제인 또 다른 것들을 어떻게 수정해 줄 수 있었을까? 


며칠 전 보도된 뉴스 하나. 


반 아이들과 제비 뽑기로 자리배치를 하기로 합의했단다. 한 아이가 자신이 제비 뽑기 해 받은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조정을 원했단다. 그에 선생님이 "다른 친구들과의 약속이기도 하니 그럴 수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에 그 학생은 화나는 것을 참지 못하고 교탁 앞에서 선생님을 5분여 동안 폭행했다나! 이처럼 어이없는 일은 왜 일어날까? 이런 아이들은 누가 키웠을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어떤 행동 하나만으로 어떤 아이다, 아이의 부모가 어떨 것이다, 어떤 부모일 것이다 지레짐작, 판단하는 것은 경솔하다. 잔말 말고란 말이 어이없어 좀 단호하게 말했을 때 아이가 약간 놀라는 듯한 표정으로 날 똑바로 쳐다봤다. 그걸 보면 아이는 그 말이 잘못된 것임을 모르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집안에서든 밖에서든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했는데 아무도 지적하지 않아 계속 쓰고 있을지도 모르고. 혹은 엄마나 아빠가 자기에게 그처럼 말하니 그래도 되는 줄 알고 썼거나. 


다시 나를 만나면 그 아이는 어떤 반응일까? 그 아이의 반응에 따라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도 같아 며칠째 그 앞을 지나며 걸음을 늦춰보는데, 그로부터 8일 동안 만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생각은 계속되고 있다.


'부모의 역할은, 바람직한 역할은 무엇일까?'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줘야 하는 가장 첫 번째는 무엇일까?'



(9월 초에 썼던 글, 묵히기 아쉬워 내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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