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혼자서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노래가 노래가 되려면, 결국 듣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활자로 노래하는 사람의 무대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종이 위에서 홀로 불러내지만, 그 소리를
진짜 노래로 바꾸어주는 건 언제나 청중이다.
청중이라 해서 늘 눈앞에 앉아 있는 것은 아니다. 활자의 노래는 시공간을 건너간다.
수백 년 전 쓴 문장이 오늘의 나를 울리고, 어젯밤에 기록된 짧은 글귀가 내일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기도 한다.
활자로 된 노래는 시간표 없는 공연을 한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든 닿을 수 있다.
청중의 반응은 다양하다. 글을 읽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 등. 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나도 그랬어'라고 속으로 공감하는 사람. 심지어 읽기를 포기하고 책장을
덮는 독자도 있다. 그러나 활자로 노래하는 사람은 그것조차 알고 있다. 모든 노래가 다 닿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단 한 사람이라도
귀 기울여 주는 순간, 그 무대가 완성으로 가는 길이 된다.
청중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글을 읽는 순간, 그들 스스로가 또 다른 연주자가 된다.
글쓴이가 던진 단어의 씨앗은 독자의 마음속에서 제각각 다른 꽃으로 핀다. 어떤 이는 슬픔으로,
또 어떤 이는 희망으로, 누군가는 오래된 기억의 향기와 그리움으로. 활자로 된 노래는 읽는 사람의 해석에 따라 새로운 멜로디를 얻는다.
이쯤 되면 글은 작가의 것이 아니라, 청중 모두의 노래가 된다.
그리고 이 노래의 가장 특별한 점은, 청중끼리도 서로 알지 못한 채 같은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다.
책을 펼친 자리와 시간은 다르지만, 같은 문장에 울린 마음들은 어딘가에서 서로 공명한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합창이다.
눈물과 웃음, 침묵으로 참여하는 합창.
활자로 노래하는 사람은 그 무형의 합창단을 상상하며, 다시 펜을 든다.
청중의 자리는 늘 비워져 있다.
누가 와줄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글쓰기는 언제나 모험이고 초대이기도 하다.
“여기에 앉으셔서 제 노래를 들어주시겠습니까?”라는 무언의 물음. 이 물음이 건네질 때
활자로 노래하는 사람의 공연은 천천히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