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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수권과 토큰

by 소원상자

한때 우리의 시간은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종잇조각과, 금속처럼 반짝이던 작은 원판에

달려 있었다.

회수권과 토큰. 지금 생각하면 어쩐지 귀여울 정도로 작고 단순한 그것들은, 삶의 속도가

느렸던 시대의 맥박을 고스란히 건네주는 기억의 표류물이다.

기다림에 몸을 맡기던 시절이 있었음을 요즘 문득 망각하곤 한다.




지금의 교통카드나 스마트폰은 편리하다.

가볍고 빠르고 정확하다.

하지만 속도가 늘어날수록, 마음에 머무르는 감정은 줄어드는 아이러니가 있다.

예전엔 손에서 손으로 증표가 건네졌고, 물건 하나에도 사람 냄새가 묻었다.

지금은 기계음이 대신하고, 기록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숫자로만 남는다.

그 투박한 이름들은 지금의 전자음 가득한 세상에서는 쓸모를 잃어버린 듯 보이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오래된 영화처럼 되살아난다.




회수권을 꺼내 들던 순간마다, 종이 냄새 사이로 서늘한 겨울 아침의 기척이 배어 있었다.

숨을 몰아쉬며 버스 계단을 오를 때, 손가락 사이에서 바스락거리던 그 감촉은 참으로 작았지만, 그날의 나를 지탱해 준 부적 같은 것이었다.

내일도 학교 가는 길이 열릴 거라는, 세상이 아직 나를 허락한다는 사소하지만 은근한 확신.




어디선가 특별한 통과의 비밀을 품고 있는 것 같은 동전 같은 토큰.

지하철 개찰구에 툭 떨어뜨리면, 혼잡한 사람들 사이에서 ‘삑’ 소리 없이도 문이 열리는 그 순간 세상이 나를 향해 정중함을 담아 열리던 느낌이었다. 아직 어른도 아이도 아니던 시절,

그 작은 원형 하나가 어쩐지 나를 인정해 주는

것만 같았다.




지금은 손 안 카드 한 장이면 모든 문이 열리고, 어딘가에 숫자로만 남는 기록이 나의 이동을 대신한다.

효율적이고 빠르지만, 마음 끝을 간질이던

‘촉감’은 사라졌다. 회수권의 바스락 거림도, 토큰을 만지작거리며 줄을 서던 초조함도,

모두 추억 속으로 자리했다.

그래도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혹시 우리가 그토록 쫓아가는 미래라는 것이,

실은 저 작은 종이와 금속 사이에 이미 잠들어 있었던 게 아닐까?




회수권과 토큰, 그것들은 단지 이동 수단의 증표만이 아니라, 이제는 잃어버린 나의 한 조각이다.

삶이라는 긴 환승 여행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주머니 안의 따뜻한 기억을 꺼내 바라보게 만드는 오래된 징표들.

그 시절의 나는, 그 작은 징표들 덕분에 하루하루를 건너올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옛날 물건들을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그 물건을 쥐고 살던 나 자신을 그리워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회수권과 토큰은 사라졌지만, 그 기억은 내 안에서 여전히 환승을 기다린다.

언젠가 마음이 흐릿해질 때, 그 오래된 조각들을 꺼내어 다시 바라보려 한다.

그 안에는, 지금보다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 더 천천히 살던 내 삶의 잔향이 진하게 배어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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