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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 Dec 09. 2020

안녕히 가세요.

종례시간 읽어주는 담임의 편지

인생을 살다 보면 내 곁에 오래 머무는 사람과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그 순간에는 잘 알지 못했던 것 같아. 모두가 내 곁에 머무를 것 같았고, 그래서 최선을 다했어. 관계에 지나친 에너지를 쏟다 보니 정작 내가 힘을 기울여야 할 곳에 기울이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곤 했지. 그런데 내가 최선을 다해야 할 만큼 관계는 나에게 중요한 일이었어. 나를 지지해주는 뿌리가 약했던 나는 항상 의지할 사람을 찾곤 했거든.

그런데 이 만큼 살면서 돌아보니 내가 노력을 기울였던 모든 사람들이 내 곁에 남아있지는 않아. 오히려 떠나간 사람들이 더 많아. 내가 잘 못해서 일까? 아니야. 우리는 딱 그 정도의 마음이었던 거야. 그에 비해 내가 너무 많은 애정과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던 거지. 오히려 너무 지나치게 잘했을 거야. 그들의 마음에 좋았던 사람으로 남았을 거라 생각해.


나는 또 자기 위안을 한다.


애써 그렇게 위로하려 해도 관계가 정리되고 사람을 잃었다는 생각은 나를 슬프게 해. 너무 최선을 다하다 보니 다른 일들이 제대로 되어있는 건 없고 상황은 엉망이야. 그래서 또 하나 다짐을 해. 내 인생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상처 받지 말자. 그들이 그냥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주자.

새로운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 연락처부터 정리해. 내가 흘려보내고 싶은 사람과 내게 남기고 싶은 사람을 구분해. 깨끗해진 연락처를 보니 한결 마음도 가벼워져. 내가 보내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관계가 너무 많았나 봐. 그 관계를 유지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흘려보내고 나니 그만큼 내 마음에 에너지가 채워졌어. 앞으로 형식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인사치레도 하지 않을 생각이야. 말을 삼가고 아끼며 내 마음을 모아둘 거야.


지나가는 사람들은 쿨하게 보내주자.
안녕히 가세요.


얘들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다. 그에 비해 우리는 너무 많은 관계에 얽히면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어. 오늘은 자신의 대인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렴. 지금 내가 지나치게 몰입하고 있는 관계가 있지는 않은지. 내가 꼭 지켜야 할 소중한 관계는 무엇인지를 생각해봐. 생각이 정리되다 보면 너희도 불필요한 관계에 힘 쏟는 일이 줄어들 거야.


걱정은 덜고 에너지는 가득 찬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해보자. 원격으로 수업 듣느라 너무 고생이 많다. 우리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일이니 조금만 참아보자. 수고했어. 내일 보자.


2020.12.08. 가벼워진 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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