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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레이씨 Sep 25. 2020

'만약'이라는 가정에 대하여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먼 훗날 우리>

 보고 나면 글로 흔적을 남기고 싶은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연출이 아주 훌륭하고, 배우들의 연기가 미쳤으며 스토리도 완벽하다.' 등의 감상평이 아닌 그저 좋아서, 눈으로만 보고 넘기기에는 너무 아쉬운 영화라 기억에서 잊히지 않게 꼭 남겨두어야 하는 영화들이 있다.

 사실 중화권 영화는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 클리셰 범벅인 연출과 오버스러운 연기, 그냥 취향과 맞지 않아서, 여러 이유로 선택하지 않았다. 인생영화라고 추천받은 중화권 영화들도 '내 취향은 아닌 걸로' 혹은 '생각보다 좋네'에 그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꼭 글로 써서 남기고 싶었다.



 중국의 큰 명절 중 하나인 춘절, 린젱칭과 샤오샤오는 고향으로 가는 같은 기차에서 처음 만난다. 이후 둘은 베이징에서 성공하는 꿈을 꾸며 연인 사이로 발전하지만 현실에 부딪혀 헤어지고 만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둘은 북경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이 영화를 보고 생각나는 영화가 있었는데 데미안 셔젤 감독의 <라라 랜드>이다. 사랑과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비슷하고 그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 하지만 결국 서로 이어지지 않는 결말도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라라 랜드>가 좋은 영화임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꿈의 도시인 LA배경에 배우, 음악가를 꿈꾸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어쩐지 잘 와 닿진 않았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그것에 공감하면서도 주인공들에 완전히 이입되진 않았다.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먼 훗날 우리>가 좀 더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중국의 취업시장이 우리나라의 취업 현실과 비슷하다는 것, 성공하기 위해서 베이징에 올라온 샤오샤오와 린젠칭의 모습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성공을 꿈꾸는 나와 우리 청춘의 모습과 닮아있다.


 새벽 감성에 취해서인지, 영화에 몰입해서 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한동안 영화의 여운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어떤 점이 좋았는데?'라고 묻는다면 정확히 어떤 걸 콕 집어서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래도 이 영화를 기록해야 하는 이유 중 빼먹지 말아야 할 장면은 있다.


 과거에서 게임 개발자인 린젠칭에게 샤오샤오는 묻는다. "이안이 켈리를 찾지 못하면 어떻게 돼?" 린젱칭의 대답은 "세상이 흑백으로 변해."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현재의 샤오샤오와 린젠칭은 흑백 장면 속에 있다.


 이들이 과거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했다면 흑백이 아닌 컬러 세상이 되었을까? 영화는 ‘아니, 여전히 흑백일 거야’라고 한다. 사랑은 찾았지만 또 다른 현실적인 문제가 놓여있을 수도 있고, 서로에 대한 열정적인 마음이 식어버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만약이라는 가정은 소용이 없다. 영화가 말하는 것도 그렇다. 샤오샤오와 린젠칭의 세상은 함께 있을 때가 아니라 각자로 존재할 때 다시 컬러가 되었다.


 샤오샤오와 린젠칭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해 더 애틋하고 계속해서 생각난다. 어쩌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미화할 수 있고 서로를 기억 속에 남겨 둘 수 있었을 것이다. 둘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슬픈 결말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서로를 통해 성장했고 함께 있을 때 보다 서로를 더 좋은 기억으로 남겼으니 말이다.



 * 이 영화를 통해 샤오샤오 역할을 맡은 주동우 배우에게 빠져버렸다. 이 배우의 최대 강점은 관객을 영화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영화 속 인물 그 자체가 된다. 주동우 배우의 또 다른 연기가 보고 싶다면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소년 시절의 너>를 관람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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