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선영 Jun 13. 2020

검찰청에 무기계약직으로 입사하기. 3

우연히 입사한 나의 이야기 

  앞에서 엄청 거대하게 준비를 하여 검찰실무관이 된 것 같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실무관이 된 것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2018년 여름의 나의 상황은, 갑작스러운 정부 정책 변화로 잘 다니던 회사가 한방에 망할 위기에 처했으며, 간과 쓸개를 다 내줄 만큼 좋아하던 직장 후임에게 야금야금 뒤통수를 맞고 가슴속에 장기가 없어 툭하면 눈물이 흐물흐물할 때였다.


  가끔 힘들어 퇴사병이 도질 때마다, 구직사이트를 훑어보고는 한다. 왜냐하면 한 바퀴 둘러보고 나면 ‘역시 내가 있을 곳은 여기밖에 없구나.’라는 것을 냉큼 깨닫고 겸손하게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도 기형도 시인의 엄마생각하는 어린이처럼 찬밥처럼 혼자 사무실에 남아 나라일터를 보았다. 정말이지 이직을 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여기에 남을 정당성을 찾기 위해서. 


  검찰청 공고에 이력서를 쓴 건, 진짜 합격이라기보다는 낮아진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내가 잘하는 것을 하나하나 적어볼 요량으로 쓴 것이다. 서류라도 통과해 본다면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일 거야.


  당시 검찰청은 방문접수를 받았는데, 팀장인 내가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낸다고 조퇴하기도 애매하여, 그냥 품속의 이력서로 만족하기로 했는데, 그 간쓸개를 탈취해 간 후임은 느닷없이 여름방학시즌이니 단축근무를 하자며 오후 5시에 휑하니 퇴근을 해버려서 나만 해가 질 때까지 옹송거리다 퇴근할 때가 많았다. (입주한 건물은 오후 5시에 중앙에서 에어컨을 껐는데, 내가 싫어서가 아니라 너무 더워서 퇴근한 거라 아직 믿고 싶다.) 한여름 오후 5시. 퇴근하기엔 너무 밝아서 작성해둔 이력서를 들고 검찰청으로 향했고, 돌아오는 길에도 오후 6시가 되지 않아서 사무실에 다시 들어가 일을 좀 더 하다가 퇴근했었다.


나 정도면 합격하겠지만, 설마 합격하지는 않겠지.


<네. 축하합니다. 서류합격입니다.>



  면접은 월요일. 괜찮다. 어차피 합격할 생각은 아니었으니. 나는 면접 전 '금, 토, 일'을 일본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려고 티켓팅을 해 놨었다. 여름휴가를 포기할 수는 없지. 그리고 면접은 월요일이고, 나는 일요일에 돌아오고, 때마침 휴가는 월요일까지 내놨으니까. 하필 면접 볼 시간이 되는구나.


  그런데 멍청하게도 비행기표를 잘못 끊어버린 것이다. 엄마와 나는 '요일' 오전 9시 리턴 티켓, 이모와 동생은 '요일' 오전 9시 리턴 티켓. 그걸 일요일 아침 7시 후쿠오카 공항 에어부산 매표소 앞에서 알아버렸다. 당일 한국행 티켓은 배도 비행기도 모두 매진. 해외여행이 처음인 이모와 동생을 후쿠오카 공항에 내팽개치고 한국으로 올 것인가, 나도 같이 보호자로 남을 것인가. 


  일단 엄마를 먼저 출국장 안으로 보냈다. "이모 저도 같이 후쿠오카에 남을게요. 어차피 월요일까지 휴가 내놨어요.(제가 면접 보는지 모르시겠지만, 저는 면접 안 가기로 결심했어요.)"


  그렇게 나의 티켓을 새로 구매하며 상황 종료를 하려고 하니, 아뿔싸! 월요일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내 몫의 표가 없다. 화요일도 없다. 여름휴가 시즌이라 그 주 내내 한국행 비행기는 전석 매진.


  “이모 미안해요. 알아서 한국으로 오세요. 숙소는 제가 잡아서 까톡 드릴게요.”

사촌동생의 손에 남는 엔화와 와이파이 기계를 쥐어주고 출국장에서 랜딩 입구까지 전력질주하였다. 비행기를 타야 한다. 면접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이 아니면 한국에 못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국에 도착하고, 지친 나는 면접 준비고 뭐고 후쿠오카에 남겨진 이모와 동생을 위해 숙소를 찾고, 나의 피로회복을 위해 숙면을 취했다. 월요일 아침, 당연히 면접 준비 대신 이모를 마중하러 공항으로 향했다. 첫 해외에 말도 안 통하는 후쿠오카 공항에 버리듯 남겨놓은 온 이모와 동생은, 다행히 무사히 입국. 


  면접은 14시. 이모를 모셔다 드리고 집에 오니 12시. 아, 면접을 못 갈 줄 알았는데 시간이 된다. 씻고 옷 입고 점심을 먹어도 1시간이나 남네.


일단 면접장 출발.


  고가도로를 올리고 나서 깨달았다. “앗차차. 나의 신분증은 여권과 함께 캐리어에 있구나.” 고가도로라서 유턴도 못하고, 출구로 나갔다가 다시 반대편 고가도로를 타고 집에 들러 신분증을 들고 다시 고가도로를 타고 출발하였다.


아슬아슬한 시간. 이제 진짜 면접을 못 볼 수도 있겠구나.


  그런데 그날따라 막히지 않는 고가도로. 5분 남기고 검찰청 입구 도착. 여유로운 주차 공간. 때마침 1층에 있는 엘리베이터. 마감 3분 전, 면접장 세이프. 내가 마지막으로 면접장의 문이 닫혔다. 면접 순서는 4번째. 영혼은 아직 후쿠오카 공항에 있는 것 같았는데,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나의 혓바닥은 잘도 굴러갔다. 


<면접 합격>


  이쯤 되니 나도 웃겼다. 검찰청이 나를 당기는 것인가, 이 회사가 나를 밀어내는 것인가. 나는 아직도 이직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그런데 입사 전 남은 서류 제출을 위해 검찰청에 방문하니 공무원행동강령에 준해서 겸직이 금지라고 하였다. 그때까지 나는 법인에 근로자대표이자 이사진으로 되어 있었다. 마지막까지 긴장하게 만드는 이 상황.


‘아, 합격은 했지만 입사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 간쓸개선생님. 제가 법인이사로 등기되어 있는 거 아시죠? 검찰청에서 겸직금지라 이사 빼야 된대요. 저 입사전까지 이사진에서 안 빼주면, 저 월요일에 검찰청이 아니라 다시 여기로 출근할 수도 있어요.”


  그 당시 4년 동안 함께 일하며 가장 신속하게 일처리를 해준 동료직원들 덕분에 검찰청에 무사히 입사할 수 있었다. 혹시나 내가 돌아올까 봐 1주일 만에 이사회를 열고 나를 제명시키고 구청에 등기까지 해버린 것이다. 금요일 퇴근 후 정신을 차려보니, 가을이 한창이고 검찰청 회의실에서 입사 교육을 받고 있었다.


  우연이 우연을 겹친 것인지, 운명이 우연처럼 온 것인지, 나의 노력이 우연을 만난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우연처럼 클릭한 채용공고. 때마침 단축근무. 미리 내둔 휴가 일정에 딱 맞춰진 면접. 직원들의 신속한 이사회. 쉬지 않고 달렸던 경험들, 틈날 때마다 읽었던 법률상식. 언제나 애를 써야 이루어지던 나의 모든 것들이, 처음으로 애를 쓰지 않아도 순리대로 진행되어 간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여러모로 고마운 마음으로 이곳에 일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검찰청에 무기계약직으로 입사하기.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