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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선영 Jun 09. 2020

검찰청에 무기계약직으로 입사하기. 2

솔직하게 가는 면접편

“우리 회사에 지원하게 된 동기가 뭐예요?”


  가끔 면접을 보면, 본인의 이직 의사를 피력하기 위해 면접 자리에서 그전 회사 욕을 그래그래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때 속으로 내가 면접관일 때는 “넌 바로 탈락!”을 외쳤고, 같은 지원자일 때는 “오호 쾌재라. 한 명 재꼈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너무 뻔한 질문, 그러나 반드시 나오는 질문. “지원 동기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의 답은 간단하다. 솔직할 것. 그리고 서로를 알 것.



  20대 중반. 석사를 마치면서 학원강사에서 방과후강사로, 시간강사에서 기간제교사로 계약직의 삶을 전전했는데 재계약의 불안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겨울만 되면 곱아드는 손으로 버스 환승을 찍어가며 행정실에 이력서를 제출하던 그때의 소원은, 첫째도 정규직, 둘째도 정규직, 제발 서른 안에 정규직이 되는 거였다.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스타트업 하는 사회적기업에 정규직으로 입사를 했는데, 하. 이제부터 나는 내가 싫어하는 누군가가 생기면 스타트업 하는 회사에서 일하게 되리라고 저주를 퍼부을 수도 있다. 업무 매뉴얼이 갖추어지지 않은 스타트업 회사의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늘 출근해서 내일 퇴근하는 생활패턴과, 월급은 소박하지만 돈 쓸 시간이 없어 강제적인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게 만드는 근무환경. 너무 바빠서 나의 개인적인 일은 무조건 “나중에”로 미룰 수밖에 없었는데, 남자 친구가 헤어지자는 말에도 “오빠, 나 지금 너무 피곤한데 내일 하자, 내일.” 그러고 차였다.



그래서 나의 지원동기는 명확한 3가지였다.

1. 정규직

2. 워라밸

(3번은 잠시 후에)


  저는 계약직을 오래 해봐서 계약직으로 전전하는 간절한 그 마음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압니다. 또 정규직도 해봐서 안정감이 주는 업무유능감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안정적인 법의 테두리 안에서, 조금 더 큰 조직에 속해 보고 싶었습니다. 탄탄한 조직의 일원이 되어 업무 매뉴얼을 배우고, 실행하여 저의 역량을 발휘하고 싶습니다. 특히 공공기관은 워라밸이 가능한 것이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삶과 여가의 균형 잡힌 생활을 통해 업무의 능력을 더욱 높이고, 저의 삶의 질을 높이고 싶습니다. 

나는 1번과 2번을 이렇게 우아하게 이야기했다. 물론 이렇게 모범적으로 이야기 할수도 있었다. "어려서부터 검찰에 관심이 많았....명탐정코난을 보며 수사에 재미를 느끼고..." 그러나 이렇게 거짓말을 하기에는 내가 입사 지원을 하기 전까지 경찰과 검찰의 정확한 업무도 구분하지 못했으므로 말도 꺼내지 않았다. 이력서를 쓰기 전까지 검찰청이라는 존재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만큼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실무관은 코난처럼 수사를 하지 않는다.

  마지막 세 번째 지원동기는 다음과 같다.


3. 업무내용을 알아보고 할 만한 일이다 싶으면 지원할 것.


  내가 좋아하는 나태주 시인은 풀꽃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세히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풀꽃 2에서는 이름을 알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면 친구가 되고, 모양을 알고 나면 인연이 된다고 했다. 즉 많이 알아야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사회적기업의 팀장일 때 우리 회사가 뭐하는 회사인지도 모르고 그냥 이력서를 넣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때 나의 질문은 “사회적기업에 대해 알고 있어요?”라는 아주 기초적이고, 홈페이지만 봐도 나오는 그런 질문이었는데, 태반이 답변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력서를 넣기 전에는 이것부터 파악한다.


<이 조직은 무엇을 하는 회사이고, 이 회사에서 내가 할 만한 일이 있는가?>


  지원동기의 핵심은 <이 회사에서 내가 할 만한 일이 있는지> 이걸 파악하는 것이다. 정규직과 워라밸은 직장으로부터 원하는 나의 욕구다. 그렇다면 좋은 사람을 채용하고 싶은 회사의 욕구도 채워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 회사에서 내가 할 일에 대한 답변이 핵심이다.


  또한 분명 본인도 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지원했을 것이다. 10년 동안 국어샘의 길을 걸어온 내가 연봉이 훨씬 높아도 건물시설관리자 같은 업무를 지원하지 않는다. 자격도 안되지만, 그 일을 할 수도 없을 것 같아서이다. 본인이 지원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그 지점을 솔직하게 말하면 된다.


  저는 교육계에서 오래 일을 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타인과의 의사소통에 원활한 편입니다. 특히 아이들과의 오랜 상담 경력은 민원 응대 부분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더욱이 사무직으로 4년 여간 재직하면서 많은 문서를 작성하였는데, 업무의 기본이 되는 공문서 역시 간결하고 정확한 언어로 작성할 수 있습니다. ... (나의 자랑 중략)... 앞의 이러한 이유로 누구보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나태주의 풀꽃으로 돌아가서, <이 회사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하는 기본적인 질문은 별도의 질문으로 많이 한다. 그래서 나도 <고소와 고발의 차이점>, <경찰-검찰-법원-교도소의 역할>, <최근 검찰 이슈>,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인터넷으로 훑어봤고, 역시나 그대로 답변이 나왔다. 물론 내가 준비하지 않은 몇 개의 상식 질문이 나와서 법률상식이 부족한 나는 아무말 대잔치를 해버린 답변도 있다. 


  내가 채용 관리자가 되어 봤기에 안다. 법률지식을 묻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대한 기본적인 준비는 하고 왔는가, 서로 이름을 알고, 색깔을 알고, 모양을 알 준비가 되었는가, 그것이 궁금한 것이다. 나태주의 풀꽃처럼 자세히 알아야 사랑에 빠지는데, 면접 때 그럴 시간은 없고, 이력서로 이름은 알았는데, 모양을 알아야 인연이 되니까. 


  이렇게 면접까지 보고 입사 2년이 다 되어 간다. 한글, 엑셀, 파워포인트 다 할 줄 안다고 적었는데 막상 검찰청에 오니 문서작성할 일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나를 마음에 들어했으니, 고맙고 고마운 회사다. 


지원동기는 어렵지 않다. 솔직하게. 그리고 서로를 궁금해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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