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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수길 Aug 08. 2023

이니스프리 섬

The Island of Innisfree

2023년 7월 22일


이니스프리 섬은 아일랜드 슬라이고주(Sligo) 슬라이고 타운(Sligo Town) 인근 길이 8km, 너비 2km의 길 호수(Lough Gill) 위 이름이 있는 22개의 섬 중 하나다. 아일랜드 게일어(Gael)로 이니스프리란 네 개의 꽃잎이 합쳐진 종 모양의 헤더 꽃(heather)의 섬(Inis Fraoch)을 말한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가 1888년에 쓰고 1890년에 발표한 시 <이니스프리 호수섬(The Lake Isle of Innisfree)>에서 “자정에는 온통 희미하고 정오에는 자줏빛이 납니다(There midnight’s all a glimmer, and noon a purple glow).”라는 구절은 자주색 헤더 꽃이 물에 비친 것을 표현한 것이다.


슬라이고 타운 <예이츠기념관(Yeats Memorial Building)> 내에 있는 모형 오두막


여러 버전이 있는 전설에 따르면, 구혼자 옴라(Omra)와 아버지 롬라(Romra)가 전쟁터에서 죽은 뒤 롬라의 딸 길(Gile)이 슬픔 속에 죽자, 그녀의 하녀가 울고 울어 길 호수가 생겼으며, 옴라와 룸라는 호수 위 케언즈 언덕(Cairns Hill)에 있는 두 개의 신석기 유적 아래 묻혔다고 한다. 영국과 아일랜드를 오가며 시를 쓰던 예이츠는 런던 플리트가(Fleet Street)를 걷다가 물속에 있는 분수를 보며, 슬라이고 외갓집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를 흉내 내고 싶어했던 10대 시절의 향수로 이 시를 썼다고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힌 바 있다.


슬라이고 타운의 한 건물에 그려진 예이츠


예이츠는 슬라이고에 있을 때 친척들에 둘러싸여 요정 이야기를 듣곤 했다. 그는 “할아버지를 하나님과 혼동했다.”라고 할 정도였고, 그의 시 <잃어버린 아이(The Stolen Child)>에서는 “떠나자, 인간의 아이야! 호수로 광야로 요정과 손을 맞잡고, 슬픔으로 가득한 세상 이해할 수 있으려나…”라고 노래했다. 이것이 예이츠가 아일랜드 민족주의 운동에 가담하고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을 주도하는 토양이 되었는데, 그는 <아일랜드 농민의 요정담과 민담(Fairy and Folk Tales of the Irish Peasantry)>과 <아일랜드 요정 이야기(Irish Fairy Tales)>와 같은 책을 내기도 했다.


슬라이고 타운의 한 건물에 그려진 모드 곤. 1958년부터 시작된 농촌공동체개발부 주관의 '깨끗한 마을(Tidy Towns)' 사업의 한 프로젝트였다.


예이츠가 첫 시집을 낸 뒤 1889년 1월 민족주의자인 존 오리어리(John O’Leary)의 소개로 호전적인 성향의 모드 곤(Maud Gonne)이 런던 교외 치스윅(Chiswick)의 예이츠 집에 찾아왔을 때, 예이츠는 첫눈에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그는 회고록에서 “내 인생의 고뇌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라고 표현했으며, 여러 차례에 걸친 청혼은 거절당했지만 “내가 그녀를, 그녀는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모드는 나의 순진함이며 나는 그녀의 지혜이다.”라고 회고했다. 모드 곤이 그려진 슬라이고 타운 한 건물에는 “한 사람만이 그대 마음 속 순례자 영혼을 사랑했고, 변해가는 그대 얼굴의 슬픔을 사랑했네.”라고 노래하는 예이츠의 시가 적혀 있어 예이츠와 모드 곤의 평생에 걸친 관계를 말해준다. 


모드 곤은 영국군 장교였던 아버지 토마스 곤(Thomas Gonne)을 따라 아일랜드에 오게 되었고, 위스키 제조업자 존 제임슨(John Jameson)의 딸 이다(Ida)와 친구가 되어 하녀들로부터 귀신과 요정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병으로 죽고 모드가 심한 기관지 발작으로 이사를 간 호우트(Howth)에서 간호사들로부터 영웅들의 이야기와 1798년 아일랜드 반란 이야기를 들으며 민족주의자로 자라났다. 모드 곤은 적극적으로 민족주의 활동을 하면서 예이츠와의 우정을 강조했고, 청혼을 거절당한 예이츠가 불행해 하면서 시를 쓰고 있어 결국 자신과 결혼하지 않은 것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고마워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예이츠와 모드 곤의 러브스토리를 다룬 마저리 브레이디(Margery Brady)는 “모드를 향한 윌리의 열정은 줄어들지 않았지만, 윌리를 향한 모드의 열정 또한 늘어나지 않았다.”(p.147)고 적었다.


슬라이고 주 해안 평원에 있는 벤불빈산(Benbulben, 아일랜드어 Binn Ghulbain)


1916년 4월 24일 부활절 아침 아일랜드공화국형제단(Irish Republican Brotherhood) 의용병 약 1,000여 명이 더블린(Dublin)의 중앙우체국(General-Post Office) 일대를 점령하고 아일랜드 공화국을 선포했다가 영국군에 의해 6일만에 진압되었다. 예이츠는 <1916년 부활절(Easter 1916)>이라는 시를 발표하여 “그들은 현재와 미래에 초록 옷이 입혀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달라졌다. 완전히 달라졌다. 소름 끼치는 아름다움이 탄생한 것이다.”라고 추모했다. 그러나 영국으로부터의 자치를 보장받는 데 찬성한 아일랜드자유국군과 완전한 독립을 주장하는 아일랜드공화국군(Irish Republican Army, IRA)과의 내전(1922. 6 – 1923. 5)이 일어났고, ‘숭고한 6인(Noble Six)’으로 알려진 IRA 군인 6명이 벤불빈산(Benbulben)으로 쫓겨났다가 자유국군에 의해 살해당하기도 했다.


예이츠 서거(1939년) 50주년(1989년) 기념 조각상. 로완 길레스피(Rowan Gillespie)가 얼스터은행과 지역사회 후원으로 예이츠의 시에서 따온 인용문들을 채웠다.


예이츠는 19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아일랜드인 최초의 노벨상이었다. 그는 노벨상 수상 이후에도 명작들을 만들었다. 1938년 그의 마지막 시인 <벤불빈산 아래에서(Under Ben Bulben)>는 그의 ‘예술적이고 영적인 비전’을 보여준 것이었다. 그리고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은 프랑스에서 죽은 지 10년이 지나 본인이 원한대로 슬라이고주 드럼클리프(Drumcliffe) 세인트 콜럼버스 교회(St. Columba’s Church) 옆 묘지에 묻히며 세워진 묘비의 비문이 되었다. 


삶과 죽음에 

차가운 시선을 던져라. 

말 탄 자여 그냥 지나가라!

Cast a cold eye 

On life, on death.

Horseman, pass by!


참고문헌

Brady, Margery. (2006). <예이츠와 모드 곤>. 권경수 역. 서울: 글빛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The Love Story of W.B. Yeats and Maud Gonne. Newmarket, ON, Canada: Riverwood Publishers, Ltd.,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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