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 참 좋습니다.
버킷리스트를 이루고 드디어 목표로 하는 곳에 다녀왔다. 다녀왔다는 행복함과 떠난다는 섭섭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래도 여정은 계속되어야 한다. 지옥 같은 배를 다시 타고 나와서 마닐라로 돌아간다. 다음 목적지는 세부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필리핀에서 살았지만 관광다운 관광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랄까. 화려한 리조트나 호텔에서 쉬는 건 아니었으나 23살의 나에게는 '여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선물이자 휴가였다.
*필리핀을 크게 3 분할하면 북쪽의 수도 마닐라를 중심으로 한 섬과 지역을 루손, 중부의 세부를 중심으로 한 섬과 지역을 비사야, 남부의 다바오 등을 중심으로 한 민다나오로 나눌 수가 있다.(팔라완은 여기서는 제외하겠다.) 우리가 아는 대표적 휴양지 보라카이도 비사야 지역의 섬이라고 보면 된다. 역사책의 대항해시대 항목에서 나오는 그 마젤란이 상륙해 식민화를 명령했고(마젤란은 토착 세력의 장군 라푸라푸에게 죽었다.) 그때부에 마닐라에 새 수도가 세워질 때까지 필리핀 제1 도시로 활약했다. 지금은 필리핀 제2의 도시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비행기에 몸을 맡기러 마닐라 공항에 도착해 역시 필리핀 세부를 거점공항으로 사용하는 세부 퍼시픽 항공에 탑승했다. 비행시간은 1시간이 채 안된다. 첫인상은 푸르고 덥다였다. 쨍쨍한 날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처음 공항에 도착하면 이곳은 세부가 아니다. 세부와 다리로 연결되어있는 막탄 섬이다. 사실 관광객들과 휴양객들은 거의 모든 시간을 이곳 막탄섬에서 소비한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부의 바다나 액티비티 그리고 화려한 리조트들은 다 이곳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필리핀 바다의 질려버린(2021년 지금 시점은 아닌 것으로..) 나로서는 바다에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고 예산 역시도 조금 빠듯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내를 둘러보는 여유로운 관광을 택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휴양지로 유명한 세부가 아닌 도시 그 자체로서의 세부를 느끼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1. 포트 산 페드로 (Fort San Pedro)
항구를 뜻하는 Port가 아닌 요새를 뜻하는 Fort이다. 포트리스의 그 포트가 맞다. 이곳은 구시가지라고 부를 수 있는 옛 건물들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독립 광장(Plaza Independencia)이라고 불리는 광장과 맡닿아 있는 스페인 시절 유적지이다.
사실 알고 보면 꽤나 상처가 많은 장소인데 무려 3번의 주인이 바뀐 끝에서야 필리핀이 독립하면서 필리핀이 가져가게 되는 곳이다. 마젤란이 상륙한 이래로 스페인에게 한번, 미군의 막사로 쓰이면서 한번, 2차 대전 일제시절에는 병원 등으로 개조되면서까지 사용되면서 그 자리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중요한 유적지가 사라질뻔한 일이 있었는데 1957년에 세부 시장으로 재직하던 Sergio Osmena가 이곳을 헐고 시청을 지으려 했다가 주민들의 반발로 물러섯다고 한다(위키백과). 역사적인 건물의 몰락을 주민들이 합심하여 막은 셈이다. 그 후로는 많이 망가진 요새를 재건축하고 국보에 등록되기까지 한다. 우리가 지금 보는 포트 산 페드로는 복원한 건물이라고 보면 된다.
건물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아서 구경을 하면서 산책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건물들이 꽤나 연식이 있어 보이고 주변 야자수들이나 푸른 식물들과도 조화가 꽤나 잘 되는 느낌이었다. 물론 역사적인 관점에서도 조금 모자라지만 곳곳에 설명들이나 사진들 그리고 물품들이 남아있어서 배우는 생각으로 가면 좋은 곳이다. 대부분은 스페인 시절의 관한 내용을 다루는 듯했다.
산책을 하면서 공터에 사람들이 모여 싸움을 하는데 아무도 안 말리길래 뭔가 했더니 무술배우(?)들이 합을 맞추는 것 같았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이곳이 촬영 배경이 되는 듯했다. 여행하면서 요런 소소한 볼거리들이 은근 기억에 오래 남는다.
2. 산토 니뇨 성당 (Basilica del Santo Nino)
축구를 좋아하는 남자분들이라면 리버풀과 첼시에서 뛰었던 페르난도 토레스를 기억하실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이 잘생긴 소년에게 팬들은 '엘 니뇨(El Nino)'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여기서 니뇨는 남자아이라는 뜻과 아기 예수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금발을 찰랑이며 당당하게 골을 넣는 이 소년에게 붙인 별명이 참 멋있기만 하다.
여튼 이곳은 세부 아니 필리핀 기독교인들에게 성지순례 장소로도 알려져 있을 정도로 유명한 성당이다. 대항해시절에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이곳에 상륙하고 토착세력과의 싸움에서 '라푸라푸'(막탄 섬의 도시 이름 역시 이 사람에 이름을 딴 동명의 도시이다)에게 패배하고 죽은 뒤에 스페인에서는 레가스피라는 사람이 파견되는데 이 사람이 마젤란이 가져왔을 거라고 추측되는 아기 예수의 그림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성당을 지은 것이 이곳의 출발이다.
몇 번의 화재들로 무너졌었지만 종교심으로 똘똘 뭉친 필리핀 사람들과 스페인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고 다시 재건했다고 한다. 2013년에도 보홀에 큰 지진이 있어서 상처를 다시 한번 입어서 몇 달간은 입장이 제한되고 복구작업을 한 뒤에 다시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고 한다.
성당의 유명세만큼 내부 역시 화려하다. 유럽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세계테마기행이나 여러 여행 관련 프로그램들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곳도 다른 곳에 꿇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필리핀 각지에서 여행 오는 사람들은 이곳을 당연하다는 듯이 들린다고 한다. 사람들의 종교심에 나도 모르게 조용해지게 된다.
밤에도 열려있는 이곳은 마치 세부 사람들의 일상과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해가 지고 난 뒤에 성당은 각종 조명과 황금색 장식으로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서 나도 기도를 해 볼까 하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