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롬블론과 시부얀을 소개합니다
*정말 오래간만에 글을 쓰게 되었다. 나태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게 된 지난 시간들이었다. 새로운 1년의 시작을 또다시 나태함에 지배당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한다.
1년 만에 그렇게 원하던 필리핀에 다시 돌아왔다. 제2의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랄까. 봉사생활을 하면서 정말 지쳐가는 일도 짜증 나는 일도 많았었지만 지금 돌아보니 모든 기억들이 훌륭했다. '그때가 좋았지'라는 생각이 몇 번이나 들었다.
내가 약 6개월간 지내던 '시부얀'은 필리핀의 중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롬블론이라는 주에 속해있는 섬이다. 외신들과 언론에 있는 기사들과 구글에 몇 안 되는 관련 글을 보면 사람들은 이곳을 '아시아의 갈라파고스'라고 서술하고 있다. 엄청난 칭찬이다. 그런 별명을 가진 롬블론이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곳이 오지이기 때문이다. 접근성이 다른 주요 관광지보다 현저하게 떨어진다.
몇몇 사람들은 이곳에 교통이 좋아진다면 필리핀 최고의 관광지가 될 것이라고 한다. 나의 루트는..
1. 인천-마닐라 비행기 탑승.
2. 마닐라에서 남부 항구인 바탕가스로 차로 이동.
3. 배로 바탕가스에서 롬블론 섬으로 이동.
4. 롬블론에서 다시 시부얀으로 이동.
이라는 가는데만 대략 2박 3일이 소요된다. 물론 기상 상황에 따라서는 더 걸릴 수가 있다. 물론 주변 타블라스 섬에 공항이 있어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으나 후기를 보니 엄청난 연착과 취소가 비일비재하다고 해서 이용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꽤나 외부와 접촉이 어려운 이유로 자연이 보존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년 전에 이렇게 오갔던 기억들을 마구 꺼내서 다시 살려본다. 다시 그곳을 갈 수 있다는 설렘이 걱정보다 앞선다. 배편은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미리 예매를 해 놓았다. 마침내 항구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짐 검사를 받고 창구로 가서 직접 프린트한 바우처를 보여준다. 혹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필리핀이어서 4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더니만 연착이 됐다고 한다. 다시 배가 들어오는 시간은 다음날이라고 한다. 이곳은 필리핀이라는 걸 깨닫고 말았다.
모든 계획이 머리 아프게 어려워지는 순간이었다. 이틀간 섬에 있으려고 했던 나의 시간은 이제 하루가 줄어들었고, 그 하루는 이 오기 싫은 항구에서 보내야만 했다. 다른 배를 알아봤지만 방법이 없었다. 체념을 하고 구석에 앉아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에어컨은 왜 이렇게 추운지 짜증이 마구마구 샘솟았다.
어찌어찌 견딘 나는 드디어 배에 탑승하게 되었다. 그렇게 위에 있는 루트대로 또 기나긴 시간을 이동하는데 보내야만 했다. 몸과 마음이 점점 지쳐갔다.
그렇게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도착을 하고 말았다. 뭔가 감동이 밀려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사람들이 짐을 가지고 내리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관광지에서는 사람이 어떤 플랫폼에서 내리면 엄청난 호객꾼들이 달라붙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걸 볼 수가 없다.
항구에서 내리면 내가 살던 '마비니'까지 다시 트라이시클을 타고 가야 한다. 대략 4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2년 전에 그곳과는 다른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원래는 포장이 없는 도로들이 서서히 포장되는 것이다. 주민들 말로는 한국에서는 10일 걸릴 일이 여기서는 100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래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이곳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나름(?) 편하게 마을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반겨줬다. 내 가족과 같았던 마을 사람들이다. 아직 나를 잊지 않고 있었다. 마을 역시 많이 발전하고 있었다. 없었던 다리와 집들이 지어졌다. 마을 사람들과 간단한 재회를 하고서는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곳으로 출발했다.
가장 큰 추억이 있었던 아이들을 만날 학교로 도착했다. 아이들은 내가 이곳에 있었던 6개월간의 존재 이유이자 큰 활력소였다. 혹시 그 친구들이 나를 아직 잊지 않았는지 괜시래 걱정하기도 했었다. 걱정은 기우였고 아이들은 매우 좋아하며 나를 반겨줬다. 공부를 하는 아이들을 방해할 수 없으니 점심시간에 잠깐 보려고 왔다. 그만큼 나에게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마침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나와서 놀고 있었다. 급식은 당연히 없다. 아이들은 도시락을 챙겨 오거나 집으로 돌아가서 밥을 먹고 온다. 사정이 좋지 못한 아이들은 그럴 수가 없다. 마침 차가 지나가면서 빵을 팔고 있었다. 거기 있는 빵을 사서 아이들에게 주기로 했다. 아이들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기쁨을 느꼈다. 아이들은 수업을 들으러 다시 들어갔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더 좋은 가정을 가꾸렴!
마을이 지난 2년 동안 얼마나 바뀌었는지 확인하기로 한다. 자전거를 빌려서 산책을 나섰다. 없던 길이 포장되고 나름 변화가 있었다.
과거와는 달리 포장된 길거리 때문에 가는 시간이 단축되고 있다.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그렇게 가다 보면 마을과 마을 사이에 아름다운 공터가 있다. 언제나 올 때마다 감탄하는 이곳의 풍경. 이곳이 발전하면 유명해질 것이라는 사람들의 말이 틀리지 않다.
섬은 이천 미터가 넘는 산인 '기팅기팅(Guiting-Guiting)'이 수호하고 있다. 이곳은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미지의 트레킹 코스로 뽑힌다. 험한 지형 때문에 사상자가 발생한 적도 있다고 한다. 산세가 대단하다. 그리고 그 중간에 소들과 함께 일하는 어린 친구가 있었다. 나이가 나의 절반도 안 되는 친구인데 묵묵히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때 뭘 하고 있었을까.
산 위에는 구름이 잔뜩 끼여 있었다. 대자연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튼실한 소들이 내 앞을 지나간다.
소는 심성이 착한 동물 같다. 나의 아버지는 소를 우직함의 대명사로 소개한다. 어른들 말은 틀린 것이 없는 것 같다.
한참을 앉아서 사색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길 다시 올 수 있을까. 아니 다시 올 것이다. 다음에 왔을 때에는 뭔가 더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마을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다. 여기서 내 사진을 하나 남기기로 한다. 소를 모는 아이에게 과자를 하나 주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흔쾌히 받아줬다. 실력이 나보다 낫다.
마지막으로 사진 몇 장을 찍고 다시 마을로 돌아가기로 한다. 백번을 봐도 질리지 않을 풍경이다. 다음에는 지인들과 함께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두에게 이런 좋은 곳이 있다고 알리고 싶다!
시간을 맞춰서 돌아갔더니 아이들이 하교를 하고 있다. 매일매일 하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같이 놀았던 기억이 있는데 그 기억이 떠올랐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참 이쁘다. 오랜만에 보니 조금 어색한 아이들이 있다. 과자를 사주면서 그간 얼마나 컸는지 확인한다. 2년 전 학교를 가지 않았던 아이들은 이제 학생이 되었고 중학생을 졸업해 다른 마을에 있는 고등학교를 걸어서 가는 친구도 있다. 물론 새로 태어난 생명도 있다.
아이들과 모여서 일몰을 보러 바닷가로 나섰다. 매일 봤던 이 풍경이 다시 한번 나를 놀라게 한다. 이 순간만큼은 매우 감성적이다. 나는 내일 돌아가고 이 아이들은 내일 학교를 가겠지. 오늘은 하루가 열 배로 길어졌으면 한다.
그렇게 밤늦게까지 마을 아이들과 함께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에 든다. 빛이 없는 이곳의 하늘에선 별똥별이 떨어진다.
그렇게 어느새 아침이 되었다. 마을 이장님은 빵가게를 운영하시는데 아침으로 갓 구워진 필리핀 빵 '판디살'과 마일로를 한잔 꺼내 주신다. 많이 먹어야 지치지 않는다고 하신다. 정이 느껴지는 한마디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도 나와서 '잘 가'라고 한마디 하신다.
배를 타러 갈 시간이다.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그래도 시간은 간다. 꼭 다시 오겠다는 말과 다짐을 남기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말았다. 내 여행은 계속된다. 이제 세부로 발걸음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